영화 '서치' 스틸컷(사진=소니픽쳐스 제공)
굳이 말로 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아는 사실이 있다. 같은 이야기라도 전달법에 따라 감흥이 천차만별이라는 것을 말이다. 여타 동물과 인류를 구분짓는, 이른바 '문화'를 향유하는 인간 사회에서 뛰어난 이야기꾼들이 남다른 대접을 받아 온 이유도 여기에 있으리라.
영화 '서치'는 희대의 이야기꾼이 등장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축포다. 지금 시대에서는 다소 진부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을 법한 부성애·모성애 코드가, 새로운 영화문법을 빌려 온 '서치'를 통해 뭉클하고도 섬뜩한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까닭이다.
아내를 여의고 고등학생 딸 마고(미셸 라)와 삶을 꾸려가는 한국계 미국인 데이빗(존 조). 어느 아침, 그는 전날 늦은 밤에 딸로부터 걸려온 부재중 전화 3통을 확인한다. 이후 연락이 닿지 않는데다, 수소문 끝에 딸의 수상한 행적을 발견한 그는 실종을 직감한다.
경찰 수사가 본격화 하지만 결정적인 단서는 나오지 않는다. 결국 데이빗은 딸의 노트북을 켜고 SNS 게시물에서 정보를 찾는 등 직접 발벗고 나선다. 그 과정에서 그는 딸과 관련한 믿기 힘든 사실들을 접한다.
영화 '서치'는 아버지가 실종된 딸의 뒤를 쫓는 추리극 형식을 띠고 있다.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대목은 그 모든 과정이 컴퓨터와 모바일, CCTV 화면으로만 보여진다는 점이다. 우리네 모든 삶의 영역에 깊숙이 파고든 이들 '문명의 이기'는 그렇게 이 영화의 동시대성과 사실성을 극대화 한다.
연출자의 간섭은 컴퓨터 배경화면 속 특정 부분을 확대하는 수준에서 그친다. 이는 아버지 데이빗이 딸 마고를 찾고자 단서를 모으는 데 쏟는 집념을 부각시키는 장치다. 여기에 적절한 음악이 곁들여지면서 극의 서스펜스가 차곡차곡 쌓이고, 이야기는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
극중 데이빗이 딸에게 진심으로 하고픈 말을 컴퓨터 채팅창에 쓰고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지우는 장면은, 출연 배우의 표정 연기 하나 없이 타자 소리와 깜박이는 채팅창 커서만으로도 뭉클한 정서를 전한다. 일정 시간 사용하지 않은 컴퓨터 바탕화면에 뜨는 기하학적 무늬와 기괴한 음악이 만나면서 불러일으키는 불안감 역시 절묘하다.
영화 '서치' 포스터(사진=소니픽쳐스 제공)
영상 매체인 영화는 카메라에 담긴 타인의 삶을 훔쳐보는 데서 오는 관음적 성격을 품었다고들 말한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1인 방송, 유튜브 콘텐츠 등이 폭넓게 공유되는 현실에서, '서치'의 이야기 전달법은 영화 이상의 관음적 체험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관객 입장에서는 몰입도를 한껏 끌어올리는 이러한 체험의 뒷맛이 마냥 개운하지만은 않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 이유는 '우리가 해킹 당한 데이빗의 컴퓨터로 그의 일상을 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물음과도 연결되는 듯하다. 기민한 연출자의 의도를 읽을 수 있는 지점이다.
SNS 소통에 익숙한 현대인들의 정보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온라인 상에 기록된다. '빅브라더'의 도래. 이 영화가 다소 도전적인 영화문법을 차용할 수 있었던 데는 시대에 대한 이러한 통찰이 작용했을 테다. 극중 주인공이 검색만으로 딸의 행적에 관한 중요한 실마리를 모으는 과정은, 우리네 이러한 일상을 돌아보기에 충분하다.
유튜브 뉴스 채널 등에 실시간 생중계되면서 딸의 실종사건은 어느새 선정적으로 소비되기 시작한다. 이를 기점으로 딸의 실종을 대하던 주변 사람들의 언행도 180도 달라진다. 댓글창은 데이빗과 딸을 향한 무차별적인 추측성·혐오성 발언으로 도배된다.
영화 '서치'는 이러한 문법을 통해, 어느 때보다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지만, 어느 때보다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극단의 '불통 시대'를 들춰낸다. "이렇게 몰랐다니…"라는 극중 데이빗의 자조 섞인 대사는 그 쓸쓸한 현실을 관통한다.
이 영화가 개봉 이후 입소문을 타면서 급기야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는 소식은, 좋은 이야기가 지닌 여전한 힘을 방증한다. 바로 옆 좌석에 앉아 이 영화를 보던, 딸과 함께 극장을 찾은 한 중년 여성의 훌쩍이던 모습은 그 단적인 예가 아닐까.
지난달 29일 개봉, 상영시간 101분, 12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