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에서 보안검색 노동자 정규직화 관련 브리핑을 마친 구본환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이 브리핑실을 나와 엘리베이터로 이동하던 중 직원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근 불거진 인천국제공항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논란이 좀처럼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공공부문 전반에 걸쳐 반복됐던 노사 갈등이 아직도 끊이지 않는 근본 원인에는 정부의 안이한 태도가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시대적 과제 '노동시장 양극화 해소'…"정규직 전환이 노동시장 공정성 지키는 것"3년 전인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직후 첫 외부일정으로 인천국제공항을 찾아 내린 1호 명령이 바로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였다.
특히 2016년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작업 도중 김 모 군이 사망한 사고와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작업 중 일어난 고(故) 김용균 씨의 죽음을 계기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힘이 실렸다.
더 나아가 원청-하청,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등 이른바 '노동시장의 2중 구조' 문제를 해소하는 일은 2000년대 들어 꾸준히 제기된 '시대적 과제'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전임 박근혜 정권 당시에도 비록 방향은 다른 해법이지만, '노동시장 양극화'를 타파하겠다는 목표 아래 성과연봉제 도입 등 정규직 노동자의 고용 안정성 '유연화'하는 정책을 펼치기도 했다.
특히 공공부문은 오히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 양산을 앞장섰다는 비난을 받아 왔다. 지난해 공공기관과 공기업, 준정부기관, 기타공공기관 등의 임직원 정원은 82만여명에 달하는데,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만 41만여명에 달한다.
이번에 논란에 휩싸인 인천공항은 비정규직 양산에 있어 선두주자로 꼽힌다. 정규직 전환 작업을 시작했던 2017년 기준 전체 노동자 1만 490명 중 정규직은 겨우 1265명으로 12%에 불과했다.
그동안 높은 고용 안정성과 안정된 임금·복지조건 등으로 '신의 직장'으로 불리던 공공부문 정규직의 노동조건이야말로 이러한 외주화·비정규직 양산으로 가능했던 '불공정' 사례라는 비판도 나온다.
청와대 황덕순 일자리수석이 지난 25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채용 과정의 공정성과 조금 다른 측면에서 노동시장의 공정성을 지향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의 연장선으로 읽힌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이사장은 "인천공항이 제일 심각하다. 1만여명이 함께 일했는데, 성과금은 사무관리 정규직 1천여명이 독차지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한 노조 관계자는 "흔히 하청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원청 대기업 노동자들에게 희생하라고 주장하는데, 같은 회사 안의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위해서는 양보할 수 없다고 한다"며 "이야말로 노동 현실에 대한 이해가 없는 비판으로 답답하다"고 말했다.
◇인천공항만의 문제 아냐…공공부문 곳곳에서 터진 노사 갈등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우여곡절 속에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 정책은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
2020년까지 공공부문 비정규직 20만 5천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정부 계획 아래 지난해 말 기준 19만 3천명(94.2%)가 정규직으로 전환되기로 결정됐고, 이 가운데 90%에 달하는 17만 4천명은 이미 전환 작업이 완료됐다.
하지만 정작 해당 사업장 곳곳에서는 갈등과 불만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7월, 전국 학교의 급식 중단 사태를 빚었던 학교 비정규직 파업도 정규직 전환 후 임금 지급 방식 등을 놓고 일어난 갈등이 한 몫 했다.
지난해 2월 서울대 시설관리직 노동자들이 도서관 난방을 중단하며 갈등을 빚은 것도 정규직 전환 이후 실질적인 처우 개선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노사가 극한 대립을 펼친 한국도로공사의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대량해고 사태 역시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자회사냐, 직접 고용이냐를 놓고 다툼이 벌어졌다.
지난해 11월 철도노조 총파업 역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불거진 인력충원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부각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서울지하철 9호선, 서울대병원, 한국잡월드 등에서도 정규직 전환을 둘러싼 노사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현재 불거진 논란 역시 인천국제공항 등 특정 사업장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작업 자체의 모순이 터졌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정규직 전환 재촉하고도 전환 방법에는 손 놓은 정부…"지금이라도 해법 내놔야"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이처럼 갈등이 반복된 근본 원인은 정부의 안이한 태도에 있다.
취임 직후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정규직 전환을 강조했지만, 비정규직 41만여명 중 절반 이상은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배제되면서 첫 단추부터 잡음이 일었다.
정부가 말한 '정규직'의 정의도 모호해서 '중규직'으로 불리는 무기계약직이나 자회사 고용도 정규직 전환으로 인정된 바람에 노동계는 실질적인 처우 개선과는 동떨어진 결과를 낳았다고 반발해왔다.
가장 큰 문제는 이처럼 정규직 전환을 서두른 정부가 내놓은 관련 가이드라인에서 노·사·전문가 협의회를 통해 각 사업장이 '자율적으로' 전환방식을 결정하도록 한 점이다.
비정규직 노동자 중 전환 대상 선별 기준, 고용 방식, 채용 과정, 향후 노동조건 등 어느 것 하나 구체적인 지침 없이 각 사업장의 책임으로 떠맡긴 것이다.
노사 간의 충분한 공감대가 쌓이기도 전에 정부가 정규직 전환 작업을 독촉하면서도 정작 '어떻게' 전환할 것인지에는 답을 주지 않다 보니 인건비 감축을 바라는 사측과 기존 노동 조건을 지키고 싶은 정규직, 처우개선을 노리는 비정규직 간의 노·노·사 갈등을 정부가 조장한 셈이다.
인천국제공항 보안검색노동조합 김대희 공동위원장도 이번 보안검색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반기기는커녕, 사측이 성과를 내기 위해 무리수를 뒀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사측이 합의 결과를 발표한 당일 오전까지도 합의를 체결한다는 안내도 받지 못했다"며 "오히려 탈락자 구제방안 등 세부 내용이 없어 합의를 이루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정부가 정규직 전환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산업노동정책연구소 김성희 소장은 정부의 정규직 전환 작업에 대해 "사전준비도 부족했고, 임금이나 고용방식 등에 대해서도 부족한 채 구호부터 내놨다"며 "사후관리도 일관되게 하지 않고, 각 기관에 맡기고 손을 놓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가 현실적으로 (정규직 전환이) 가능한 지점을 정확히, 능동적으로 제시해야 한다"며 "현재의 차별적인 구조를 그대로 옮겨놓는 자회사 방식 등은 제외하되 전향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기준점을 마련하는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