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살인의 추억'. (사진='살인의 추억' 스틸컷)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용의자가 특정된 가운데 잔혹했던 범죄 수법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국내 대표 장기미제사건인만큼 그 관심도 뜨겁지만 과연 33년 간 실마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치밀한 범죄였지는 여전히 의문을 남긴다.
이번 진범 찾기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다름아닌 발전된 DNA 분석기법이다.
경기남부경찰서에 따르면 '1994년 청주 처제 성폭행 살인사건'의 범인 이춘재(56)의 DNA는 10건의 사건 중 5차(1987년 1월), 7차(1988년 9월), 9차(1990년 11월) 등 3건에서 나온 DNA와 일치한다.
그러나 사건이 발생했던 1986년~1991년 사이에는 DNA 분석기법 등 과학수사가 지금처럼 국내 수사에 상용화되지 않았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을 계기로 이 같은 과학수사 기법이 도입된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김상균 한국범죄심리학회 전 회장은 19일 CBS노컷뉴스에 "당시 가해자의 것으로 보이는 유류물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다만 과학수사 기술이 상당히 부진했었기 때문에 이 사건이 장기미제사건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설명했다.
9차 사건 현장에 있었던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DNA로 신원확인을 하는 기법이 영국에서 개발됐었는데 도입되지 않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DNA 수사기법과 장비가 도입됐었다. 그러다보니 초기 확보할 수 있었던 DNA 증거들이 많이 유실됐고, 일본에 현장 채취물을 보내기도 했지만 DNA 검출에 실패했다"고 밝혔다.
범죄 심리를 분석하는 프로파일링 기법도 부족해, 경찰은 좀처럼 수사망을 좁히기가 어려웠다.
김 전 회장은 "화성연쇄살인사건 동안 용의선상에 올라서 조사를 받았던 인구만 25만 명이다. 전국 형사들을 다 불러서 수사 본부를 구성할 정도였지만 용의자를 추려내는 프로파일링 기법이 부족해 미제사건으로 남았다고 본다"고 전했다.
경찰의 특정처럼 이씨가 진범이라면 마지막 화성연쇄살인사건 이후 3년 만에 잔혹범죄를 저질러 수감됐던 상황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유사 사건이 발생하지 않아 범인을 찾을 단서도 함께 끊긴 셈이다.
김 전 회장은 "보통 연쇄살인의 시기는 비선형적이지만 유사한 사건들이 같은 범인에 의해 계속 일어난다. 그런데 (이씨가) 이미 25년 전에 처제 성폭행 살인사건으로 교도소에 수감돼 있다보니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으로 잡는데는 어려움이 있었다. 만약 유사한 사건으로 수감됐다면 유류물에 대한 단순 비교를 통해서 검거가 됐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경찰이 이 연관성을 발견하지 못한 것은 아쉽다"라고 이야기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수법 자체도 '완벽범죄'에 가까운 계획보다는 오히려 '비체계적'인 특징을 보인다. 때문에 만약 현재 시점에서 유사한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한다면 높은 확률로 범인 검거가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김 전 회장은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은 피해자 시신을 은닉하지 않고, 오히려 노출하거나 방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느 정도 연쇄살인을 과시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이라며 "현실에서 이뤄지지 못한 사회에 대한 지배·조종·통제 욕구가 약자인 피해자들에게 향했고, 범행 형태 역시 치밀한 계획이 아니라 살인의 희열을 느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 벌어졌다면 금방 검거됐을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