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단체의 광화문 집회에서 폭력 행위를 주도한 혐의를 받는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 총괄대표 전광훈 목사가 2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박종민기자
불법 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 위기에 몰렸던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 회장 목사가 4일 자신이 이끄는 '문재인 하야 범국민투쟁본부(범투본)'의 첫 신년 주말집회에서 현 정부를 겨냥한 보다 강도 높은 비난 행보를 예고했다.
그는 "(대통령 하야를 위한) 현대판 3.1 독립운동을 시작하겠다"며 참가자들에게 전국에 마련된 '기도 장소'에서 상시적으로 집회를 이어갈 것을 당부했다. 아울러 집회의 돌격대 격으로 지목된 '순국결사대'에 지원해 생명을 던지라며 사실상 과격행위를 부추기기도 했다.
불법 논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최근 법원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된 점을 근거 삼아 오히려 발언 수위를 높이는 모양새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전 목사 구속과 한기총 해산을 촉구하는 글이 올라와 20여만 명의 동의를 받았다.
범투본은 이날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일대에서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국민대회'를 열고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를 규탄했다. 전 목사의 영장이 기각된 지 이틀 만에 열린 데다가, 신년 첫 주말 집회인 만큼 교보문고 빌딩 앞 광화문 방면 차로는 참가자들로 빽빽하게 들어찼다.
이들은 '문재인 퇴진·조국 구속·공수처 반대' 등이 적힌 피켓과 태극기, 성조기 등을 들고 "탄핵 무효!", "문재인은 퇴진하라!", "조국을 감옥으로!", "주사파 운동권은 북한으로!"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 자리에는 전 목사의 영장실질심사에 동행했던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 뉴라이트전국연합을 이끌었던 김진홍 목사 등도 함께했다.
전 목사는 우선 "대한민국 헌법은 저를 구속시키지 않았다"며 경찰 수사를 '정치적 탄압'으로 규정했다. 그는 불법 시위 주도 혐의 외에도 내란선동과 불법 기부금 모금 등 6가지 혐의로 고발된 상태이지만, 자신에게는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4일 '문재인 하야 범국민투쟁본부(범투본)'이 광화문 집회를 마친 뒤 행진해온 청와대 사랑채 방면도로에 앉아있다.(사진=이은지 기자)
지지자들의 함성 속에 밝은 모습으로 연단에 선 전 목사는 법원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된 데 대해 "대한민국이 다 공산주의화된 줄 알았더니 아직도 대한민국 구석구석에는 판사들이 존재하고 있었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이번에 제가 당한 일들을 경험해보면 대한민국이 주사파 손에 들어간 것은 확실하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한 것과 똑같은 짓을 저에게 시작하더라"고 말했다.
또 정부를 지칭해 "자기들의 프레임과 반대되는 국민들을 무조건 처벌하려 한다"며 "자신들의 목적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을 다 감방에 보내려 시도한다"고 비난을 쏟아냈다.
전 목사는 욕설은 삼가겠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막말을 서슴지 않았다. 그는 문 대통령이 지난 1일 국립현충원 참배 시 방명록에 연도를 잘못 썼다 수정한 부분을 두고 "정신이 나갔다"고 비난했다. 이어 "초등학교로 저 X을 다시 보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 목사는 집회 참가자들에게 '순국 결사대'로 나서줄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는 경찰이 전 목사를 구속하려 한 원인 가운데 하나로, 그가 해당 조직 결성을 주도해 청와대 불법 진입 등의 행위를 선동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바 있다.
그럼에도 전 목사는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 전체가 순국 결사대로 지원해주시길 바란다"며 "민족의 제단 앞에 피를 바치자"고 했다. 아울러 "동의하신다면 그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손을 들고 선서해달라"며 "'나는 대한민국을 위하여 주사파를 척결하고 문재인을 끌어내고, 제2의 건국을 이루기 위하여 나라와 복음 앞에 생명을 던질 것을 엄숙히 선언한다'"는 내용의 선서를 요청했다.
전 목사는 참가자들에게 사실상 '상시적 대정부 투쟁'을 당부하기도 했다. 그는 "4·15 총선에서 혁명을 완수하려면 문재인을 1월달 내 끌어내려야 한다"며 "문재인이 내려올 때까지 전국 253개 지역에 기도하는 장소를 마련했으니 토요일은 광화문으로 모이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각 지역에서 오전 10시부터 11시까지 기도에 참여해주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4일 '문재인 하야 범국민 투쟁본부(범투본)' 집회 참가자들과 경찰이 청와대 사랑채 측면도로에서 방화벽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다.(사진=이은지 기자)
범투본은 오후 4시20분쯤 본행사를 마치고 청와대 사랑채 방면으로 행진했다. 경찰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사랑채 측면도로에 방화벽을 설치하고 그 뒤로 경력을 배치했다.
앞서 경찰은 지난해 개천절 당시 청와대 인근에서 벌어진 폭력, 불법 집회를 주도한 혐의(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위반·특수공무집행방해 등)로 전 목사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 사건 집회의 진행경과, 집회방법 및 태양, 범죄혐의 관련 집회현장에서의 피의자의 구체적 지시 및 관여정도, 수사경과 및 증거수집 정도를 고려할 때 현 단계에서 구속사유나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영장을 기각했다.
이번 주말 집회는 범투본이 "경찰의 집회금지를 막아달라"며 낸 집행정지(가처분) 신청이 일부 인용된 후 첫 집회이기도 했다. 범투본은 이달 4일부터 20일까지 청와대 사랑채 측면, 효자치안센터 앞 등 광화문·청와대 일대 집회·행진을 신고했으나 경찰이 청와대 주변을 집회장소로 금지하자 지난달 27일 행정소송을 냈다. 법원은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집회는 허용하되, 밤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집회를 금지한 경찰의 처분은 적법하다고 봤다.
전 목사를 구심점 삼은 집회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한기총 사단법인 해산과 전 목사 구속을 촉구한다'는 제목의 글이 올라와 일주일여 만에 23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았다. 20만 명을 넘어선 만큼, 청와대의 공식 답변이 이뤄질 전망이다.
청원자는 해당 글에서 "한기총 대표회장인 전 목사를 중심으로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는 헌법 제20조 제2항을 위반하고 있지만, 관계 당국은 종교단체라는 이유만으로 설립목적과 위반된 사항들을 간과하고 있다"며 "한기총은 정관에 명시된 설립 목적과 사업 등을 위반하며 불법이 난무하는 단체"라고 비판했다.
한편 이날 청와대 부근 집회소음으로 인한 불편을 호소해온 서울맹학교 학부모와 학생, 졸업생 등 10여명이 청와대 방향으로 오던 '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국본)'의 행진을 가로막았지만 물리적 충돌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