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를 앞둔 장기하와 얼굴들이 1일 서울 여의도 위워크에서 열린 마지막 앨범이자 정규 5집 '모노(mono)' 발매 음감회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키보드 이종민, 베이스 정중엽, 보컬 장기하, 기타 이민기, 기타 하세가와 요헤이, 드럼 전일준. (사진=박종민 기자)
2008년 데뷔한 장기하와얼굴들은 키치한 감성과 실험적인 시도가 돋보이는 음악을 꾸준히 선보여 음악성과 대중성을 고루 인정받았다. 대표곡은 '싸구려 커피', '달이 차오른다, 가자', '그렇고 그런 사이', 'ㅋ' 등이다. 이들은 최근 데뷔 10년 만에 해체를 선언하고 정규 5집으로 올해 마지막 날까지 활동을 펼친 뒤 각자의 길을 간다고 밝혀 팬들을 놀라게 했다.
데뷔 10년만의 해체선언. 그리고 마지막 앨범. 그럼에도 불구하고 1일 오후 5시 서울 위워크 여의도역점에서 기자간담회를 연 밴드 장기하와얼굴들(장기하, 이민기, 정중엽, 이종민, 하세가와 요헤이, 전일준) 멤버들의 표정은 밝았다.
이날 장기하는 해체를 결정한 이유에 대해 "10년간 군더더기 없는 사운드를 앨범에 담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 기준에서 봤을 때 이번 앨범의 완성도가 굉장히 만족스러웠다"며 "5집 보다 6집이 더 좋을 순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여서 정점에 올랐을 때 해산하는 게 어떨까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멤버들과 한참 동안 논의한 끝에 뜻을 모았다. 음악적으로 자부심이 최고치에 달했을 때 해체하는 것이라 분위기가 훈훈할 수 있는 것 같다"며 "내리막이었거나 불만이 쌓였을 때였다면 웃으면서 헤어지지 못했을 거다. 저희도 약간 아쉽고, 팬들도 약간 아쉬울 때 헤어지는 게 가장 아름답지 않나 싶다"고 덧붙였다.
해체를 앞둔 장기하와 얼굴들 보컬 장기하가 1일 서울 여의도 위워크에서 열린 마지막 앨범이자 정규 5집 '모노(mono)' 발매 음감회에서 앨범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정중엽은 "지난 10년간 이루고 싶은 거의 모든 걸 다 이뤘다. 밴드들이 주로 사건, 사고 때문에 활동을 마무리 하는데, 전혀 그런 일 없이 마무리 하게 돼 기쁘다"고 웃으며 "재밌었던 기억을 가지고 앞으로 또 다른 활동을 해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하세가와 요헤이는 "멤버들과 10년간 가족 같이 지내왔다. 언제든 다시 만날 수 있는 환경이기 때문에 해체, 헤어짐이라기 보단 가족들과 같이 살다가 독립해서 같은 동네에 살게되는 것 정도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팀에 뒤늦게 합류한 멤버인 전일준은 "장기하와얼굴들은 대한민국 최고의 밴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면서도 "앞으로 또 새로운 길이 열리는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마지막 앨범으로 결정된 정규 5집의 제목은 '모노'(mono.)다. 장기하와얼굴들은 9곡 전곡을 스테레오가 아닌 모노로 녹음한 것은 물론, 앨범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혼자'였기에 이 같은 앨범명을 택했다고 밝혔다.
장기하는 "그때그때 생각이 나면 음악 작업을 하는 편이다. 보통 10곡쯤 만들었을 때쯤 공통점이 보이는데 이번에는 그 공통점이 '혼자'였다"고 했다.
이어 "비틀즈 1집의 오리지널 모노 LP를 구해 듣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모든 악기가 가운데에 몰려 있는데 묘하게 더 집중되는 느낌이었다"며 "모노가 앨범 키워드인 '혼자'와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어서 마음에 쏙 들었다. 군더더기 없는 작곡과 편곡을 추구해오기도 한 만큼 이번이 모노 사운드에 도전하기 적기였다"고 설명을 보탰다.
또한 그는 "극단적으로 '혼자' 녹음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미국 죠수아 트리 사막으로 향하기도 했다"며 "실제로 사막 한복판에서 녹음을 했었는데 결국엔 귀국해서 전부 다시 녹음했다"는 에피소드를 밝혔다. 그러면서 "추상적인 형태로 얻은 그 무언가는 앨범에 담겨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앨범의 타이틀곡은 장기하와얼굴들 특유의 음악 색깔이 잘 묻어난 '그건 니 생각이고'다. 특히 이목을 끄는 지점은 2절에 서태지와아이들의 '환상 속의 그대' 를 샘플링한 부분이 있다는 점이다.
장기하는 "'환상 속의 그대' 중 '그대의 머리 위로 뛰어다니' 부분을 샘플링했다"며 "친분이 없던 서태지 선배에게 데모곡과 함께 이메일을 보냈는데 '리스펙하는 뮤지션이니 당연히 수락하겠다'며 '멋지게 해보시길 바란다'고 얘기해주셨다"는 후일담을 밝혔다.
이번 앨범 작업에 도움을 준 것은 서태지뿐만이 아니다. 방송인 유병재와 영화감독 윤종빈은 각각 수록곡 '거절할 거야'와 '초심'의 뮤직비디오 디렉팅을 맡았고, 배우 박성웅, 김성균 등이 '초심' 뮤직비디오에 특별출연해 장기하와얼굴들에 힘을 보탰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장기하는 여러모로 특별한 앨범인 정규 5집으로 연말까지 활발한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해체 전 마지막 콘서트는 12월 29일부터 31일까지 3일간 서울 연세대학교 백주년기념관에서 '장기하와 얼굴들 마지막 공연 [마무리: 별일 없이 산다]'라는 타이틀로 개최된다.
기자간담회 말미 장기하는 "평소 실제 쓰는 말과 억양으로 노래를 쓰자는 생각으로 앨범을 만들어왔다. 우리말 고유의 특성을 자꾸 숨기려는 경향이 대중 음악계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경향을 신경쓰지 않고 우리말스럽게 가사를 썼다는 것은 감히 우리가 뭔가 보여준 것이지 않나 생각한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5집이 오늘 발매됐다. 앞으로 두 달간 이 음악으로 최대한 재밌게 살아보려 한다"며 "내년 1월 1일부터 어떤 음악을 하게 될지 저도 궁금하다. 아무것도 정해놓은 게 없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고민하며 완전히 무(無)에서 다시 시작해보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