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지난달 29일 국회 로텐더홀 계단에서 ‘민생파괴! 국회파괴! 자유한국당 규탄대회’ 열고 한국당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지난해 12월 사상 처음으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태워진 유치원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이 숙려기간(330일)을 채우고도 연내 국회 처리가 불투명해졌다.
여야간 이견이 없는 어린이 교통안전법 중 하나인 '민식이법'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유치원3법은 자유한국당이 뒤늦게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의(한유총)가 요구해온 시설사용료와 비슷한 교육환경개선금을 인정해주자는 수정안을 내놓으면서 제동이 걸렸다.
한국당은 '원안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목록에 올렸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지난달 30일 "유치원 3법은 우리가 수정안을 냈다. 그 본안 원안에 대해서는 저희는 조금 찬성할 수 없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다음날인 1일에도 같은 입장을 고수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폭로해 국민적 관심사가 된 유치원3법은 사립유치원들이 국가 회계관리 시스템(에듀파인)을 의무화하고, 지원금을 교육 목적 외 다른 곳에 쓰면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한국당의 수정안에는 한유총이 요구해 보상안이 포함됐다.
한국당 관계자는 "예를 들면 30억~100억 투자한 사람들이 가져갈 것이 하나도 없는데, 교육환경 개선이라도 할 수 있도록 해야된다"면서 "유치원들 입장에서도 불만족스러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애초 요구한 '시설 사용료'를 '교육환경 개선금'으로 대체했지만, 둘 간에 차이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유치원에 투자한 금액에 대한 지분을 인정해 주는 결과로 해석된다는 점에서다.
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법적으로 '교육환경 개선금'은 결국 임대료"라면서 "시설사용료과 같은 개념"이라고 했다.
한국당 수정안은 또 학부모 부담금 등 일부 회계 항목을 '일반 회계'로 묶어 국가회계관리시스템 에듀파인의 감시를 받지 않도록 하는 '회계 분리' 조항까지 그대로 담았다
자유한국당이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 모든 안건에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신청한 가운데 일부 한국당 의원들 외 의원들이 참석하지 않으며 본회의가 열리지 못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더군다나 유치원에만 교육환경 개선금을 인정할 경우, 다른 초.중.고교와의 형평성에서도 문제가 된다.
헌법재판소 역시 7월 25일 "사립유치원은 공공성이 강조되는 교육을 담당하는 사립학교법 상 학교라는 점에서 국·공립 학교나 다른 사립학교와 본질적 차이가 없다"면서 "유치원 설립·운영을 위해 설립·경영자 스스로 제공한 교지·교사의 사용대가 지급을 허용하는 것은 유치원 설립요건으로 일정한 재산을 갖추도록 한 취지에 위반되므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한국당이 199개의 안건에 대해 필리버스터을 걸어 놓은 상황이어서 예산안과 다른 패스트트랙 법안(검찰개혁 법안 3개, 선거제 개편안 1개) 등을 고려하면 올해 안에 처리가 어려울 수도 있다.
각 법안에 대해 한국당이 필리버스터를 실시하면 이에 맞춰 별로도 임시 국회를 소집, 법안을 처리해야하는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에서는 사학 재단과 가까운 한국당이 사학재단을 편에서 법안을 막고 있다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부친이 사학재단인 홍신학원을 소유하고 있는 나 원내대표의 동생은 사립유치원을 운영하고 있다.
해당 유치원은 독립법인임에도 일가 사학재단 홍신학원의 건물을 헐값에 임대했다는 의혹이 올 국정 감사에서 제기되기도 했다.
황교안 대표도 변호사 시절인 지난 2012년 한유총 측과 법률자문 계약을 맺고 유치원 설립자의 사유재산권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하는 방안을 자문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계기로 한유총은 황 대표를 고문 변호사로 영입하기도 했다.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29일 유치원 3법과 관련,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한유총(한국유치원총연합회) 고문변호사로 활동했던 사실이 우리 국민에게 알려졌다"며 "(황 대표가) 한유총에 입법로비, 법안자문도 직접했다고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지난달 19일 오후 서울 상암동 MBC에서 열린 '국민이 묻는다, 2019 국민과의 대화'에서 고(故) 김민식 군의 부모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질문하고 있다. 김 군은 지난 9월 충남 아산의 한 어린이보호구역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교통사고를 당해 숨졌다. 국회는 어린이보호구역에 과속 단속 장비 설치 등을 의무화하는 '민식이법'을 발의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와 함께 문재인 대통령의 '2019 국민과 대화'를 계기로 전 국민의 관심을 받고 있는 '민식이법'의 통과도 난항을 겪고 있다.
민식이법(도로교통법 개정안)은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에 과속단속 카메라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이다.
지난 9월11일 충남 아산의 한 스쿨존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숨진 김민식(9) 군의 이름을 따 만들어졌다. 민주당 강훈식 의원이 지난달 11일 대표발의했다.
나 원내대표는 1일 민식이법만을 위한 '원포인트'국회를 열 수 있다고 제안했지만, 민주당은 이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민주당으로서는 민식이법을 위한 원포인트 본회의를 열더라도, 한국당은 유치원3법을 겨냥해 필리버스터 시작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당이 자동상정되는 유치원 3법에 대한 필리버스터를 철회하지 않는 이상 이번 정기국회 동안 아무런 법안을 처리할수 없을 수도 있다.
여당 입장에서는 유치원 3법에 걸린 필리버스터 때문에 다른 패스트트랙 법안까지 모두 막혀버리게 된다.
홍익표 대변인은 1일 비공개 최고위원회가 끝난 뒤 브리핑에서 "원포인트든 뭐든 핵심은 필리버스터를 철회해야 된다는 것"이라며 "(한국당이)필리버스터를 철회하지 않으면 자동상정되는 유치원 3법이 먼저 걸리게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민식이법은 올해 정기국회 통과는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예산안과 선거제개편안이 12월 3일 이후 본회의에 오르게 되면 함께 본회의에 올려 의결할 수 있다.
민주당은 한국당이 필리버스터를 하더라도 예산안-민식이법-선거법-사법개혁법-유치원3법 순서로 처리하면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선거법에 한국당이 필리버스터를 건다고 해도, 정기국회 이후 임시국회를 열어 선거법을 가장 먼저 처리하면서 여야 4당 공조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