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오는 4월 15일은 국민을 대표해 법을 만들고 정부를 감독할 국회의원 300명을 뽑는 날이다. 전국 253개 지역구 표심은 어디로 향할까. CBS노컷뉴스는 '핫플레이스'로 꼽히는 격전지 유권자들을 만나 해당 지역의 성패를 가를 키워드를 짚어보고, 유세 중인 각 후보들의 고민과 전략을 공개하는 '스포일러' 연속기획을 준비했다.
21대 총선에서 서울 강남을에 출마하는 더불어민주당 전현희 후보와 미래통합당 박진 후보. (그래픽=고경민)
'서울 강남을'은 4년 전 강남(갑·을·병)·서초(갑·을) 지역구에서 유일하게 지금의 여당이 깃발을 꽂은 지역이다. 전통적인 보수텃밭이지만 선거구 획정으로 대치동이 강남병으로 편입되고, 일찍이 지역구 활동을 시작한 전현희(재선) 의원의 진정성이 빛을 발해 가능한 결과였다는 평이다.
그래서 강남을은 이번 총선에서 여야 모두에게 중요한 곳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강남벨트' 최후의 보루를 지켜내겠다는 다짐이고, 미래통합당은 반드시 탈환해 전통 표밭인 강남벨트를 완성하겠다는 각오다. 통합당은 종로에서 3선을 지낸 박진 전 의원을 후보로 내세웠다.
◇ 전현희의 '친근감' vs 박진의 '경험'
30일 아침 출근길. 개포4동 삼거리에서 시민들에게 손을 흔드는 전현희 후보
30일 출근길. 전현희 후보와 박진 후보 모두 각각 개포4동 삼거리와 3호선 일원역사에서 시민들과 인사를 나눴다.
전 후보의 무기는 친근감이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야했지만 밀려올라오는 눈웃음까진 감출 수 없었다. 악수 대신 손을 흔든 그는 왼쪽 가슴에 얼굴만 한 해바라기를 달고 있었다. 강남 주민만 '바라'보고 가겠다는 의미라고 했다. 시민들은 전 후보를 먼저 알아보고 "안녕하세요 의원님", "화이팅" 하며 호응했다.
전 후보는 약국에서 마스크를 사기 위해 줄을 길게 늘어뜨린 시민들에게도 명함을 건네는 대신 고개 숙여 인사했다. "눈을 마주치고 인사해 좋다"는 시민도 있었지만 "마스크를 사려고 30분을 기다렸는데 오늘도 허탕"이라며 "정책에 잘 반영해달라"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코로나19로 사람이 죽어나가는데 무슨 국회의원 선거냐"는 쓴 소리를 하는 시민도 있었지만 전 후보는 "죄송합니다. 오늘도 힘내십시오"라며 남성을 달랬다.
서울 강남을 최근 선거 결과 추이. (그래픽=고경민)
박 후보는 전 후보에 비해 지역구 내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다양한 경험이 무기다. 박 후보는 "종로에서 3선을 지내면서 교통, 교육, 부동산 문제를 많이 다뤄봤다. 힘 있는 4선 의원으로, 큰 일꾼으로 이 지역 문제들을 빨리빨리 해결해낼 자신이 있다"고 포부를 밝혔다.
시민들의 기대도 컸다. 지역주민 강모(65)씨는 "전현희 의원도 지역 일을 열심히 잘했지만 박 후보 정도면 비집고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며 박 후보를 추켜세웠다.
반면, 주민 진모(53)씨는 "종로에서 3선이나 한 후보가 강남에 대해 얼마나 알지는 지켜봐야한다"며 내심 경계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 주민들 관심 현안은 '지하철'과 '집값'
30일 아침 출근길. 강남구 자곡사거리에서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박진 후보
강남을 지역구의 고민거리는 주택문제와 교통문제다.
서민들의 보금자리주택이 몰려있는 세곡동에선 '분양가상한제'가 화두였다. 임대주택아파트 단지 정문에 '분양가 산정 해결하라'라는 현수막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주부 김모(60)씨는 "분양가가 1~2억이 올랐다는 건 결국 나가라는 것"이라면서 "조그마한 집 단칸방을 대신 샀다면 걱정 없이 살 수 있었을 텐데 괜히 이곳에 들어와서 마음고생"이라며 치솟은 집값에 불만을 나타냈다.
서울시용역 단계까지 마친 '위례과천선(線)'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자영업자 이모(62)씨는 "자곡사거리와 수서역을 연결한다는 식의 확정된 결과가 나와야 주민들이 박수쳐줄 수 있는 것 아니냐"며 볼멘소리를 냈다.
이에 전 후보는 "지하철 완공 사업이 보통 10년 이상 걸리는 일인데, 짧은 시간 내에 압축적으로 빨리 진행해 올해 안에 국토교통부에서 지하철역 노선을 결정하는 단계까지 왔다"며 사실상 착공도 기정사실이라 "공약을 지킨 것"이라고 강조했다.
개포동, 일원동 등 지역구 내에서 상대적으로 보수의 세가 강한 지역은 오른 공시지가에 따른 보유세 증가에 불만이 가득한 분위기였다. 총선이 정권에 대한 중간 심판의 성격이 강한 만큼, 여당인 전 후보에게는 반갑지만은 않다.
개포동에서 부동산 중개 일을 하는 김모(55)씨는 "공시지가가 작년에 비해 40~50% 올랐고, 그에 따라 보유세도 올라서 주민들이 구청에 민원을 넣고 있다"면서 "게다가 부동산 담보 대출도 잘 안 돼 거래마저 끊겼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반면, 개포동에 7년째 살고 있다는 주부 박모(63)씨는 "집값이 오르면 보유세도 더 내야하는 게 당연한데, 가진 자들이 너무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것 같다"며 "일단 한 번 더 민주당을 지지하겠다"고 말했다.
◇ 구룡마을 주민들 "우리도 투표한다"
개포동 구룡마을 모습
이젠 1천여 세대 정도 남은 개포동 구룡마을 주민들에겐 '보유세' 논의조차 사치로 여겨진다. 이곳은 강남에 남은 마지막 '판자촌'이다. 주민들은 일단 자기 집부터 갖고 싶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이들이 요구하는 '선임대 후분양' 방식이 정부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아 낙심한 분위기다.
지난 20년간 구룡마을 복원에 힘썼다는 김모(72)씨는 "시장, 구청장이 다 같이 힘을 합쳐야지 사업을 추진할 수 있지, 국회의원 혼자서 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며 체념한 듯이 말했다.
이들은 지난 다섯 번의 총선에서 구룡마을 문제를 해결해주겠다는 후보가 나타나면 집집마다 돌며 해당 후보의 투표 기호를 외우게 하고, 투표소까지 어르신들을 트럭으로 태워줬다고 한다.
그렇게 극성이었던 구룡마을 주민들은 아직까지 후보를 정하지 못한 분위기다. 그러나 반드시 소중한 한 표는 행사하겠다고 말한다. 주민 황모(71)씨는 "박진 후보는 유명한 사람이 아닌가, 3선했던 사람"이라며 박 후보를 유심히 보겠다고 말했다.
전 후보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야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1989년 '구룡마을'의 명칭을 직접 지었다는 이모(75)씨는 "전 의원은 새누리당(현 미래통합당) 텃밭에서 초선을 했는데 그래도 뭔가 이뤄야 하지 않겠나. 아직 전 의원이 잘했다 못했다 말할 단계가 아닌 것 같다"며 힘을 실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