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베어스 정수빈. (사진=두산 제공)
두산 베어스 정수빈이 방망이를 쥐는 모습을 보면 다른 선수들과 확실한 차이를 보인다. 배트 노브(손잡이 끝)부터 주먹 두 개는 들어갈 정도의 여유를 두고 올려 잡는다.
어쩌다 이렇게 방망이를 쥐게 되었을까. 정수빈은 살아남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여러 가지 타격폼을 해봤는데 이 자세가 가장 잘 맞는다"라며 "원래 홈런을 많이 때리는 유형의 타자가 아니기 때문에 안타만 때려내면 된다는 생각으로 짧게 잡는다"고 밝혔다.
최대한 많은 출루로 후속 타자에게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해 극단적인 타격폼을 취하는 정수빈. 출발은 좋았다. 1차전에서 5타수 3타를 때려냈다. 팀은 비록 패했지만 정수빈의 자신이 생각한 대로 움직였다. 그러나 2~3차전에서는 빛을 내지 못했다. 각각 4타수 무안타, 5타수 무안타에 그쳤다.
팀이 1승 2패로 시리즈 전적이 몰린 상황에서 맞이한 4차전. 정수빈의 방망이가 다시 힘을 냈다. 이번에는 조력자가 아닌 해결사로 나섰다.
정수빈은 9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 한국시리즈(KS) 4차전에서 0-1로 끌려가던 8회초 1사 1루에서 경기 흐름을 바꾸는 투런 홈런을 터트려 이날 경기의 주인공이 됐다.
두산은 8회초 선두타자 백민기가 중전 안타로 출루했다. 하지만 허경민이 번트 실패 끝에 내야 땅볼에 그치며 진루타를 만들지 못했다.
귀중한 기회를 날릴 위기에 처한 두산. 타석에는 정수빈이 들어섰다. 정수빈은 3회 두 번째 타석에서 안타를 때려내며 타격감을 조율했다. 그리고 SK의 앙헬 산체스와 승부를 펼쳤다.
정수빈은 2볼-1스트라이크에서 4구째 153km의 낮게 들어온 직구를 공략했다. 완벽한 타이밍에 배트 중심에 맞은 타구는 우측 담장을 향해 뻗어갔다. 정수빈은 방망이에 맞는 순간 홈런을 직감하고 양손을 번쩍 들어 환호했다. 그리고 타구는 바람대로 담장을 넘어갔고 두산은 2-1로 역전에 성공했다. 안타를 위해 짧게 잡은 방망이로 만든 값진 홈런이었다.
김재환이 부상으로 이탈하고 오재일이 부진에 빠지며 해결사 부재에 허덕이던 두산은 정수빈의 깜짝 홈런으로 시리즈를 원점으로 돌리는 데 성했다. '짧은 검투사' 정수빈이 만든 승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