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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거나...나는 아무거나 괜찮아. 오늘도 계장님 메뉴는 아무거나. 차석님? 응 나도. 삼석님? 응 나도. 막내야 너는? 주사님이 먹고 싶은 걸로 먹어요. 김치찌개? 그 집은 지난 주에 갔잖아. 순댓국? 그 집은 순대 냄새가 너무 심해서. 구내식당? 구내식당 밥은 이상하게 금방 꺼지더라. 그럼 어디로? 아무거나 네가 골라봐. 하아...오늘은 정말 각자 먹고 싶구나"
지난 24일 강원도청 직원들이 사용하는 인트라넷 익명 게시판에 '오늘 진짜 내 맘대로 아무거나 먹습니까'라는 제목으로 게시된 글의 반응이 뜨겁다. 30일 오전 현재 1600여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강원도 공무원 정원표에 따르면 본청 직원이 1683명으로, 대부분 이 글을 읽은 셈이다.
해당 글은 강원도청 부서, 팀별 점심 식사에 대한 반발로 풀이되고 있다. 도청 직원들에 따르면 부서, 팀별로 일정 금액을 모아 점심 식사를 함께 하는 것은 부서 화합 등을 명분으로 도청 내에서 오래 전부터 이어져 오고 있는 관행이다.
하지만 '자율'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와 이에 공감하는 젊은 세대들의 공직 진출이 이어지면서 관행의 불편과 개선이 공론화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3월 24일 강원도청 인트라넷에 게시된 한 도청 직원의 글. 독자 제공
댓글 역시 "점심 메뉴 선정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조직계가 앞장 서서 업무분장에 넣어 달라" "산해 진미가 먹고 싶거든 집에 가서 먹고 막내들 힘들게 하지 말라" "구내식당 직행법을 만들어달라" 는 등의 하소연이 이어졌다.
30일 도청에서 만난 한 하급 직원은 "게시글에 100% 동의한다. 가끔 식사 메뉴 취합하려고 공무원을 했나하는 자괴감이 들 때도 있다. 계장(5급 사무관)님이 매운 음식을 좋아하시는데 개인적으로 매운 음식을 먹으면 탈이 나는 사람도 있지만 유별나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어쩔 수 없이 따라가야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8급 직원은 "점심식사 시간이라는게 업무에서 벗어나 사적 만남도 가질 수 있고 자기개발도 할 수 있는 시간인데 함께하지 않으면 튀는 사람 취급을 하는 문화가 남아있다"고 전했다.
강원도청 전경. 박정민 기자
앞서 강원도청 인트라넷에는 부서별로 실국장 점심 식사를 '모시는' 조직 문화와 회식자리에서 술, 건배사 강요에 대한 비판 글도 게시돼 내부에서 대안이 모색되기도 했다.
반면 상급자들 사이에서는 최근 이어지는 내부 비판들이 일부 부서의 문제라는 부분을 강조하는 한편 관행의 단점만 부각되는 것이 다소 아쉽다는 반응도 있다.
한 국장급 공무원은 "이미 조직내에서 과거 관행이 많이 사라지고 새로운 조직 문화가 자리잡아가고 있다. 개별 식사도 늘고 있다. 일부 부서의 문제를 일반화하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공무원 업무가 유기적인 협조와 협력이 필요한 부분이 많다. 단체 점심 식사나 회식 등의 단점도 있지만 어려운 점을 서로 얘기하고 해결책을 찾는 기회이기도 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