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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탈을 쓴 악마' 피해자 마음의 상처 노렸다

제주

    '종교의 탈을 쓴 악마' 피해자 마음의 상처 노렸다

    [고 기자의 사후담] 서귀포 여교사 살인사건
    피해자 4명 상대 특수폭행, 금품갈취에 살인까지
    마음의 상처 안고 교회 찾은 피해자들에 접근
    하나님 목소리 들먹이며 최소 9년 전부터 범행
    지난 14일 1심서 징역 30년…검찰‧피고인 항소

    지난해 6월 2일 범행 직전 아파트 엘레베이터에 탑승한 피고인 모습. (사진=자료사진)

     

    ■ 방송 : CBS 라디오 <시사매거진 제주-고 기자의 사후담>
    ■ 채널 : 표준 FM 제주시 93.3MHz, 서귀포 90.9MHz (17:05~18:00)
    ■ 방송일시 : 2019년 8월 28일(수) 오후 5시 5분
    ■ 진행자 : 김대휘 제주CBS 보도제작국장
    ■ 대담자 : 제주CBS 고상현 기자

    ◇ 김대휘> 제주지역의 사건‧사고 뒷이야기를 들여다보고, 행정 당국의 후속 대책을 점검하는 '고 기자의 사후담'. 오늘은 어떤 주제를 들고 오셨나요.

    ◆ 고상현> 네. 지난 14일이죠. 서귀포 여교사 살인사건 피고인 46살 김 모 씨에 대한 1심 선고가 이뤄졌습니다. 재판부는 징역 30년의 중형을 선고했는데요. 오늘은 이 사건을 자세하게 다뤄볼까 합니다.

    ◇ 김대휘> 고 기자가 김 씨의 수년간의 행적을 단독으로 보도했었죠. 수년간 사이비 교주 행세를 해오며 피해자 4명에게 금품 갈취, 폭행을 일삼다 결국 살인까지 저지른 것인데. 어떻게 사건이 알려지게 된 건가요.

    ◆ 고상현> 네. 김 씨의 수상한 행적이 드러난 건 지난해 6월 2일 발생한 살인사건을 통해서인데요. 이날 서귀포시 강정동의 한 아파트에서 초등학교 교사였던 27살 A 씨가 숨지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 김대휘> 김 씨가 무참히 여교사를 때려서 숨졌죠. 처음엔 이 둘의 관계에 대해 유언비어가 난무했어요.

    ◆ 고상현> 네. 40대 남성이 왜 20대 여교사를 아파트에서 때렸을까. 이 둘의 관계가 무엇인가. 이 부분에 대해 관련 기사에 의혹 댓글이 많았어요.

    ◇ 김대휘> 추측성 댓글에 유가족이 상처를 많이 받았었죠. 사건 초기 경찰은 이 둘이 종교적 멘토-멘티 관계라고 했었는데요.

    ◆ 고상현> 취재를 해보니 단순한 멘토-멘티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종교를 악용해 피해자에게서 금품을 빼앗고, 집안일을 시켰거든요. 말을 듣지 않으면 둔기로 폭행까지 일삼았습니다. 피해자만 남녀 가릴 것 없이 4명입니다. 최소 9년 전부터 범행이 이뤄졌고요. 결국 이 중 피해자 1명이 살해되면서 오랜 범행이 중단됐습니다.

    ◇ 김대휘> 상식적으로 오랜 기간 이런 범행이 가능했던 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 고상현> 저도 이 부분이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피해자들의 공통점은 가정이나 일 등에서 마음의 상처를 안고 교회를 찾은 사람들이었어요. 그 상처를 교묘하게 이용해서 자신에게 종속시켰습니다.

    ◇ 김대휘> 종속시켰다?

    ◆ 고상현> 네. 처음엔 자신을 버클리음대 출신의 작곡가라고 거짓 소개하면서 다가갑니다. 그리고 유대가 형성되면 상담해주겠다고 하는 거죠. 이 과정에서 자신의 귓가에 하나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마치 예언가처럼, 피해자들을 현혹했습니다.

    ◇ 김대휘> 그다음은요?

    ◆ 고상현> 완전히 종속됐다고 생각하면 그때부터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먹이면서 피해자들에게 집안일을 시키거나 금품을 가져오라고 강요합니다. 가령 "나는 하나님의 우체부다. 하나님이 헌금 얼마를 하라고 하셨다"라고 말하면서 금품을 갈취하는 식입니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 때도 하나님이라는 권위를 이용해요. "하나님이 벌하라고 하셨다"하면서 무차별 폭행을 하는 거죠.

    ◇ 김대휘> 하나님이라는 권위를 이용해 마음의 상처를 안은 피해자들을 무력화시킨 거네요.

    ◆ 고상현> 네. 특히 김 씨는 피해자들에게 자신과의 관계를 철저히 비밀에 부치도록 했습니다. 살해사건 피해자 유가족도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야 김 씨의 존재를 처음 알았습니다. 특히 재판 과정에서도 나머지 피해자들은 김 씨를 극도로 두려워했어요.

    ◇ 김대휘> 피해자들이 김 씨로부터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 고상현> 네. 살해사건 직전까지 김 씨가 피해자들과 자주 찾아갔다는 한 원로목사가 있는데요. 이 목사는 제게 피해자들이 위축돼 있었다. 김 씨에게 종속돼 있었다고 증언했습니다. 마치 김 씨가 사이비 교주처럼 보였다고 표현했습니다.

    [녹취 : 원로목사 B씨] "김 씨가 찾아올 때면 늘 피해자들이 함께 왔는데. 김 씨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자기 생각을 얘기하기보다는 굉장히 위축된 상태에서 '네네'라고만 답해요. 동등한 관계가 아니라 마치 주종 관계여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집단의 교주 노릇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살해 사건 현장. (사진=고상현 기자)

     


    ◇ 김대휘> 결국 김 씨에게서 벗어나려던 20대 여교사가 살해당했죠.

    ◆ 고상현> 네. 재작년 12월부터 피해자들이 하나둘 잠적했습니다. 김 씨의 횡포를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인데요. 이런 와중에 피해자 중 한 명인 27살 A 씨를 수련원처럼 쓰였던 서귀포시 강정동의 한 아파트로 불러냅니다. 그러곤 심하게 구타하고 목을 졸라 살해합니다.

    ◇ 김대휘> 안타깝습니다. 지난해 8월부터 김 씨 사건 재판이 시작됐어요. 살인, 특수폭행, 특수상해,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됐죠?

    ◆ 고상현> 네. 공소사실을 보면 살인뿐만 아니라 김 씨는 피해자들을 상대로 헌금 명목으로 3억9000만 원을 가로챘고요.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둔기로 심하게 때린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 김대휘> 살인 사건만 보면 변호인 측은 상해치사를 주장했던데, 살해 고의성이 없었다는 건가요?

    ◆ 고상현> 네. 김 씨는 재판 과정에서 A 씨가 말을 듣지 않아 홧김에 때렸는데 숨진 거라고 주장했는데요. 살해 의도가 없었다는 거예요. 그러나 재판부는 사망 원인을 보면 피고인에게 미필적 살인의 고의가 인정된다고 봤습니다. A 씨는 내부 장기가 파열돼 숨졌는데, 사람을 죽일 목적이 아니라면 이런 사인이 나올 수 없다는 겁니다.

    ◇ 김대휘> 나머지 피해자에 대한 사기나 특수폭행 건은 김 씨가 의견 진술조차 하지 못 했다면서요?

    ◆ 고상현> 네. 변호인이 이 부분과 관련해선 답답함을 토로했는데요. 제주교도소에서 김 씨를 만나면 이 부분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결국 피고인 의견 진술 없이 죄가 인정됐습니다.

    ◇ 김대휘> 이런 이유로 변호인이 김 씨의 정신감정을 의뢰하기까지 했다고 들었어요.

    ◆ 고상현> 네. 보통 심신미약 감형을 받기 위해 피고인에 대한 정신감정을 신청하는데, 혐의에 대한 의견 진술을 제대로 못 한다는 이유로 신청하는 게 저도 사실 이해가 안 됐죠. 특히 심신미약 감형을 받으려면 범행 당시에 심신미약 상태에 있어야 하는데 김 씨는 굉장히 주도면밀했거든요. 살해 직후에도 범행 흔적을 지우기도 했고요. 결국 전문의 감정 결과 범행 당시 심신 미약 상태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나왔습니다.

    ◇ 김대휘> 1심 선고가 징역 30년 나왔죠. 양형 이유가 뭔가요?

    ◆ 고상현>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에서 이번 사건 1심 재판을 진행했는데요. 정봉기 부장판사는 판결을 하며 순수한 신앙심을 가진 피해자들을 육체적, 정신적으로 학대한 것도 모자라 살해까지 이뤄진 점에 비춰 죄질이 극히 불량해 엄벌을 선고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습니다.

    ◇ 김대휘> 피고인, 검찰 모두 항소했죠?

    ◆ 고상현> 네. 검찰 측은 원래 무기징역을 구형했었거든요. 양형 부당 이유로 항소했습니다. 김 씨 측 변호인도 양형이 너무 과하다며 즉각 항소했습니다.

    ◇ 김대휘> 장기간 취재했는데, 이번 사건을 어떻게 보시나요?

    ◆ 고상현> 취재 과정에서 김 씨와 대학생 시절부터 알고 지냈다는 한 목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 목사가 김 씨를 한마디로 미혹의 영이라고 표현했는데, 크게 와 닿았습니다. 김 씨가 귓가에 하나님 목소리를 듣는다고 하지만, 그 목소리는 하나님의 목소리가 아닌 사람을 해하는 목소리였습니다.

    ◇ 김대휘> 지금까지 고상현 기자였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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