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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기생충'…봉준호 "무책임하기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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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한 '기생충'…봉준호 "무책임하기 싫었다"

    [봉준호 감독이 직접 해설하는 '기생충' ③·끝]
    "장밋빛 인생 출구…잔인하고 무책임한 태도"
    "현실인데도 인정 않으려는 것들 항상 지하로"
    약자끼리 서로를 베던 그 칼이 위로 향할 때…

    이 인터뷰 기사에는 영화 '기생충'에 관한 스포일러가 담겼습니다. '기생충'을 이미 봤거나 재관람을 염두에 둔 독자들의 이해에 보탬이 될 만한, 봉준호 감독이 직접 전하는 자세한 해설을 3회에 걸쳐 전합니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 봉준호는 더 재밌는 '기생충'을 일부러 거부했다
    ② 박서준은 '기생충'에서 내내 최우식 곁을 맴돈다
    ③ 솔직한 '기생충'…봉준호 "무책임하기 싫었다"
    <끝>


    영화 '기생충' 스틸컷(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고삐 풀린 자본주의가 낳고 기른 극심한 빈부격차를 고발하는 영화 '기생충'. 봉준호 감독 전작 '옥자'(2017)와 '설국열차'(2013)까지 3편을 묶어 '봉준호 자본 3부작'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는 말에 그는 "우리 집사람도 똑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며 웃었다.

    다만 '설국열차'에서 기차로 상징되는 체제를 전복시키는 데까지 이야기를 밀어붙였던 봉 감독이 '기생충' 결말에서는 한 발 물러선 듯 관조적인 시선을 유지하려 애쓴 것으로 여기는 관객들도 있을 법하다.

    이에 대해 봉 감독은 "결말이 비관적이냐 낙관적이냐를 떠나서 솔직해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설국열차'는 SF장르를 핑계 삼아 관객들에게 희망을 던진 작품이다. '옥자' 엔딩과 비교하면 어떨까. 옥자와 미자(안서현)는 무릉도원 같은 산으로 돌아왔지만, 둘의 표정과 행동은 예전과 똑같아 보이지 않는다. 봐서는 안 될 것들을 본 아이들이 전하는 씁쓸한 느낌이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이번 '기생충'은 기우(최우식)의 얼굴로 끝을 내고 싶었다."

    봉 감독은 "결말에서 기우가 카메라를 바라본다. (비슷한 장면으로 끝맺은) '살인의 추억'(2003) 엔딩과는 맥락이 전혀 다르지만, 어쨌든 송강호 아들 세대 격인 배우가 다시 한 번 카메라를 보면서 마무리 짓는 것이 의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기우가 처한 상황에 대해 '장밋빛 인생을 보장하는 출구가 있을 것'이라고 설정하기는 어렵지 않다. 마음 먹으면 그렇게 끝을 맺기가 더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이 더 잔인하고 무책임한 태도라고 여겼다. 차라리 솔직하게 '아… 슬프다'라고, 관객들이 그 슬픔을 직시하도록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기우가 '그 집을 사겠다'고, '아빠는 계단만 올라오면 된다'고 하는데 너무 슬픈 말"이라며 "실제로 계산해 봤더니 기우가 그 집을 사려면 월급을 한푼도 안 쓰고 모으더라도 547년이 걸리더라"고 설명했다.

    "차라리 그 잔인한 유머, 슬픔을 인정하는 것이 창작자로서 가져야 할 태도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 자막이 올라갈 때 얼굴은 나오지 않지만 기우가 노래를 한다. 시나리오를 쓴 사람이 노랫말을 붙이는 게 낫다고 해서 제가 가사를 붙였는데, 노래도 그렇게 희망적이지 않다. 어쨌든 기우가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느낌은 있다."

    봉 감독은 "분명히 상황이 좋을 리 없는데 '좋을 것'이라고 단정짓는 태도는 무책임하다"며 "이 마지막 노래를 통해 두 시간 동안 영화로 봤듯이 좋은 않은 상황인데도 기우가 뭔가를 꾸역꾸역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유머 섞인 여담으로 "'설국열차' 결말에 등장하는 북극곰은 생태계가 복원되고 있다는 상징이었는데, 최근까지 '북극곰이 아니라 사슴을 올려놨어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했다"며 "'살아남은 애들이 (북극곰에게) 잡아먹힌다'는 것과 같은 해석의 여지를 차단하지 못해 후회된다"고 토로했다.

    ◇ "땅 밑에 사는 귀신… 지하는 그렇게 슬픈 유령의 공간이 된다"

    봉준호 감독(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봉 감독 작품들 속에서 지하공간은 이야기의 반전을 꾀하는 핵심 장치로 활용돼 온 측면이 강하다. 심지어 '설국열차'에서는 일그러진 체제를 유지하려 애쓰는 조악한 현실이 열차 밑바닥에 웅크리고 있었다.

    '기생충'에서 봉 감독의 이러한 기조는 보다 뚜렷한 윤곽을 드러내며 강화되는 모습이다.

    그는 "분명히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인데도 우리가 왠지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들이 있다"며 "그런 것들이 항상 땅속으로 가게 되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제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작품인 '지리멸렬'(1994)의 3번째 에피소드 역시 지하실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뤘다. 그곳은 당시 제가 살던 아파트 지하였다. 중·고교, 대학 시절 고층 아파트에서 자랐는데, 실제로 아파트 지하는 경비원들, 청소하시는 분들의 비공식적인 휴식공간으로 활용된다."

    봉 감독은 "그곳 지하에는 냉장고도 있고, '플란다스의 개'(2000)에서 변희봉 선생이 지하실에서 워킹머신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실제로도 그랬다"며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들이 지하로 내려가면서 만들어지는 비밀은 그 자체로 기괴하다"고 말했다.

    "'기생충'에서 부잣집 박사장(이선균)네 지하에 숨어 사는 근세(박명훈)를 다루는 방식을 보자. 박사장 아내 연교(조여정)는 '아들이 1학년 때 집 안에서 귀신을 봤다"면서 그 인간을 유령 취급하잖나. 멀쩡하게 살아 있는 사람이 그 집에서는 귀신으로 치부되는 것이다. 땅 밑에 사는 귀신…. 지하는 그렇게 유령의 공간이 된다. 몹시 슬픈 일이다."

    그는 "극중 근세가 계단에서 눈만 내미는 장면이 있는데 진짜 귀신 같아 보이긴 하더라"며 "그 장면은 아무런 특수효과도 쓰지 않은 것"이라며 웃어 보였다.

    박사장네 입주 가사도우미 문광으로 분해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과시한 배우 이정은에 대해서는 "목소리의 마술사다. 오죽했으면 '옥자'에서 옥자 목소리 연기를 했겠나. 다른 배우·스태프들이 웃음을 참느라 힘들었다"고 전했다.

    "이정은 배우가 지하실 찬장을 미는 장면은 시나리오 쓸 때 먼저 그림으로 그려뒀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찬장을 미는) 형태까지 되게 집착했던 이미지다. 그 장면 그대로 파주 액션스쿨에서 와이어로 자세 유지하는 훈련을 했다. 실제 세트장에서도 와이어를 쓰고 나중에 CG로 지웠다. 우리끼리는 '공중부양신'이라고 불렀다. (웃음)"

    ◇ "수직으로 상승하는 칼…위대한 배우 송강호의 놀라운 설득력"

    영화 '기생충' 스틸컷(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기생충'의 클라이맥스는 박사장네 집에서 벌어지는 아비규환 칼부림 시퀀스다. 관객들로부터 여러 해석과 그에 따른 복잡다단한 정서를 이끌어내는 구간이기도 하다.

    봉 감독은 "영화를 보면 그 칼은 부유한 사람이 아니라 약자들끼리 싸웠던 칼이다. 그 칼을 기택(송강호)이 위를 향해 운반해 버리는 것"이라며 설명을 이어갔다.

    "섬뜩한 순간이다. 우리 시대는 적을 선명하게 규정하기 어렵다. 적의 실체를 파악하기도 힘들다. 할리우드 영화처럼 명백한 악당이 설정되고, 그것을 파괴하면서 쾌감을 느끼고, 극장을 개운하게 나설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저도 그러한 영화를 좋아하고 존중한다."

    그는 "다만 그러한 흐름에 굳이 저까지 하나 더 보탤 필요는 없다고 본다"며 "소명의식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라도 이상한 것 하나 더 만들어야지'라는 그런 마음가짐이 있다"고 전했다.

    "앞서 말했듯이 그 칼은 약자들끼리 서로를 베는 칼이었다. 기택의 아내 충숙(장혜진)과 근세가 다투던 그 칼은 기택에 의해 수직으로 상승한다. 그 대목에서 송강호라는 배우가 발휘하는 놀라운 설득력이 있다. 사실 시나리오에서 그 순간을 쓸 때, 다른 배우였다면 그 지문과 대사를 쓰면서 많이 불안했을 것이다. 그런데 (송)강호 형이라면 이것을 설득할 수 있다고, 그 배우의 폭발적인 에너지가 그 순간을 감당해내는 면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봤다. 그것이 배우의 위대함인 것 같다."

    봉 감독은 "극중 사건으로 기택네 가족 역시 만만찮은 데미지를 입는다. 야무진 딸 기정(박소담)을 잃고 기택은 지하로 내려가 스스로를 감금하는 식으로 대가를 치른다"며 "그 대가는 항상 예기치 못한, 이상한 쪽으로 치르게 되는 것 같다. 그게 참 슬프다"고 했다.

    "영화 속 칼이 위로 향한 것을 계급투쟁이라는 단어로 함축하기에는 이미 현실이 너무 복잡해지고 미묘해진 것 같다. 영화는 그러한 복잡 미묘한 것을 다뤄낼 수 있는 매체라고 본다. 선명한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할 목적이라면 연설을 하거나 사회과학 책을 쓰면 된다. 그러나 그러한 메시지를 훨씬 더 모호하지만 미묘하고 풍성하게 담아낼 수 있는 매체가 영화이고 연극이고 소설이다."

    그는 "우리는 뉴스를 통해 이른바 '묻지마 범죄'를 접하게 된다"며 "그것을 우발적이고 충동적인 폭발일 뿐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지만, 사실 그 사건을 깊숙이 짚어보면 아주 미묘한 맥락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영화 '기생충'을 본 관객들은 그 미묘한 맥락을 2시간 동안 아주 세세하게 접한 셈이다. 뉴스에서는 항상 그 모든 맥락이 제거되고 발생한 사건과 결과만을 전한다. 그런 사건들을 현미경으로 밀착해서 거슬러 올라가면 이 영화에서와 같은 맥락을 찾을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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