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힙합신에서 활동 연차는 그다지 중요치 않다. 활동 연차와 상관 없이 실력이 탄탄하고 감각이 뛰어나면 빠른 시간 안에 리스너들에게 인정받는 래퍼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쿠기(Coogie, 본명 김정훈)는 현 힙합신의 흐름을 대변하는 래퍼 중 한 명이다. 정식으로 활동을 시작한지 1년여 만에 자신의 진가를 알리는 데 성공, 많은 팬을 보유한 인기 래퍼가 됐다.
엠넷 '쇼미더머니 777'(이하 '쇼미')에 출연한 건 '신의 한 수'가 됐다. '무빈 앤 무빈'(Movin & Movin), '스즈란' 등의 곡으로 주목받으며 차츰 팬을 늘려가던 쿠기는 '쇼미'에서 본선 무대까지 진출하는 활약을 펼치며 인기에 날개를 달았다. 방송 출연 전 9천여 명이었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방송 이후 12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쇼미'가 종영한지도 어느덧 한 달이 지난 가운데, 쿠기는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을 실천하기 위해 새 EP '이모 #1'(EMO #1)를 들고 돌아왔다. 이를 기념해 6일 서울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쿠기는 "이번 앨범으로 방송에서 못 다 보여준 쿠기의 새로운 면을 보여드리겠다"는 활동 포부를 드러냈다. 다음은 쿠기와의 일문일답.
-'쇼미' 출연 이후 인기가 확 늘었다.
"방송 출연 이후 팔로워 수가 10만 명 이상 늘었다. 아직도 얼떨떨하고 믿겨지지 않는다. '내가 이 정도의 관심과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음악하면서, 공연하면서 사는 게 꿈이었는데 실제로 그렇게 됐다. 이젠 더 큰 꿈을 찾아 나설 때다"
-빠른 시일 내에 동료 뮤지션들과 힙합 리스너들에게 인정받은 비결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나.
"처음 랩을 시작했을 때부터 많은 래퍼분들에게 '톤이 좋다'는 칭찬을 들었다. '쇼미'에서 만난 더콰이엇 형님께서도 톤을 칭찬해주셨다. 저도 이 정도로 저를 좋아해주실 줄 몰랐다. (미소). 싱잉 랩까지 시도해더 좀 더 매력 어필이 되지 않았나 싶다"
-미국 래퍼 릴펌의 랩 스타일을 따라했다는 부정적 평가를 내리는 이들도 있다. '쇼미' 디스배틀에서 키드밀리가 그 부분을 강조한 랩을 하기도 했었고.
"릴펌과 비슷하다는 건 칭찬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의 랩 스타일을 따라하진 않았다. 오히려 전 릴 우지 버트, 페이머스 덱스, 리치 더 키드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 릴펌도 그들에게 영향을 받았지 않았나 싶다. 아, 특히 제 노래 중 '무빈 앤 무빈'이 릴펌의 '크레이지'(Crazy), '구찌 갱'(Gucci Gang)을 따라한 거라고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제가 사운드 클라우드에 곡을 공개한 시기가 릴펌보다 빨랐다. (미소)"
-올해 한국식 나이로 스물 여섯. 원래 취업을 준비하던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걸로 안다.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뭐였나.
"대학교 때 흑인 음악 동아리 활동을 했는데, 동아리 친구 중 한 명이 먼저 음악을 시작했다. 그 친구가 현재 저와 같은 '하이브'라는 크루에 있는 블라세키드다. 방학 때 그 친구 작업실에 놀러가서 믹스테잎을 만들었고, 그걸 여러 래퍼와 DJ 분들에게 인스타그램 DM 등으로 보냈다. 그런데 그걸 들은 빌스택스(바스코) 형이 저희에게 연락을 해온 거다. 그 일을 계기로 빌스택스 형과 인연을 맺으면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활동은 뒤늦게 시작했지만, 오래 전부터 실력을 쌓아 온 덕분에 좋은 평가를 받았나 보다.
"흑인 음악 동아리 활동을 대학교 1학년 때부터 했다. 군 생활 할 때도 계속 단련을 하며 내공을 쌓았다. 공군이어서 pmp 소지가 가능했고, 덕분에 군 생활을 하면서도 pmp로 틈틈이 힙합 음악을 들으며 가사 쓰는 연습을 할 수 있었다. 남들이 걸그룹이 나오는 음악 프로그램을 볼 때 홀로 힙합 뮤지션들이 나오는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챙겨보고, '싸지방'(사이버 지식 정보방)에 가서도 힙합 음악을 들었을 정도로 힙합 마니아였다. (웃음)"
-부모님이 음악하는 걸 반대하셨다고 들었다.
"부모님께 허락 받은 시간이 1년이었다. 3학년 1학기까지만 마치고 휴학 중인 상태라 그 안에 별다른 성과가 없으면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했다"
-다행히 1년 안에 성과를 냈다.
"이제 기한은 없어졌다. (미소). 부모님께서 '쇼미'가 끝난 이후 '자랑스럽다, 고맙다'는 말씀을 하시더라. 요즘은 저의 음악 활동을 적극 지원해주고 계시다"
-새 EP 수록곡들을 미리 들어봤다. '빡센 랩'을 선보였던 이전 곡들에 비해 힘을 조금 뺀 느낌이던데.
"첫 믹스테잎과 첫 EP에선 빡센 랩을 했는데, 이번엔 새로운 느낌을 내봤다. 앞으로 내 앨범은 이런 느낌과 첫 EP의 느낌 두 가지 노선으로 나뉠 것 같다"
-타이틀곡 '저스틴 비버'(Justin Bieber)에 대해 소개해달라.
"대학 여학우가 '너 래퍼하냐? 래퍼들 여자 많이 만나고 다닌다는 가사 쓰던데 넌 그러지 마라. 실제로도 그러지 말고'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말에 영감을 받아서 저를 그런 래퍼로 인식해서 헤어지자고 말하는 연인이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하며 가사를 썼다"
-7번 트랙 '피처링. 위켄드'(Feat. Weekend)라는 곡을 통해서는 래퍼가 된 이후 달라진 삶에 대해 이야기 했던데.
"예전에는 주말이 쉬는 날이었는데, 지금은 일하는 날이 됐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 내 인생이 이전과 비교해 완전히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더라. 7번 트랙은 그런 생각에서 출발한 곡이다. 달라진 인생뿐만 아니라 정답이라는 게 없는 음악을 하며 느낀 답답함에 대해서도 얘기했고"
-새 EP 발매를 기념해 하고픈 말이 있다면.
"많은 분들이 들어주셨으면 한다. 제가 여태껏 들려드린 음악들에 비해 덜 부담스러운 스타일의 곡들이 담겼다. 낯설다고 느끼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 저에게 이런 면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향후 계획도 얘기해달라.
"다음 앨범은 내년 3월쯤 나올 것 같은데, 그때는 첫 EP 때처럼 빡센 랩을 들려드릴 거다. 그 이외에도 여러 아티스트들과 작업한 결과물들이 계속해서 나올 거니까 기대해주셨으면 좋겠다. 퀄리티 높은 음악을 지속적으로 선보여 내리막을 타지 않도록하겠다
-앞서 '이젠 더 큰 꿈을 찾아 나설 때'라고 했는데 새롭게 잡은 목표나 꿈이 있나.
"최고가 될 생각은 없지만, 최고 중 한 명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계속 트렌디한 음악을 들려드릴 거다. 아, 그리고 지금 원룸에 살고 있는데 쓰리 룸을 사는 게 목표다. (웃음). 보통 성공하며 차부터 사는데 전 집으로 먼저 가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