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레인저스 마이크 마이너 (사진=연합뉴스 제공)
타자가 친 공이 1루 파울 지역으로 높게 떴다. 포수와 1루수 중 누구라도 여유있게 잡을 수 있는 타구였다. 그런데 팀 동료들이 뜬공을 잡지 말라고 소리쳤다. 그래서 아무도 안 잡았다.
관중들은 어리둥절했고 일부는 야유를 보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27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알링턴 글로브라이프파크에서 열린 텍사스 레인저스와 보스턴 레드삭스의 메이저리그 경기.
텍사스 선발 투수 마이크 마이너는 이날 경기 전까지 탈삼진 191개를 기록했다. 내심 200탈삼진 고지에 오르고 싶은 의지가 강했을 것이다. 선발투수에게 '200K'는 한시즌동안 꾸준히 좋은 활약을 펼쳐야 달성 가능한 의미있는 금자탑이다.
이미 포스트시즌 진출이 무산된 텍사스는 마이너의 개인 기록이라도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마이너는 8회까지 5실점 했고 무려 120개의 공을 던졌다. 이때까지 잡아낸 탈삼진은 8개. 200개에 1개가 부족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교체를 해야했지만 크리스 우드워드 텍사스 감독은 9회에도 마이너를 마운드에 올렸다.
마이너는 첫 타자를 좌익수 플라이로 잡아냈다. 다음 타자는 크리스 오윙스. 1볼-1스트라이크에서 오윙스가 친 공이 1루 파울 지역 위로 높게 치솟았다.
아무도 그 공을 잡지 않았다. 타구가 뜬 순간 마이너를 포함한 선수들이 공을 잡지 말라고 소리쳤기 때문이다.
파울 타구를 놓침으로써 볼카운트가 1볼-2스트라이크가 되면 투수가 삼진을 잡아낼 가능성이 높아진다. 실제로 마이너는 오윙스를 삼진으로 잡았고 200개 고지를 밟은 뒤 곧바로 마운드를 내려갔다.
마이너는 경기 후 미국 현지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1루수) 로날드 구즈먼에게 공을 잡지 말라고 소리쳤다. 공을 놓치면 2스트라이크가 되기 때문에 그랬다"고 '쿨'하게 인정했다.
이어 "공을 놓친 구즈먼은 내게 대체 왜 그러냐는 눈빛을 보냈다. 팬들은 그에게 야유를 했다. (야유를 감수하고) 공을 놓쳐준 구즈먼에게 고마웠다. 팬들은 그 상황을 알지 못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기록을 달성한 마이너의 감격(?)과는 달리 우드워드 감독은 씁쓸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일부러 타구를 놓친 것이 그리 좋게 보이지는 않았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러나 우드워드 감독은 보스턴을 향해 화살을 돌렸다. 텍사스의 기록 밀어주기가 바람직하지는 않았지만 보스턴이 의도적으로 기록 달성을 방해하려고 했다는 주장이다.
그는 "보스턴 타자들은 점수차가 2점밖에 되지 않았던 8회에 초구만 공략했다. 공 3개로 이닝이 끝났다. 알렉스 코라 감독의 의지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이기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고 의도적으로 마이너가 삼진을 잡지 못하게끔 했다"고 말했다.
우드워드 감독의 말처럼 점수차가 크지 않은 막판 승부처에서 타자들이 연속으로 초구를 공략하는 장면은 흔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텍사스는 이날 보스턴에 7대5로 이겼고 마이너는 시즌 14승(10패)을 따냈다.
보스턴의 알렉스 코라 감독은 텍사스의 '고의 낙구'에 대해 말을 아꼈다. 그러나 "우리 선수들이 정정당당하게 싸워서 좋았다"는 짧은 소감에는 불쾌한 감정이 담겨있는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