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세임사이드컴퍼니 사무실에서 래퍼 산이를 만났다. (사진=세임사이드컴퍼니 제공)
단독으로 내는 미니앨범은 지난해 12월 '발라드 랩 송'(Ballad Rap Song) 이후 6개월 만이다. 2013년부터 7년 동안 싱글, 미니앨범, 정규앨범을 내면서 바쁘게 음악 활동을 해 온 그이지만, 2018년 말부터 2019년 초까지는 가수보다 가수인 현재 위치에서 하는 '말'과 '행동'으로 화제 혹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취재진, 일부 대중과 각을 세웠던 나날을 뒤로하고 올해는 음악 작업에 집중했다. 많을 땐 하루에 두세 곡씩 만들기도 했다. 주로 사랑 노래였다. 그 노력의 결과물은 지난 21일 미니앨범 '룩! 왓 해픈드 투 러브?!'(Look! What Happened To Love?!)로 나타났다.
지난 25일 낮, 서울 여의도 세임사이드 컴퍼니에서 만난 래퍼 산이는 "인터뷰를 너무 하고 싶어서 대표님께 말씀드렸는데 이렇게 빨리 잡아주실지는 몰랐다"라고 말했다. 이유를 물으니 "그냥 너무 안 해서"라며 웃었다. 다른 가수들이 새 음악을 들고나와 인터뷰하는 걸 보고 자연스레 '나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룩! 왓 해픈드 투 러브?!'는 산이가 선보이는 첫 번째 '시리즈' 앨범이다. 그동안은 타이틀곡을 만들고 안전하게 채워 넣는 수록곡을 만들었다면, 이번에는 무작정 곡을 썼다. 콘셉트는 앨범명에서도 알 수 있듯 '사랑'이다. 만들고 나니 가장 많은 게 사랑 노래였다. 외국 아티스트들은 앨범 한 장에 천 곡 정도를 준비한다는 말을 듣고, 성실히 작업에 몰두했다. 1절과 훅까지 있는 최소의 틀을 갖춘 노래만 70~80곡, 스케치 수준의 곡까지 치면 100곡 정도가 나왔다.
지난 21일 발매된 산이의 새 미니앨범 '룩! 왓 해픈드 투 러브?!' (사진=세임사이드컴퍼니 제공)
타이틀곡은 '결혼생각'이다. 코스믹 걸과 공동 작사하고 스타더스트와 공동 작곡한 곡이다. 산이는 "지금 제 나이와 위치에서 어떤 곡을 내는 게 나한테 걸맞을까 생각하는 순간, '결혼생각'이 떠오르더라. 지금 (결혼) 적령기가 됐고"라고 말했다. '미안 난 결혼 생각이 없어 그냥 날 버려 이쯤에서 어서 빨리'라는 도입부 가사에서 눈치챌 수 있듯 이 곡은 사실 '결혼생각이 없다'는 곡이다. 그는 "실제 제 속마음을 써놓은 것 같다. 일기처럼 쭉 썼다"라고 덧붙였다. 피처링은 기존부터 친분이 있던 코스믹 걸이 맡았다.
'룩! 왓 해픈드 투 러브?!'는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단계를 바탕으로 스토리라인을 지닌 앨범이다. 날씨가 아주 좋은 날 곡 작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택시에서 음악을 듣다가 멜로디를 쓴 '데이드리밍'(Daydreaming)은 사랑이 시작되기 전 풋풋한 감정을 담은 곡이다.
'사람마음'은 나는 좋아하지만 상대는 아직 그렇지 않은 상태를 그렸고, '자쿠지'(Jacuzzi)는 관계가 더 진전된 연인의 이야기를 펼쳐냈다. '헤어지고 바로 쓴 노래'는 헤어짐, '아임 서치 언 애스홀'(I'm such an asshole)은 이별 뒤 후회가 주제다.
이번 앨범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싱잉 랩', '멜로디 랩'과 노래하는 파트가 많아졌다는 거다. 산이는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누가 '그럼 노래 연습을 해 보는 게 어때?'라고 했다. 헛소리라고 생각했다. '내가 노래 잘하는 사람도 아니고 지금 와서 무슨 노래를 해?' 했다. 근데 해 보니 프로페셔널한 보컬 정도는 아니어도 나름 제 느낌이 나오더라. 어떤 날은 '꽤 괜찮은데?' 한다"라며 웃었다.
국내 최대 음원 사이트 멜론 기준으로, 산이가 작사한 곡은 213곡, 작곡한 곡은 112곡이다. 이렇게 부지런히 곡을 만드는 창작의 원천이 궁금했다. 산이는 "생각 많이 안 하는 거?"라고 답했다. 예전에는 1년에 한 번, 2주 정도면 끝났던 슬럼프가 잦아졌다. 두 달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길게는 저조한 시기가 6개월을 갔다. 가사 한 줄 못 쓰는 시간을 거치고 깨달았다. 우울한 감정을 더 파고드는 건 아무 도움도 안 된다고.
산이는 '룩! 왓 해픈드 투 러브?!'를 통해 처음으로 시리즈물에 도전한다. 앨범의 파트 2도 준비 중이다. (사진=세임사이드컴퍼니 제공)
작업 스타일의 변화도 있었다. 산이는 "예전에는 16마디를 다 쓰고 녹음했는데 이제는 다 잘라서 한다. 예전에는 잘라서 (작업)하면 랩을 못 한다는 편견이 있었다. '래퍼라면 처음부터 다 써야지~' 하면서"라고 설명했다. 이제는 음악 틀어놓고 흥얼흥얼하면서 거기다 가사를 한 줄씩 붙인다. 여러 번 반복하면서 가장 알맞은 가사를 찾는다. 올해 초부터 그렇게 하기 시작했다.
사랑 노래로 채운 '룩! 왓 해픈드 투 러브?!'를 낸 데는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마음 때문이었다. 이수역 폭행 사건 관련 SNS 글로 논란의 중심에 섰고 이후 '페미니스트', '기레기레기'라는 음원을 발표했으며, 공연 중 관객과 설전을 벌이던 때가 있었다. 산이는 "아티스트 병인 거 같은데, 아티스트라면 자기 소신을 얘기해야지 하는 데 한참 꽂혀있던 거 같다. 그런 일을 겪고 나서 '내 초심은 음악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위로해주는 거지 이건 아닌 것 같아' 느꼈다. 그 계기로 조금 더 어른스러워지고 성숙해졌다"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는 제 목소리를 절대 안 낼 거예요!' 이건 아니"라면서도 "그 순간을 아예 후회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그런데 평평하게 가는 산이보다는 굴곡이 지는 게 제게는 결과적으로 봤을 때 인생이란 게임에서 역사가 되고 뭔가 남는 거라고 본다. 뭔가 성숙한 깨달음을 주지 않았나 싶다"라고 부연했다.
산이는 '룩! 왓 해픈드 투 러브?!' 파트 2를 준비 중이다. 또 올해 4월 설립한 레이블 페임어스(FameUs)의 CEO로도 활동한다. 얼돼(errday), 말키(Malkey), 비오(BE'O) 등이 속해 있다. 앞으로의 각오를 묻자 산이는 "제가 부탁을 되게 못하는데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부탁이라는 걸 하게 되더라. 되게 깜짝 놀랐다"라며 "후배 양성이라기보단 '같이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다 보니 수장 겸 리더가 됐는데 CEO보단 저도 페임어스의 아티스트이고 싶다"라고 말했다.
래퍼 산이 (사진=세임사이드컴퍼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