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연재. 발라드 장르를 선호하는 음악 팬이라면 한 번 쯤은 앨범 크레딧에서 발견했을 법한 이름이다. 2008년 더 네임의 '그녀를 찾아주세요'를 통해 입봉한 작사가인 민연재는 지난 10년여 간 무수히 많은 히트곡의 가사를 썼다. 벤 '열애중', '180도', '헤어져줘서 고마워', 장혜진-윤민수 '술이 문제야', 바이브 '가을 타나 봐', 엠씨더맥스 '그대가 분다', 포맨 '못해', '안녕 나야', 포스트맨 '신촌을 못가', 송하예 '새 사랑' 등이 그가 가사를 붙인 곡들이다.
"'다작'의 비결은 말 그대로 '다작'이었어요. 무조건 남들보다 더 많이 써보려 노력했고, 한 곡을 의뢰받아도 두 세 개의 가사를 완성해서 보냈죠. 작업을 의뢰한 쪽에서 제가 1순위로 꼽는 가사가 아닌 2순위 혹은 3순위로 생각하고 있던 가사를 더 좋아할 수도 있으니까요"
태연(소녀시대), 엑소, 샤이니, 미쓰에이, 워너원 등 유명 아이돌 가수들과도 호흡을 맞췄지만 민연재의 주 장르는 역시나 발라드다. 민연재는 발라드 장르의 주 테마인 사랑, 이별 애기를 뻔하지 않고 신선하게, 동시에 가사 속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지도록 섬세하게 그려내며 음악 팬들의 감성을 저격하는 데 성공했다.
"남녀노소 나이불문 직업물문. 가장 많이 느끼는 감정과 경험이 사랑과 이별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저 역시 사랑과 이별을 주제로 한 가사를 자주 쓰게 되고요.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켜야 하기에 주로 일상에서 영감을 얻는 편인데, 가사 내용 속 상황과 감정을 최대한 디테일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생활밀착형 가사'. 민연재가 자신이 써내린 가사의 특징을 이야기 하면서 꺼낸 표현이다.
"욕실에서 칫솔 하나를 보면서도 아이디어를 떠올렸어요. 그렇게 떠올린 아이디어를 '훅' 하고 귀에 들어갈 수 있는 가사로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했고요. 그러다 가끔 선을 넘기도 했죠. 포맨과 미가 부른 '그 남자 그 여자'가 그런 경우였는데, '라면을 끓여도 괜히 니 생각이 나서 ~ 그릇을 놓아도 꼭 두 개를 놓고 ~♪'라는 가사를 썼다가 '라면은 좀 너무 간 거 아니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었죠. 하하"
'TV에 나와 노래해 혹시 니가 볼까봐 ~ 날 들으면 날 본다면 날 찾아줄까봐 ~ ♪'. 2012년 발표돼 인기를 끈 '가수가 된 이유'는 신용재라는 가수를 널리 알린 곡이자 민연재의 '생활밀착형 가사'가 얼마만큼 몰입도가 높은지를 실감케 한 곡이다. 곡이 세상이 나온지 한참이 지난 지금까지도 꽤 많은 이들이 '가수가 된 이유' 가사가 신용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노래인지에 대해 궁금해 할 정도이기 때문.
"하하. 요즘도 저에게 물어보는 분들이 많아요. 인터뷰를 통해 처음 밝히자면 사실 '가수가 된 이유'는 제 경험이 바탕이 된 노래에요. 원래 가제는 '작사가로 사는 법'이었죠. 실화를 바탕으로 쓴 가사가 기반인 곡들을 모은 프로젝트 앨범을 내려고 아껴둔 곡이었는데 (신)용재와 작업을 하면서 꺼내게 됐었고요. 아, '실화' 테마는 나중에 포맨 앨범으로 풀어냈어요. 당시 나온 앨범명이 아예 '실화'였죠. (미소)"
곡을 직접 만들고 부르는 싱어송라이터들이 득세하는 가요계에서 민연재는 자신만의 확실한 색깔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흔들림 없는 영향력을 보여주고 중이다. 영향력은 단순히 곡 작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민연재는 '라라라 스튜디오'를 통해 후배 작사가를 양성에 힘쓰고 있기도 하다.
"한창 싱어송라이터 전성시대가 열렸을 때 '전업 작사가는 너희 세대에서 끝날 수도 있다'고 말씀 하시는 분들도 계셨어요. 다행히 요즘엔 해외 작곡가 곡을 쓰는 가수 분들이 많아지면서 다시 신인 작사가 분들에게 기회가 많이 주어지고 있고, 그에 맞춰 작사가 양성 기관도 많이 생겨나는 추세에요. 저 역시 제가 가진 노하우를 전수하고 작사가를 꿈꾸는 후배 분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라라라 스튜디오'를 설립했고요"
바이브 윤민수와의 인연으로 전업 작사가의 길을 걷게 된 민연재는 입봉 전 게임 디자이너와 마케팅 및 브랜딩 매니저로 일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민연재는 최근 들어 가사 작업뿐만 아니라 앨범 재킷 디자인, 뮤직비디오 콘셉트 설정 작업에까지 직접 참여하며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나가는 중이다. 곡 내용에 맞춰 거꾸로 뒤집어져있는 앨범 재킷과 로맨스 영화를 연상케 하는 영상으로 이목을 끈 벤의 '180도'가 민연재가 작업에 참여해 히트에 성공한 케이스다.
"발라드 가수들은 음악 팬들의 감정에 호소할 수 있는 완성도 높은 콘텐츠를 만드는 데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아이돌 그룹들이 음악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 수 있게끔 무대나 의상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것처럼요. 단순히 노래만 좋아서는 히트를 시킬 수 없는 시장이잖아요"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작사 작업에 한창인 민연재의 목표는 앞으로도 가요계에서 꾸준히 활동하며 음악 팬들과 소통하는 것. 그리고 '불후의 명곡'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다작을 하면 가진 걸 다 소진하니까 아껴가면서 활동하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냥 지금처럼 많이 하면서 오래 하고 싶어요. 그게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행복한 일이 아닐까 해요. 내일 당장 사라질지도 모르는 직업이고 정년이 보장된 직업도 아니지만 정말 오래 오래하고 싶고, 진짜 공감가는 가사로 적어도 100년은 넘게 사랑받는 노래를 한번 만들어 보고 싶어요. (미소)"
(사진=민연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