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연합뉴스
형법 제307조 제1항의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헌법에 반하지 않는다는 합헌 판단을 내렸다. 허위가 아닌 사실을 말한 경우에도 명예훼손죄로 처벌받을 수 있어 논란이 컸지만 인격권을 보호하기 위한 정당성이 인정된다는 판단이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25일 재판관 5대 4 의견으로 제307조 제1항이 청구인들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고,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며 헌법소원 청구를 기각했다.
헌법소원을 낸 A씨는 동물병원에서 반려견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수의사의 잘못된 진료행위를 자신의 SNS에 적시하려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처벌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번 헌법소원을 냈다.
또 다른 청구 당사자 B씨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2018년 1심에서 벌금 50만 원을 선고 받고 상고심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형법 제307조 제1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제310조에서 이러한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해 예외적으로 위법성을 조각하고 있다.
청구인들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설사 그 필요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처벌 구조는 과잉금지원칙에 반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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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헌재는 "오늘날 사실 적시 매체가 매우 다양해지면서 명예훼손적 표현의 전파속도와 파급효과는 광범위해지고 있고 일단 훼손되면 완전한 회복도 어려워 이러한 명예훼손적 표현행위를 제한해야 할 필요성이 더 커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심판대상 조항은 인격권 보호를 위한 입법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되며 금지의무를 위반한 경우 형사처벌하는 것도 명예훼손적 표현행위에 대해 상당한 억지효과를 가질 것이므로 수단의 적합성도 인정된다"고 밝혔다.
해외의 경우 명예훼손적 표현행위에 대해 형사처벌이 아니더라도 징벌적 손해배상 등의 제도를 통해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지만, 국내에는 아직 처벌만큼 예방적 효과가 있는 수단이 없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재판관 4명(유남석·이석태·김기영·문형배)은 '진실한 것으로서 사생활의 비밀에 해당하지 않는' 사실적시까지 처벌하는 것은 헌법에 반한다는 '일부위헌' 의견을 냈다. 제307조 제1항의 존재 의의는 인정하면서도,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최소한'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국가·공직자에 대한 감시와 비판의 측면에서 표현의 자유가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데, 그 대상인 국가·공직자가 표현행위에 대한 형사처벌을 하는 주체가 되면 국민의 감시와 비판도 위축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현재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친고죄가 아닌 반의사불벌죄여서 피해 당사자가 아니라 제3자가 공적인물·공적사안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봉쇄할 목적으로 고발을 하는 '전략적 봉쇄소송'의 양상을 띠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