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unsplash)
오전 9시 '광클'과 '새로고침'이 시작됐다. 남편은 테이블 위에 놓인 스마트폰과 노트북을 번갈아가며 바쁘게 손을 놀렸고 아내 역시 서재 PC와 스마트폰을 오가며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했다.
남편 A씨는 휴가를 냈고 봄방학과 입학식 연기로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가지 않은 두 아이는 방에서 자기들끼리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아침식사는 이미 모닝빵과 우유로 떼웠다. 이따끔씩 아이들의 소리가 들렸을뿐 남편 A씨와 아내는 '탁탁탁' '틱틱틱' 소리 외에는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10여분 뒤 긴장감은 무너졌다. '아-' 남편 A씨는 짧은 탄식을, 아내는 버릇처럼 아랫입술을 잘근 씹었다.
A씨가 아내에게 물었다. "어떻게 됐어?". 아내가 답했다. "접속이 안돼. 다운됐어..."
부부는 포기하지 않았지만 20여분 만에 마우스와 스마트폰을 손에서 내려놨다. A씨가 말했다. "상공양행 스토어 마스크 품절됐어. 접속도 못하고".
온라인 스토어에 마스크가 풀리는 날은 접속 폭증으로 정상적인 구매가 어려운 경우가 다반사다. 한 온라인 마스크 판매 사이트에 뜬 접속불가 안내
그의 나지막한 음성이 사라지기도 전에 아내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집안을 휘몰았다. "자기야, 웰킵스 떴어!."
A씨와 아내는 그렇게 한참을 더 마우스, 스마트폰과 씨름했다. 잠시뒤 스크린의 로딩처럼 부부의 '손가락질'은 눈에 띄게 느려졌다. 어쩌다 장바구니에 담긴 화면으로 넘어가면 결제화면 대신 '불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라는 야속한 대답만 넘어왔다.
그것도 잠시 인터넷 주소창은 '403 fobidden'이라는 웹 크롤링 오류 메시지만 남기고 마스크는 멀어져갈 찰나, A씨 아내의 카톡창에 알림 메시지가 떴다.
"라오메뜨 마스크 11시 1만개 입고/판매"... 아내의 눈에 다시 힘이들어갔다.위 이야기는 실제 이야기를 재구성한 내용이다. A씨는 2시간 가까이 매달렸지만 허탕을 쳤다고 했다. 아내와 온라인 쇼핑몰에서 KF80, KF94 마스크 물량이 풀린다는 정보를 수집해 서로 1~2곳씩 맡아 20~50개들이 최소 1박스 이상씩 구입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코로나19 확진 환자가 다수 발생한 20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구입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전날 밤 예행연습은 물론 결제 과정을 줄이기 위해 로그인도 빠뜨리지 않았다. 결과는 참담했다. '품절' 아니면 '접속불가'. 몇년 째 명절마다 고향에 가기 위해 사전 열차예매를 놓치지 않았던 그였지만 혀를 내둘렀다.
A씨는 "집에 사놓은 KF94 마스크가 10여 개 남아 2~3일에 한 번 바꿔 사용하고 있는데 사용하던 것도 알콜 소독제로 뿌려 사용해야할 판"이라고 말했다.
A씨는 고향에 있는 본가와 처가 부모님도 걱정이라고 했다. 부모님이 마스크를 구하려면 인터넷은 커녕 입고된 대형마트를 찾아 몇 시간을 줄서야 한다는 뉴스를 보고 며칠 전 가지고 있던 마스크 20개를 택배로 보내드렸다. 앞으로 얼마나 장기화 될지 모르는 상황 때문에 A씨는 마스크 구입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A씨의 사례처럼 온가족이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직접 마스크를 만들겠다며 온라인 쇼핑몰을 뒤져 헤파필터(E11, E12, H13)용 원단을 구입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기 시작했지만 가격은 이미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B씨는 얼마 전 PM2.5 초미세먼지 차단 기능이 있는 범용 헤파필터 원단을 구입했다. 이 필터는 공기청정기나 자동차 에어필터 등에 사용하는 원단으로 마스크용으로 재봉해 사용하면 호흡이 불편하고 거칠어 피부가 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일부 네티즌들이 헤파필터 원단으로 마스크를 제작했다는 글이 이어지면서 가격도 두 배 이상 올랐다. 추가 재료인 부직포까지 인기다.
가로 세로 1m에 몇 백원 하던 원단이 몇 천원까지 폭등하자 판매사이트에는 구매자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판매업자들은 원단수급이 어려워져 불가피하게 가격을 올렸다고 해명했지만 마스크 전용 필터가 아니어서 수긍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보건용 마스크 부족사태에 마스크 자가 제작까지 늘면서 공기청정기 등에 사용되는 헤파필터 원단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해외 사이트에는 교체형 PM2.5 초미세먼지 필터 마스크까지 높은 인기에 가격이 오르고 있다. (캡처=유튜브·아마존·스마트스토어)
B씨는 "마스크를 구하는게 하늘에 별따기라 뭐라도 해야하는데, 그렇다고 중국사람들처럼 PET병을 쓰고 다닐 수는 없는 거 아니냐"고 열변했다.
아마존 등 해외 전자상거래 사이트에서는 PM2.5 필터 교체형 마스크도 팔리고 있다.
정부는 국내 보건 마스크 생산량이 일 1000만개 이상 수준이라며 수급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판매점 매대는 물론 온라인에서도 씨가 말랐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부터 이어진 중간 유통상인의 매점매석과 중국 보따리상 등의 해외 반출이 심화된데다 생산업체가 계약을 맺은 수출분이 국내 공급분을 크게 넘어서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정부 합동단속반이 빼돌린 국내 마스크 유통분 수백만 개 분을 적발하고 공항 등 해외 출국장에서 국외 반출량을 대폭 제한했지만 마스크 생산업체들이 해외 수요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1000만개 생산도 부족하다는 비판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5일 코로나19 지역사회 확산으로 마스크 품귀현상이 심화됨에 따라 수급 안정화를 위해 26일부터 마스크 판매업자의 수출을 금지하고 생산업자도 당일 생산량의 50% 이상을 공적판매처로 공급하도록 강제하는 '마스크 및 손소독제 긴급수급조정조치'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같은 소식에 네티즌들은 반색하는 분위기지만 당분간 경쟁적 구매가 이어지면 당장 부족한 마스크때문에라도 컴퓨터와 스마트폰 앞에 버틸 수 밖에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일부 언론사들이 구독료 자동이체 유도를 위해 경품을 마스크를 내걸어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캡처=온라인커뮤니티)
한편,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마스크 대란을 이용한 장삿속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특히 일부 언론사 일간지들이 신문 구독료를 자동이체하면 마스크 3~5장을 경품으로 제공한다며 홍보해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네티즌들은 "수백만 부의 유료부수를 자랑한다는 언론사들이 경품을 위해 마스크를 사재기 한 것 아니냐"며 공분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