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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이런 주총은 없었다" 스튜어드십코드 '미친 존재감'

경제 일반

    "지금까지 이런 주총은 없었다" 스튜어드십코드 '미친 존재감'

    스튜어드십코드 발동 첫 사례, 총수 퇴출도 첫 사례
    사정기관 총 동원했지만 실패한 미션, 국민연금이 성공
    개별 기업에 맞춘 스튜어드십 코드 적용은 한계
    어느 정권에서도 적용가능한 원칙과 독립성 갖춰야

    국민연금이 27일 열린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 원칙)를 발동하면서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을 좌절시켰다.

    지난해 7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첫 적용 사례이자 이로 인한 재벌 총수 퇴출의 첫 사례로 향후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재벌 기업들의 경영권 견제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 반대표 결정 '주주 마음 흔들었다'

    우기홍 대한항공 대표이사가 27일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에서 열린 '대한항공 정기 주주총회'에 참석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이날 열린 대한항공의 제57회 정기 주주총회에서 조양호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 안건은 총 참석 주주 가운데 35.9%의 반대로 부결됐다.

    대한항공 정관에 따르면 '사내이사 선임은 주총 참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근소한 차이로 해당 안건이 부결된 것.

    대한항공의 지분구조를 살펴보면 조 회장과 한진칼(29.96%) 등 특수관계인이 33.3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또 국민연금이 2대 주주로 11.56%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이어 외국인이 20.50%, 기관과 소액주주 등 기타 주주가 55.09%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이날 참석 주주의 64.1%가 찬성표를 던진만큼 조 회장 측이 특수관계인 지분을 제외하고도 30% 이상의 우호지분을 모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플로리다연금(SBA of Florida)을 비롯한 해외 공적 연기금 3곳이 반대 의견을 내는 등 총수일가 '갑질' 파문으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반대 움직임이 커졌지면서 반대표도 1/3 이상이 됐다.

    특히 주총 전날 2대주주인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던지기로 결정 하면서 마지막까지 고심하던 외국인과 기관, 그리고 소액주주의 마음을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 향후 재벌기업 경영권 견제 '주목'

    27일 오전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에서 열린 제57기 정기주주총회에서 한 참석자가 의사진행 발언을 요청하며 의장을 맡은 우기홍 대표이사에게 항의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부결은 지난해 7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첫 적용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매우 크다.

    특히 각종 전횡에도 총수일가가 퇴출된 사례는 거의 없어 '재벌공화국'이라고 불리는 한국에서 스튜어드십 코드를 통한 경영권 박탈은 전대미문의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조 회장의 큰 딸인 조현아 씨의 소위 땅콩회항 사건에 이은 작은딸 조현민 씨의 물컵 투척 사건 이후 총수일가의 각종 갑질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조 회장 일가의 퇴출 여론은 커졌다.

    조 회장 일가는 대한항공의 주식 단 0.01%만을 직접 보유하고 있지만 대한항공의 지주회사인 한진칼의 지분 24.79%를 보유한 최대주주 자격으로 대한항공을 좌지우지해왔다.

    이에 경찰과 검찰, 국세청, 관세청 등 정부 사정기관이 총 출동해 조 회장 일가의 비리를 파헤쳤지만 이같은 지분 구조하에서 조 회장 일가를 퇴출시킬 방법은 마땅히 없었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발동하면서 지극히 합법적인 방식으로 강제 수사권을 지닌 권력기관들 조차 하지 못한 조 회장 퇴출을 성공시킨 것.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시장에 130조원 가량을 투자하고 있는 큰손으로 지난해 연말 기준으로 5% 이상의 지분을 가진 상장기업은 297개, 10% 이상은 81개에 달한다.

    이는 국민연금이 국내 상당수 재벌기업의 2,3대 주주라는 뜻이다. 따라서 국민연금이 향후 지속적으로 스튜어드십 코드를 발동해 재벌 총수일가의 경영활동을 견제할 경우 그 파급 효과는 예상을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악용 가능성도 상존 "지속가능한 제도적 틀 갖춰야"

    (사진=연합뉴스)

     

    한진그룹 총수일가의 갑질 파문처럼 전 국민적인 공분을 살 뿐만 아니라 기업경영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큰 사건의 경우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적용에 이론의 여지가 별로 없다.

    하지만 적용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한항공 외에 다른 개별 기업의 사례로 들어가면 스튜어드십 코드 적용과 관련한 논란을 피하기 쉽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대한 국민연금의 찬성 의결권 행사다. 당시에는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되기 전이지만 국민연금은 섀도보팅(중립투표) 원칙을 깨고 이례적으로 찬성표를 던졌다.

    박근혜정권의 국정농단 사태 수사에서도 드러났지만 이같은 결정은 삼성의 경영권 승계를 도와주기 위한 정부의 압력 때문이었고 거슬러 올라가면 그 배경에 최순실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같은 이면의 목적은 숨긴채 '글로벌 헤지펀드가 국내 최대 기업의 경영권을 공격하고 있다'는 프레임을 씌어 국민연금의 찬성표를 이끌어냈다.

    이 때문에 이런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개별 기업을 넘어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흔들림 없이 원칙과 독립성을 지킬 수 있는 제도적 틀을 갖춰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예를 들어 현재 스튜어드십 코드 적용 여부는 자문기구인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가 1차적으로 정하지만 최종 의사결정기구는 기금운영위원회가 맡는다.

    그런데 기금운영위원회는 보건복지부 장관(위원장)을 비롯해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임명하는 인사들이 포진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의견대립이 첨예한 사안이 발생할 경우 독립성 논란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

    금융소비자원 조남희 원장은 "이제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어떻게 정착시킬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라며 "특히 정권이나 시장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고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적용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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