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 한국전력이 샐러리캡(연봉총액상한제) 최소 소진율을 지키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이를 관리·감독할 한국배구연맹(KOVO)은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물론 관련 규정 조차 숙지하지 못하고 있던 것으로 밝혀졌다.
V-리그는 샐러리캡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에따라 2019-2020시즌 남자부는 26억원, 여자부는 14억원까지를 선수들의 연봉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소진율에 대한 제한도 존재한다. 정해진 샐러리캡을 넘기면 추가 금액의 500%에 달하는 제재금이 부과되고 최소 소진율인 70%를 넘기지 못할 경우 부족 금액의 100%를 제재금으로 내야 한다.
이같은 제도는 특정 구단으로 선수들이 몰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됐다. 또 최소 소진율은 구단들의 적극적인 투자를 도모해 프로구단에 걸맞은 행보를 보여달라는 취지에서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 한국전력은 이같은 최소 소진율을 지키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시즌 리그 최하위에 머물렀던 한국전력은 신임 장병철 감독을 선임하며 분위기 쇄신을 다짐했다. 그리고 최석기, 이재목, 리베로 이광호 등을 방출하는 등 선수단 재정비에 나섰다.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는 세터 이민욱을 데려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소진율에 문제가 발생했다.
KOVO 선수등록 규정 제5조를 살펴보면 선수 등록은 총 3차례 이뤄진다. 1차는 리그가 개막하는 당해 6월 30일까지다. 2차는 신인선수 드래프트 실시 이후 15일 내로 이뤄져야 하고 3차는 트레이드 마감 시한인 3라운드 종료 시까지다. 샐러리캡 소진율 위반 여부 점검도 이 과정에서 진행된다.
한국전력의 경우 1차 선수 등록 기간에는 최소 소진율 70%를 넘겼다. 연봉 5억원을 수령하는 서재덕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9월 서재덕의 군입대로 소진율은 57%대로 떨어졌다. 그리고 최홍석이 트레이드를 통해 OK저축은행으로 떠나면서 소진율은 45%대까지 급감했다.
한국전력은 트레이드로 합류한 이승준, 장준호와 신인 선수 연봉, 12월 전역 예정인 리베로 오재성의 연봉을 추가하면 최소 소진율 70%를 넘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샐러리캡에는 신인 선수의 연봉이 포함되지 않는다. 구단들이 샐러리캡 위반 우려로 인해 선수 선발을 꺼려할 수 있어 이사회에서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군 전역 선수인 오재성의 연봉은 복귀 등록 시점에서 잔여 연봉만 샐러리캡에 적용되기 때문에 신인 선수의 연봉을 포함하더라도 최소 소진율 넘기지 못한다. 이 와중에 한국전력은 25일 세터 강민웅의 은퇴를 알렸다. 소진율은 더 떨어지게 됐다.
한국전력이 샐러리캡 최소 소진율을 지키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한국배구연맹은 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제재금 부과 역시 이뤄지지 않았다. (사진=한국배구연맹 제공)
이같은 사태는 사실상 예견됐던 일이나 다름없다. 한국전력의 최근 행보를 보면 공격적인 영입이 전무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선수단 정리에만 급급했다.
V-리그 구단들은 샐러리캡 준수를 위해 선수 영입에 신중을 기한다. 대한항공의 경우 9월 우리카드로부터 세터 유광우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소진율이 100%가 넘어가자 어쩔 수 없이 조재영과 김동혁을 자유신분선수로 풀었다. 분명 경기력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자원이었지만 소진율 위반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
최소 소진율에 도달하지 못한 한국전력. 지난 시즌 최하위에 그치며 선수들의 연봉을 올려줄 명분이 없었던 탓에 부족 금액의 100%를 제재금으로 내야 하는 상황이지만 KOVO는 이를 인지조차 못하고 있었다.
KOVO는 CBS노컷뉴스가 한국전력의 소진율 미달에 대해 질의하자 1차 선수 등록 기간에 최소 소진율을 넘겼다면 문제 될 것 없다는 식의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이는 KOVO가 관련 규정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데서 비롯됐다.
KOVO규약 제74조 '샐러리캡 준수 여부 확인'에는 '샐러리캡 최소 소진율은 선수등록 규정 제5조 제1항에 의거 2차 시기 종료 후 검증한다'고 명시돼 있다. KOVO는 뒤늦게 규정을 확인한 후에야 잘못을 시인했지만 규정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미숙함은 그대로 드러난 뒤였다.
한국전력은 2차 선수 등록 기간에 소진율 57%대에 불과했기 때문에 3억원이 넘는 제재금을 내야 했다. 그러나 KOVO는 규정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안일한 행정으로 인해 이를 징수하지 못했다.
또 관련 규정에 따르면 KOVO는 샐러리캡 준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구단으로부터 월별로 '개인별 사업소득세 원천징수 영수증'을 요구해 확인해야 한다. 또 남녀 사무국장 각 2명씩을 선정해 샐러리캡 검증 위원회를 운영해야 한다. 그러나 이같은 점검은 지금까지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소진율을 지키지 못한 한국전력. 그리고 규정 조차 모르고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KOVO. 규정을 어긴데 대해 합당한 제재 없이 흐지부지 넘어갈 경우 나머지 12개 구단들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