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훈 목사가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보수단체 광복절 집회에서 문재인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담임목사가 스스로 자가격리 대상자라는 사실을 알 기회는 여러 차례 있었다. 하지만 전 목사는 자가격리 지침을 지키지 않고 끝내 지난 15일 보수단체 집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결과는 참혹했다. 전 목사 본인부터 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았고, 그가 이끄는 사랑제일교회는 코로나19 재확산의 진원지로 지목되고 있다.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에 따르면 19일 오후 12시 기준 사랑제일교회 관련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는 623명을 기록했다.
◇ 전 목사, 자가격리 대상자 '인지'할 기회 4차례 있었다20일 방역당국과 성북구의 설명을 종합하면, 전 목사는 네 번에 걸쳐 자가격리 대상자라는 사실을 '인지'할 기회가 있었다.
먼저 성북구 보건소는 사랑제일교회에서 첫 확진자가 발생한 12일 오후 6시쯤 사랑제일교회를 방문했다.
이들은 당시 교회에 있던 박중섭 부목사에게 "교회에서 확진자가 발생했으니 당시 예배에 참석했거나 접촉한 사람은 검사와 함께 자가격리를 해야한다"는 취지의 내용을 구두로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보수단체 집회 참가자들이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8·15 광복절 맞아 집회를 하기 위해 모여들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실제로 교회 측은 보건소가 방문한 뒤인 12일 저녁 10시쯤 신도들의 개인 휴대전화 번호로 "확진자가 나온 관계로 예배를 2주 동안 중단한다. 각 개인은 일정 기간 자가격리해주시고 증상이 있으신 분은 가까운 보건소를 방문해 검사를 받아달라"는 취지의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구 관계자는 "전광훈 목사만을 집어 자가격리 대상자라고 통보한 것은 아니지만 예배 참가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는 전반적인 사항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교회 쪽의 유튜브 영상을 보면 확진자가 잇따라 나오기 시작한 12일 직전까지도 전 목사가 수십 명의 신자 앞에서 두시간씩 설교를 한 만큼, 전 목사는 명백한 자가격리 대상이었다.
이후 성북구는 13일 사랑제일교회에 시설폐쇄와 함께 집합금지 명령을 내렸다. 당시 성북구 관계자가 직접 관련 공문 등을 들고 사랑제일교회에 방문했다. 구는 같은 날 교회 방문자 및 신도 명단을 확보해 '증상 여부와 관계없이 검사를 받으라'는 긴급재난문자도 발송했다.
다음 날인 14일에는 교회 신도 및 방문자에 대한 코로나19 검사이행 명령까지 발동됐다.
전 목사를 대상으로 한 가장 직접적인 조치는 지난 15일에 이뤄졌다. 성북구 보건소가 같은 날 오후 2시 15분쯤 사랑제일교회를 찾아 교회 장로에게 전 목사가 자가격리 대상이라는 '통지서'를 전달한 것이다.
앞선 절차와 달리 전 목사를 대상으로 밟은 정식 법적 절차였다. 이후 전 목사는 오후 5시 40분쯤 통지서에 서명해 성북구에 팩스로 제출했다.
◇ 계속해서 이어진 자가격리 이탈…전 목사 측 "법적 효력은 서명한 시점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가 17일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 사택을 나서 성북보건소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여러 차례의 기회에도 불구하고 전 목사의 자가격리 이탈은 이어졌다. 13일 오전과 오후 서울 종로구의 사택을 드나드는 모습의 CC(폐쇄회로)TV 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제삼자와 대화하는 모습이 담겼다.
특히 전 목사는 보건소에서 자가격리 통지서를 전달한 이후인 15일 오후 광화문 집회에 참석했다. 오후 3시 10분쯤 연단에 오른 전 목사는 "구청에서 우리 교회를 찾아와 나를 격리 대상으로 정했다고 통보했다. 이놈들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결국 전 목사는 지난 17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병원으로 이송됐다. 전 목사의 아내 역시 같은 날 확진판정을 받았다.
일단, 전 목사 측은 "자가격리 지침 이행 의무는 당사자가 자가격리 대상임을 당국으로부터 통보받아 인지할 때부터 생긴다"며 "15일 광화문 집회 연설을 마친 오후 격리 통지서를 전달받아 서명하기 전에 어떤 통보도 받은 사실이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전 목사가 서명한 시점부터 '법적' 효력이 발생하고 이에 따라 그 이전의 자가격리 이탈에는 법적 책임이 없다는 주장이다. 다만 방역당국은 자가격리 통지서를 전달한 15일에 한해서는 자가격리 위반 사실이 명백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전 목사가 드러낸 자가격리 사각지대…방역당국 "경찰 조사 결과로 판단"전 목사는 일종의 자가격리 사각지대를 보여주는 사례라는 지적이 나온다. 각종 정황에 비춰 자가격리 대상임을 사전에 '인지'하더라도 통지 절차 등을 들며 자가격리 의무를 지키지 않는 사람을 관리·제재할 마땅할 방법이 없어서다.
기존 자가격리 대상자를 관리하는 시스템들은 전 목사 앞에서 무용지물이었다.
확진 판정을 받은 전광훈 목사. 자가격리앱
방역당국은 자가격리 대상자의 동의를 얻어 행정안전부(행안부)에서 개발한 자가격리자 안전보호 앱을 설치하도록 한다. 해당 앱을 이용하면, 자가격리 지역을 이탈하면 자동으로 알림이 송출되고, 자가격리자가 스스로 진단한 건강 상태도 전담 공무원에게 자동으로 통보된다.
만약 대상자가 앱 설치를 거부하면 보건소는 지침 위반 여부를 점검하기 위해 불시점검을 나가거나 휴대전화에 전화를 거는 등의 방식으로 대체한다. 하지만 성북구는 전 목사에게 앱을 설치하게 하지도, 자택 불시점검을 하지도 못했다.
성북구 관계자는 "8월 13일에서 17일까지 전광훈이라는 이름으로 앱이 설치된 내역은 없다"며 "다만, 격리 통지서 수령증에 앱 설치 관련 사항이 명시돼있긴 하다"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통지서를 전달한 15일 오후 2시 15분 이전에는 보건소 차원에서 전 목사에 대한 별도의 자가격리 점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지적에 방역당국 관계자는 "(통지서가 전달되기 이전의 자가격리 문제는) 전 목사에 대한 경찰 조사가 이뤄지는 만큼 사실관계를 파악해봐야 할 것 같다"며 "전 목사가 어떤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는지, 격리를 위반한 건지 역학조사에 협조하지 않은 건지 등에 대해 밝혀지는 것을 근거로 처벌조항을 살펴볼 것"이라고 답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