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발병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국내 확진자 중 중국을 방문하지 않은 사람이 계속해 늘어나고 있다. 현재 보건당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검사 대상자를 '중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 사람'으로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일본에서 감염돼 입국한 '12번째 확진자'의 존재를 모르다 본인의 신고로 뒤늦게 파악했다. 이어 태국 여행을 다녀온 16번째 확진자에 대해서는 중국을 방문한 적이 없다는 이유로 검사를 거부해 조기 발견에 실패했다. 조기발견에 실패하면서 두 확진자의 접촉자 수는 각각 219명, 306명에 이르고 있다.
17, 19번째 확진자 역시 싱가포르에서 감염돼 귀국한 것으로 추정되면서 '중국 방문자'라는 기준에 집착한 이번 검역 방식이 기준에 매몰돼 일을 키웠던 지난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1번 확진자' 사례와 매우 유사하다는 지적이다. 당시 보건당국은 '바레인은 메르스 발병 지역이 아니다'는 이유로 1번 감염자를 놓쳤고 해당 확진자는 28명을 감염시켰다.
◇ "코로나인 것 같다" 신고에도 검사 못 받은 태국여행자
사진=연합뉴스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 중 12번, 16번, 17번, 19번의 공통점은 최근 중국을 방문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현재 보건당국은 중국 방문자에 한해 바이러스 검사 등 검역을 진행 중이다.
12번 확진자는 48세 중국 남성으로 일본에서 일본 확진자를 만나면서 감염됐다. 이후 지난달 19일, 한국으로 들어와 발병됐고 증세가 나타났다.
천운으로 12번 확진자를 접촉한 일본 확진자가 '내가 코로나바이러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을 그에게 알려주면서 12번 확진자도 한국 보건당국에 신고할 수 있었다.
일본 보건당국이 12번 확진자의 국적을 중국으로 확인하고 중국 보건당국에만 그의 확진자 접촉 사실을 통보하면서 한국 보건당국은 이같은 사실을 통보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질병관리본부 정은경 본부장도 이달 1일 정례 브리핑에서 "이분 국적이 중국이다 보니까 일본은 접촉자에 대한 통보를 중국으로 한 상태였다"며 "저희는 이 환자분의 신고를 받고서 일본에게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조기 발견에 실패하면서 12번 확진자는 지난달 19일 입국 이후 이달 1일 격리되기까지 약 11일 가량 지역 사회에 노출됐다. 동선도 매우 길어 그의 접촉자 수는 한때 666명까지 치솟았다가 5일 기준 219명까지 줄었다. 그의 부인은 감염돼 현재 14번째 확진자가 됐다.
16번 확진자의 상황도 비슷하다. 42세 한국 여성인 그는 가족과 함께 태국 여행을 하다 지난달 19일 귀국했다.
귀국 후인 지난달 25일부터 오한 등 증세가 나타났다. 26일, 집에서 온종일 머물렀지만 증세가 호전되지 않자 27일, 광주광역시 소재 '광주 21세기병원'과 '전남대학교 병원'을 찾았다.
병원을 찾은 그는 병원과 함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의심된다'며 전화 1339를 통해 보건당국에 신고했다. 하지만 보건당국은 '중국 방문 이력이 없어 검사 대상이 아니다'는 이유로 검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검사를 받지 못 한 16번 확진자는 큰 딸이 인대 봉합 수술을 받던 광주21세기병원으로 돌아왔고 딸의 간호를 위해 27일 밤부터 이달 2일까지 병원에 체류했다. 그 사이 증세도 악화돼 전남대병원 응급실로 옮겨졌고 끝내 4일 확진 판정을 받았다.
16번째 환자는 격리되기 전까지 병원에 머물면서 모두 306명과 접촉했다. 간병을 하던 큰 딸도 18번째 확진자로 분류됐다. 해당 병원에 있던 의료진과 환자, 방문자 모두 격리됐다.
◇ '중동' 집착한 메르스, '중국' 집착한 코로나…"고치겠다"17, 19번째 확진자도 행사 참석 차 싱가포르를 방문한 사람들이다. 마찬가지로 중국을 간 적이 없으며 지난달 24일 귀국했다.
이들 역시 12번째 확진자 사례와 비슷하게 행사에 참석했던 말레이시아인이 '내가 코로나 양성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을 3일 통보해주면서 당국에 신고할 수 있었다. 정부의 현재 방역망에선 걸러지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자가 신고로 존재가 확인됐다.
중국 후베이성 방문 외국인 입국제한 조치가 시행된 4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중국 전용 검역대를 통과한 뒤 입국한 중국인 관광객이 검역 확인증을 여권에 놓아두고 있다. 박종민기자
결국 '중국 방문 이력'에 집착한 현재 방역망에서 이들 모두 발견되지 못한 것이다. 발견이 늦어질수록 감염자의 동선과 접촉자 수는 크게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은 지난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에도 벌어졌다.
당시 보건당국은 1번째 확진자 A씨가 그저 '바레인에서 들어왔다'는 이유로 메르스 검사를 지연했다. 당시 보건당국의 '메르스 위험국가 기준'에 바레인은 없었다.
구체적으로 보면 A씨는 지난 2015년 5월 4일, 한국에 들어왔다. 바레인에서 농작물 재배를 하던 A씨는 입국 일주일 뒤부터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후 삼성서울병원 의료진이 A씨의 중동 방문 사실을 알고서 질병관리본부에 메르스 확진검사를 요청했지만 질본은 '바레인은 메르스 발병 지역이 아니다'는 이유로 다른 호흡기 질환 검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같은 달 20일, 그는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고 그사이 그와 접촉한 28명이 감염됐다. 결국 당시 발병지역에 매몰되는 오판을 하면서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이번에도 발병지역인 중국 방문자란 기준에 집착, 검사를 진행하면서 벌써 3명의 환자를 놓쳤다. 3명의 환자를 놓친 결과, 접촉자가 크게 늘었고 병원 내 감염 우려까지 매우 높아진 상황이다.
정부는 중국에 한정된 사례 정의 기준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정은경 본부장은 "현재 지침으로는 중국을 방문하지 않으면 코로나를 의심하는 사례 정의에 들어가지 않는다"며 "(방역망을 넓게 치는) 기준에 맞게 사례 정의, 조치 강화를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