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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준 위안과 용서, 거칠었던 청년들을 변화시키다

인권/복지

    자연이 준 위안과 용서, 거칠었던 청년들을 변화시키다

    • 2018-11-19 05:35

    런던 러시킨 밀 대학방문기…농업이 발달장애인들 치유해
    농작물 재배하며 성취감 획득하고 관계 이해의 폭 넓어져
    스마트팜은 발달장애인 맞춤형 일자리…쾌적하고 도심 근방서 운영 가능
    "푸르메에코팜, 발달장애인과 시민이 함께 즐기는 공동체로 가꿔야"

    ◇ 자연과 어우러진 영국 발달장애 청년의 변화

    잔디밭을 정리하는 발달장애 학생. 사진=시립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최미영 운영지원실장

     

    성인 발달장애인의 사회적 역할 확대를 위한 연수로 영국의 발달장애인 대상 고등전문학교(specialist college) 중 농업중심학교 몇 곳을 방문했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학대와 결핍, 중복장애가 있는 자폐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러스킨 밀 대학(Ruskin mill college)이다.

    견학 도중 헤드폰을 쓰고 잔디를 깎는 덩치 큰 청년을 보았다. 잔디를 깎는가 싶더니 갑자기 기계를 내팽개치고 소리를 지르며 잔디밭을 구르고 잔디를 잡아 뜯었다. 청년의 움직임이 매우 거칠었기 때문에 연수단 일행은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1시간 정도 농장을 견학하고 나서 다시 잔디밭으로 왔을 때 그 청년은 매우 열심히 또 정확하게 자신이 맡은 구역의 잔디를 거의 다 깎았다. 심지어 일을 다 마치고 편안한 표정으로 동료들이 있는 다른 장소로 차분히 이동했다.

    청년의 전혀 다른 모습에 의아해하자 기관 관계자가 설명을 시작했다.

    영국 도심의 아파트에 살던 청년은 공격적인 행동 때문에 이웃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행동을 자제하라는 부정적인 말과 시선을 수없이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자해와 타해는 점점 더 심해졌다. 결국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는 전문가의 평가를 받아 이곳에 오게 됐다.

    러스킨 밀 대학을 둘러싼 자연환경은 그가 아무리 소리치고 던지고 뛰어 다녀도 탓하지 않는다. 자연은 그의 공격적인 행동에도 반응하지 않을 뿐더러 부정적인 자극을 주지 않는 것이다.

    작업 중 휴식을 취하는 러스킨 밀 대학 학생들. 사진=최미영 실장

     

    점차 스스로를 인정하고 자신감을 갖게 되면서 공격성과 도전적인 행동이 감소했다. 타인과 함께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독립적 수행능력도 향상됐다. 청년이 변화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자연이 주는 편안함, 위안, 기쁨, 그리고 용서가 아니었을까.

    ◇ 자연이 치유한 한국 발달장애 청년

    2년 전 주간보호 이용자 중 참기 힘든 괴성과 함께 천장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뛰어오르는 과격한 행동을 하는 청년이 있었다. 1층에서 지른 괴성이 5층까지 들릴 정도였다. 다른 이용자들에게 불편함을 초래하자 결국 어머니는 주간보호서비스를 중단했다.

    어머니 또한 장애자녀 양육으로 오는 심한 스트레스로 자율신경이 조절되지 않아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상태였다. 청년을 떠나보내면서 뭐라 말할 수 없이 마음이 무거웠던 적이 있다.

    지난해 서울시 최중증 발달장애인의 낮활동 시범사업을 하면서 다시 그 청년을 만나게 됐다. 개별 지원 서비스였기에 낮 동안 주로 근처의 숲이나 공원을 자주 산책했는데 지원 교사가 얘기하길 소리치며 뛰는 행동이 상당히 줄었다는 것이다. 개별 지원 서비스의 영향일 수도 있지만, 자연이라는 환경적 영향이 긍정적 변화를 일으킨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별 지원 서비스를 시작한지 3~4개월이 지나자 청년은 물론, 어머니의 표정에서도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장애인이 치유의 과정을 거치면서 얻게 되는 행복은 곧 가족 모두의 행복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됐다.

    ◇ 발달장애인의 성장과 치유

    앞선 두 사례에서 보듯 자연은 발달장애인의 성장과 치유에 큰 영향을 준다. 즉, 발달장애인에게는 감각적 자극과 부정적 자극이 최소화된 자연과 어우러진 일자리가 필요하며, 특히 농업과 같은 활동은 날씨, 흙, 거름, 먹이 등 여러 자연적 요소들과 밀접한 작업이기 때문에 자연에서의 교육은 상호간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온실에서 작업 중인 러스킨 밀 대학 학생. 사진=최미영 실장

     

    닭과 소통하는 자폐학생들. 사진=최미영 실장

     

    러스킨 밀 대학 장애청년의 경우, 예전 교육환경에서는 실패와 부정적인 경험만을 얻었다면 자연 속에서 생활한 후 관계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졌다.

    스스로 채소와 동물을 키우고, 생산한 작물이 음식과 상품으로 완성돼 시민들에게 판매되는 마지막 과정까지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이 다른 생명에게 직접 도움을 주는 작업인 농작물 재배는 성취감, 자신감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그런 과정을 통해 자신이 타인들에게 피해를 주는 존재, 실패한 존재, 사회에 무의미한 존재로 여기기보다는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편견이 없는 식물, 동물과의 교감은 관계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성취감을 부여한다.

    ◇ 발달장애인과 스마트팜…좀 더 지역 가까이, 쾌적하고 안정된 일자리

    농업이 주는 여러 긍정적인 요인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발달장애인의 일자리로 각광받지 못했던 이유가 있다.

    전통적인 농업은 많은 면적의 땅을 필요로 했고, 투자되는 땅과 제반 노력에 비해 더 많은 생산량을 기대하기 쉽지 않았다. 또한 감각적으로 예민한 발달장애인에게 수시로 변화하는 날씨와 거친 작업환경은 부정적인 자극을 줄 가능성이 컸다. 젖은 흙의 감촉이 싫거나 햇빛이 눈부셔 농업에 적응하지 못한 사례도 있었다.

    또 넓고 저렴한 땅이 있는 곳은 대체로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친숙한 생활환경이나 가족, 친구와 떨어져야 한다는 것은 발달장애인이나 그 가족들이 농업 일자리를 쉽사리 선택하지 못하게 한 요인이 됐다.

    직접 재배한 농산품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학생들. 사진=최미영 실장

     

    그러나 최근 대두되고 있는 ‘스마트팜’은 일정 공간에서 최대의 생산을 꾀하므로 도심과 가까운 곳에서도 충분히 운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쾌적하고 규칙적인 제어 시스템이라는 것에서 예측 가능한 상황을 좋아하는 자폐성 장애인과 단계별 단순작동이 가능한 지적장애인의 특성에 더욱 적합한 일자리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첨단 시스템을 갖춘 스마트팜은 장시간 근무가 어려운 발달장애인의 부족한 기능을 보완해줄 수 있다. 그들에게는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환경에서 행복하게 일할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직접 재배한 생산품을 조리,판매하는 학생들. 사진=최미영 실장

     



    ◇ 발달장애인과 시민이 함께 즐기는 공동체를 꿈꾸다

    발달장애인이 생산한 것을 시민이 소비하며 함께 어우러지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방문한 영국, 독일, 스위스의 농업중심 발달장애인 일자리‧공동체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농가 레스토랑에서 식사 후 담소를 나누는 지역 주민들. 사진=최미영 실장

     

    학생들이 재배한 농산물 판매 마켓. 사진=최미영 실장

     

    발달장애인의 생산품 판매에 지역사회와 국가가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는 것, 각자의 요구에 맞는 다양한 업무배치를 위해 농업생산 이외의 판매와 서비스 산업이 함께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발달장애인의 도전에 지역사회의 많은 시민들이 기꺼이 협력하고 응원한다. 우리나라와 비교했을 때 가장 다른, 참 부러웠던 환경이다.{RELNEWS:right}

    25년 동안 장애인 복지 분야에서 일하며 만났던 많은 발달장애인들은 내가 기대했던 그 이상의 역할과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아직도 발달장애인은 지역사회에서 한 역할을 담당하는 일원이라기보다는 일할 능력이 없는 무기력한 사람들로 평가되는 게 현실이다.

    카페 이용 주민을 위해 커피를 만드는 학생. 사진=최미영 실장

     

    그런 점에서 푸르메 에코팜은 발달장애인의 농업 일자리 창출을 넘어 농작물을 가공‧판매하는 공간이자 치유의 공간으로 시민들이 함께 하며 발달장애인의 긍정적인 역할을 보여줄 수 있는 곳이 되기를 소망한다.

    발달장애인의 행복한 삶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역할을 기대하는 이웃의 시선이다. ‘푸르메에코팜’이 발달장애인이 가치 있는 역할을 하는 존중받는 시민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사회 전반적으로 그 인식을 넓혀나가는 출발선이 되기를 바란다. 농업과 자연을 통한 발달장애인의 성장과 치유 그리고 행복한 일자리 스마트팜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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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싣는 순서
    ※이 글은 국내 발달장애 청년들의 자립에 필요한 '희망의 스마트팜' 조성을 위해 CBS와 푸르메재단이 함께 마련한 연속 기획입니다.
    ① '말아톤' 13년 후…고단한 삶속에 피워낸 작은 희망
    ② 아이에게 한시도 눈을 못 뗀 19년…발달장애 엄마들
    ③ 발달장애 청년 위한 일자리, 푸르메재단이 만듭니다
    ④ 늙어가는 엄마는 점점 겁이 납니다, 아들 때문에
    ⑤ "내 아이는 자기 집에서 살다가 죽으면 안 되나요?"
    ⑥ 35세가 되면 일터에서 밀려 집으로 쫓겨나는 그들
    ⑦ 10년간 10억 기부 기업인 "행복한 삶 비결은 나눔"
    ⑧ [르포] 발달장애 청년들 일터로 거듭난 여주 스마트팜
    ⑨ 농업을 통한 재활과 치유, 네덜란드 '케어팜'을 가다
    ⑩토마토 강국 스페인 울린 네덜란드의 '신의 한수'
    ⑪ 네덜란드, '꽃의 나라'로만 불러서는 안되는 이유
    ⑫ 런던 러스킨 밀 대학, 발달장애인을 치유하는 농업의 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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