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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관계 몰래 녹음'에 여성들 울어도 '성범죄'는 아니다?

사건/사고

    '성관계 몰래 녹음'에 여성들 울어도 '성범죄'는 아니다?

    현행 성폭력처벌법은 영상 아닌 음성 규제 조항은 없어
    유포 전까지는 처벌 어렵고, 유포 후에도 명예훼손 적용 가능성
    민주당 정춘숙 의원 "입법 미비 사항 보완할 것"

    (사진=자료사진)

     


    A 씨는 우연히 남자친구가 핸드폰으로 성관계를 가질 때 몰래 녹음을 하는 사실을 발견했다. 깜짝 놀란 A 씨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지만, 영상이 아닌 녹음의 경우 유출이 되지 않는 한 처벌이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A 씨는 "음성과 함께 사진이라도 유포되면 어떻게 하느냐"며 "유포 후 괴로움은 다 당한 뒤에 처벌한다는 건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위의 사례는 지난해 9월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A 씨는 당시 올린 청원 글에 "아직도 녹음하는 걸 본 순간을 잊지 못하겠다"며 "너무 수치스럽다"고 호소했다.

    20대 여성 B씨는 "지인의 핸드폰에서 여러 개의 녹음파일을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왜 녹음했냐고 묻자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녹음해둔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며 "성관계 음성을 여러 개 핸드폰에 저장해두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고 그런 음성이 있는지도 모르는 여성들 생각에 화가 났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최근 성관계 시 상대방의 동의 없이 몰래 음성녹음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해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는 것으로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 확인됐다.

    실제로 디시인사이드 등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이른바 '꽃뱀'을 피하기 위해 몰래 녹음하라는 내용의 글들도 버젓이 올라와 있다. 한 게시글 작성자는 "추후 문제가 생겼을 때 증거가 없으면 성폭행범으로 몰리게 될 수 있다"며 "핸드폰으로 녹음을 해 대비하라"고 말했다. "제3자 목소리가 아니라 본인의 목소리가 녹음되면 괜찮다"며 녹음을 권장하는 글들도 있었다.

    '미투' 운동 등을 핑계로 성관계 음성을 상대방의 동의 없이 몰래 녹음하는 일이 빈번하고 이를 인지하게 된 피해 여성들이 유포를 두려워하며 떨고 있지만, 처벌할 법률 규정은 마땅치 않은 실정이다.

    현재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 14조에 따르면 동의를 구하지 않고 카메라 등을 이용해 성관계 영상을 촬영하는 것만으로도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하지만 음성녹음 처벌에 관한 조항은 별도로 없다. 녹음 등을 규율하는 통신비밀보호법도 당사자 간의 대화 녹음은 처벌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도 현재 법률로는 녹음하는 행위만으로는 처벌이 어렵고, 유포 시 명예훼손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가 음성녹음 사실을 알더라도 유출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어떤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태일의 이조로 변호사는 "녹음만으로는 처벌이 어렵다"며 "혹여 녹음이 유출되는 경우 형법상 명예훼손, 모욕 등을 적용하거나 사생활 침해로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온세상 김재련 변호사도 "오프라인으로 유출하면 형법상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카톡 등 메신저를 이용해 유출하면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이 적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형법상 명예훼손의 형량은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의 형량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성폭력처벌법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

    지난 2017년 보복성 음란물이 화두가 되면서 정부가 디지털 성범죄 피해방지 종합대책을 마련했지만 여기서도 음성 대책은 빠져있었다.

    이에 상대방으로 하여금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성관계 음성 녹음에 대해서도 불법 영상물과 마찬가지로 법률 개정을 통해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서승희 대표는 "우리에게는 성적인 내용이 담긴 개인의 정보가 유포되거나 유포 협박을 받는 게 성폭력으로 느껴지지만, 기존의 법률상 성폭력 처벌법 내용에 들어가 있지 않아 법률적 공백이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에서도 이같은 성범죄 사각지대를 인지하고 법률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은 "음성녹음 관련해서는 성폭력 처벌법상 처벌근거 규정이 없어 입법 공백이 있다"며 "국회에서 신종 성폭력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방안 보완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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