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
①76세 노인의 한숨 "폐지 주워 2천원…이젠 반찬 걱정" ②6남매 엄마 "월급 30만원…내년에는 이마저도 끊겨" ③뺑소니에 다리 잃은 가장 "월세 밀려 보증금 200만원 남아" (계속) |
이병기씨의 소중한 자녀들. 몸이 불편해 아이들과 마음껏 놀아주지 못하는 이씨는 늘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충남 아산시에서 생활하는 이병기(55)씨는 어린 자녀들이 집안에서 뛰어노는 모습만 봐도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아직은 아빠 엄마와 함께 노는 게 최고의 재미인 아이들. 이씨에게는 이런 자녀들이 한없이 소중한 존재다.
아이들과 함께 뛰어놀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다리가 불편한 이씨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환한 얼굴로 바라봐주는 일이 고작이다. 몸이 성했다면 아이들에게 더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만이 가득할 뿐이다.
그날의 사고로 힘든 시간을 보내던 이씨에게 아내와 자녀들은 다시 힘을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그나마 있던 소일거리마저 없어지면서 이씨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지는 날보다 근심이 가득한 순간이 더 늘어나게 됐다.
◇ 희망을 앗아간 뺑소니 사고…송두리째 사라진 마라토너의 꿈노모(老母)와 아내, 그리고 세 명의 자녀와 함께 지내고 있는 이씨. 그의 몸이 불편해진 것은 32년 전 발생한 불의의 사고 때문이다. 젊은 시절 이씨는 친구들을 배웅해주고 집으로 돌아오다 횡단보도에서 차에 치이는 사고를 당했다. 대부분의 장기가 파열되는 매우 큰 사고였다. 가까스로 목숨은 건졌지만 사고로 인해 이씨는 오른발을 잃었다.
다문화가정의 가장 이병기씨는 32년 전 뻉소니 사고로 인해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는 불행을 겪었다.
심지어 뺑소니 사고를 당한 터라 수천만원이 드는 수술비와 병원비도 이씨 집안에서 마련해야 했다.
이씨는 "사고 이후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뒤 정신을 찾았다. 의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고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 몸이 좋지 않은 사람들만 가득해 덜컥 겁이 났다"라며 "내가 내 몸을 봐도 너무나 처참했다. 수술을 받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뒤늦게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옮겼는데 이미 다리는 살릴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어쩔 수 없이 절단해야 했다"라고 사고 당시를 회상했다.
운동을 좋아했던 이씨의 삶이 송두리째 바뀌는 순간이다. 어린 시절부터 또래보다 뛰어난 체력을 자랑했던 이씨는 선수생활을 하며 마라토너를 꿈꿨다. 하지만 사고로 다리를 절단하면서 그의 꿈도 물거품이 됐다.
사고로 인해 실의에 빠진 순간도 있었지만 이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장애인들이 모여 액세서리를 제조하는 회사에서 일을 시작하며 삶의 의지를 불태웠다. 그리고 2011년 캄보디아 출신인 지금의 아내를 만나 가정도 꾸려 세 아이의 아빠가 됐다.
결혼 이후 이씨는 그간 쌓아온 경험을 토대로 액세서리를 만드는 공장을 차렸다. 처음에는 수완이 좋아 제법 수익을 냈지만 주문이 점차 제품 단가가 저렴한 중국으로 향하면서 이씨에게 주어지는 일은 줄어들었고 사업 시작 6개월 만에 주문은 완전히 끊기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폐업하고 다른 일을 찾았지만 거동이 불편한 그를 찾아주는 곳은 많지 않았다. 어렵사리 아내가 직장을 찾았지만 임신했다는 이유로 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등 떠밀리듯이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로 인해 집에서 하던 부업마저 끊겨 현재 경제활동으로 얻는 수입은 전혀 없는 처지가 됐다.
아이들이 지내는 방 벽면은 비가 오면 누수로 인해 빗물이 넘치고 곰팡이가 발생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씨는 최대한 곰팡이를 지워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있지만 이 역시도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 몸이 성하지 않은 老母, 갑상선암 걱정하는 아내기초생활수급자인 이씨의 가정. 코로나19로 인해 일거리가 생기지 않으면서 형편은 더욱 좋지 않은 상황이 됐다. 생활고가 이어지면서 월세를 제때 내지 못해 보증금 700만원도 이제는 200만원 남짓 남은 것이 고작이다.
이씨의 어머니도 고령으로 허리와 무릎 등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다. 아내는 갑상선결절 6단계로 약물치료를 받고 있다. 건강이 더 안 좋아져 갑상선암 판정을 받는다면 수술을 해야 하는데 당장 수술비도 감당하기 어려운 처지다.
집도 수리할 곳이 한둘이 아니다. 특히 아이들이 지내는 방의 균열이 생겨 비가 오는 날이면 물이 고이고 곰팡이가 생기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씨의 가정을 후원하고 있는 굿네이버스에서 아이들을 위해 수리 비용을 지원하기로 해 한시름 덜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앞으로가 더 막막하다. 코로나19 상황이 지속된다면 생활고는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의욕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부분이다. 새벽 2시면 잠에서 깨어 가족들 걱정에 시간을 보내는 일은 어느덧 그의 일상이 되어 버렸다.
이씨는 "계속 일을 찾아보고 있는데 코로나 때문에 일자리가 없다. 막노동이라도 나가고 싶은데 가도 할 일이 없을뿐더러 불러주지도 않는다. 방법이 없다"라며 "상황이 이렇다보니 누구를 만나는 것도 꺼려지는 것은 사실이다. 친구들에게 만나자고 연락이 와도 나가지 않게 된다"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병기씨의 아내는 감상선결절로 인해 약물치료를 받고 있어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 "아이들을 제대로 안아보고 싶은 마음이 제일 커"불편한 이씨의 몸은 아이들을 편하게 안아보는 것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이씨는 "선 채로 아이를 안아본적이 없다. 평소 이동할 때는 목발을 사용하기 때문에 아이들 손을 잡고 걷는 것도 안 된다. 의료공단의 지원을 받아 의족을 제작했지만 착용하면 살이 접히는 문제로 인해 심한 통증이 발생해 잘 착용을 안 하게 된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무릎 관절까지 움직이는 의족을 착용한다면 서서 아이들을 안아볼 수도, 손을 잡고 걸어볼 수도 있다. 또 제대로 된 의족이 있다면 직업 선택의 폭도 넓어진다. 하지만 이런 의족은 너무 고가라 이씨는 감히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이 때문에 평소에도 의족이 아닌 목발에 의지하고 있다.
마음 한쪽에는 커가는 아이들이 자신의 장애로 인해 상처받을까봐 하는 걱정도 있다.
이씨는 "되도록이면 아이들 친구들에게 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가족 모두 마트를 가더라도 저는 밖에서 장보기가 끝나길 기다린다. 될 수 있으면 아이들이 상처를 받지 않고 자랐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씨의 어머니도 "요즘 애들은 옷을 보고도 '어디서 샀니? 나는 백화점에서 샀어'라는 말을 한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백화점에서 옷을 사주고 싶지만 시장에서 사줄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 가슴이 아프다"라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이병기씨 가족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 가족들과 캠핑을 할 수 있는 날이 올까요?어린아이들에게만큼은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다. 그래서 적은 금액이지만 세 아이들 앞으로 적금을 만들어 매달 넣고 있다.
이씨는 "해주고 싶은게 너무 많지만 그러지 못해 미안하다. 특히 아이들이 TV를 보고 캠핑을 하러 가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런데 장비 살 돈도 없다보니 해줄 수 없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이어 "놀이동산을 가더라도 제일 저렴한 기구 2개 정도만 타고 돌아온다. 아이들이 '아빠 우리는 왜 더 안놀고 집에 가요?'라는 말을 할 때면 가슴이 미어진다"라고 전했다.
첫째 지훈(8·가명)이도 아빠와 해보고 싶은 게 너무 많다. 지훈이는 "아빠가 다리가 있었다면 같이 자전거도 타면서 놀 수 있을 텐데 아쉬워요"라고 작은 투정을 부렸다. 하지만 이내 "아빠와 엄마, 할머니가 있어서 너무 좋아요"라고 환한 웃음을 보였다.
캠핑과 더불어 아이들과 함께 목욕탕을 가보는 것도 이씨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다. 그는 "예전에 사고 이후 친구들과 목욕탕을 갔었는데 탕에 들어서자마자 크게 넘어진 경험이 있다. 이후 목욕탕을 안가게 됐다"라며 "그래도 요즘 좋은 의족은 미끄럼 방지도 된다고 들었다. 만약 그런 의족을 갖게 된다면 다른 아빠들처럼 아이들과 목욕탕에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것도 해보고 싶다"라고 작은 소망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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