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철 고양 오리온 감독대행이 26일 고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울산 현대모비스전에서 선수들에게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사진=KBL 제공)
"눈치 보지마"
시즌 도중 자진 사퇴한 추일승 감독을 대신해 프로농구 고양 오리온의 지휘봉을 잡은 김병철 감독대행이 선수들에게 던진 메시지다.
김병철 감독대행은 농구대잔치 시절부터 프로농구 초창기까지 농구 팬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스타다. 현역 시절 '피터팬'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김병철은 내외곽을 가리지 않는 득점 기계로 명성을 날렸다.
현역 시절 오리온 유니폼을 입고 우승했던 시절 '피터팬'은 김승현, 마르커스 힉스와 함께 화끈한 공격농구를 선보였다. 추일승 감독이 팀을 정상으로 이끌었던 2015-2016시즌 역시 조 잭슨을 필두로 스페이싱 농구를 접목한 공격농구로 새 바람을 일으켰다.
이처럼 오리온은 막강한 화력을 자랑했을 때 영광의 시대를 누렸다. 김병철 감독대행은 앞으로 오리온을 이끌고 공격농구를 부활시키겠다는 각오다.
김병철 감독대행은 26일 오후 고양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9-2020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울산 현대모비스와의 홈 경기를 앞두고 "선수들에게 공격적인 농구와 자신감있는 플레이를 주문했다. 절대 눈치를 보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너무 과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과감한 농구를 보여드리고 싶다. 선수 개개인이 창의적으로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실력도 발전한다"고 말했다.
감독대행 선임 후 첫 경기는 이래저래 낯설 수밖에 없었다. 코치와 감독의 역할은 완전히 다르다. 게다가 현대모비스전은 국가대표팀 소집 휴식기 이후 첫 공식전이자 코로나19 확산의 여파에 따라 무관중으로 치러지는 첫 경기이기도 했다.
코트는 전반적으로 차분한 분위기였지만 김병철 감독대행의 메시지를 전달받은 오리온 선수들은 열정으로 적막한 코트를 채웠다.
1쿼터 중반 이승현은 격렬한 몸싸움을 벌인 끝에 골밑 포스트업 득점을 터뜨렸다. 1쿼터 막판에는 가드 이현민의 절묘한 패스를 받은 센터 장재석이 앨리웁 득점을 올렸고 이어 허일영이 기막힌 백도어 컷으로 득점을 생산했다.
2쿼터 때는 올시즌 오리온의 약점으로 평가받았던 포인트가드 포지션의 한호빈이 과감한 1대1 공격 시도 끝에 풀업 점퍼를 터뜨렸다. 한호빈이 적극성을 보이며 득점을 쌓을 때마다 김병철 감독대행은 박수를 쳤다.
전반을 40대34로 끝낸 오리온은 3쿼터 들어 더욱 신바람을 냈다.
한호빈은 짧은 출전시간동안 효율적으로 2대2 공격을 전개해 3쿼터에만 4개의 어시스트를 쌓았다. 어시스트가 동반된 야투 성공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팀원 전체가 유기적으로 공격을 펼쳤다는 의미다.
보리스 사보비치가 내외곽에서 공격을 주도했고 전반까지 잠잠하던 최진수도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했다.
오리온은 3쿼터 한때 15점차로 앞서나가며 주도권을 잡았다. 현대모비스는 양동근과 이종현, 리온 윌리엄스를 앞세워 반격했다.
오리온이 65대51로 쫓긴 종료 2분8초 전 한호빈이 과감한 1인 속공으로 골밑 득점에 상대 반칙까지 이끌어내자 김병철 감독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결국 오리온은 현대모비스의 막판 추격을 뿌리치고 68대64로 승리했다. 사보비치는 팀내 최다 22득점을 올렸고 한호빈은 13득점 8어시스트로 활약했다.
오리온은 시즌 전적 13승29패를 기록했다. 여전히 최하위다.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의 희망을 이어가는 7위 현대모비스(18승23패)는 분위기를 쇄신한 오리온에게 일격을 맞았다.
전통적으로 수비가 강한 현대모비스를 상대로 다득점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오리온 선수들은 경기 내내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김병철 감독대행은 "물론 수비로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공격에서 머뭇거리는 모습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찬스가 왔는데 다른 동료의 찬스를 보겠다고 패스한다? 그건 잘 안될 수도 있다. 자신의 찬스를 먼저 봐야 한다.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추일승 감독은 팀을 떠나면서 "팀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사퇴 이유를 밝혔다. 지난 24일 김병철 감독대행, 김도수 코치 등 오랜 시간 동고동락했던 스태프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잘해라. 잘할 수 있어"라고 직접 격려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전임 사령탑으로부터 힘을 얻은 김병철 감독대행은 지도자로서 산뜻한 출발을 보였다. 첫 경기부터 많은 변화가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승리를 통해 가능성을 보여줬다.
오리온이 남은 기간 팀 순위를 끌어올리기는 어려울 수 있다. 김병철 감독대행은 지휘봉을 내려놓은 추일승 감독의 뜻대로 조금이라도 빨리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각오다. '피터팬'이 만들어나갈 오리온의 공격농구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