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부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의견수렴을 위한 토론회. 연합뉴스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입법예고 기간의 마지막 날인 23일까지도 노동계와 시민사회, 경영계 모두로부터 날 선 비판과 함께 제도 개선을 위한 다양한 제안이 쏟아졌다.
노사 모두 정부가 내놓은 시행령에 지나치게 모호한 문구로 논란을 비껴간 지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노동계는 경영책임자의 책임을 강화하고 법에 따른 처벌·보호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경영계는 법 적용 범위를 좁히고 기업·경영자의 보호장치를 마련하는 한편 기업 규모에 따라 법 시행의 유예기간을 달라고 요구했다.
勞 "최고 경영책임자에 제대로 책임 물어야…직업성질병 등 적용 범위 확대하라"
참여연대 유튜브 캡처이날 오전 민주노총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는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경영책임자에게 면죄부가 아닌 책임을 부여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정부의 시행령 안으로는 끊이지 않는 노동자의 죽음을 막을 수 없다"며 "복잡해진 환경에서 안전보건 관리자와 하청업체 담당자 일부가 떠맡았던 극히 일부의 책임을 기업 시스템의 최종 책임자인 최고 경영자에게 제대로 물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시행령에 하청, 특수고용노동자 적용 사항을 별도 규정하지 않고 전체 종사자, 사업장을 대상으로 적용할 것 △2인1조 작업, 과로사 예방을 위한 적정인력과 예산 확보 의무를 명시할 것 △직업성질병을 근로기준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명시된 전체 목록에 전면 적용할 것 △안전보건 관리를 외주화하는 '법령 점검 민간위탁' 조항을 삭제해 외부 참여를 보장할 것 △근로기준법 등을 안전보건관계 법령에 명시해 과로사, 일터 괴롭힘 등을 배제하지 않을 것 등을 요구했다.
또 중대시민재해에 관해서도 △공중이용시설 범위 확대 △시설이용자의 의견 개진 등 보장 △사고 대비 물질 적용 범위 확대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노총도 이날 오후 법무부에 의견서를 제출하고 "제정된 법의 원래 입법 취지에 따라서 종사자와 이용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직업성질병을 포괄적으로 인정하고 법인과 경영책임자의 의무를 확실히 규정하는 시행령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노총의 경우 직업성질병의 범위에 대해 근골격계 질환 중 재해 발생에 따른 사고성 요통이나, 노동시간·강도에 따라 뇌·심혈관계 질환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전보건 확보의무 관계 법령에 대해서는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예산 등을 결정할 때 종사자의 생산성 기준에 따라 구체화해 작업지휘자, 유도자, 2인 1조 작업 등의 인력 배치를 구체적으로 보장하고, 위험성평가, 작업환경측정, 건강검진 등을 바탕으로 시설 개선비용·종사자 건강유지비용 등을 포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만약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한 경우 법인·기관의 경영책임자이 받아야 하는 교육 수준의 경우 기존 수준을 넘어 중대산업재해 발생 원인과 예방대책, 향후 안전보건계획 등을 종합 검토하도록 하고, 중대산업재해가 2회 이상 발생했다면 가중교육할 수 있는 방안도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중대재해 사실을 공표할 경우에는 형이 확정된 후에야 공표하는 대신 1심에서 경영책임자의 의무 위반이 확인되는 즉시 공표하도록 요구하면서 중대산업재해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함께 제시했다.
使 "경영책임자 의무 불분명…기업 규모별로 유예기간 두자"
경총 제공한편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등 36개 경제단체 및 업종별 협회도 이날 경제계 공동 건의서를 제출했다.
경총 등은 정부의 시행령 제정안에 대해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 모두 경영책임자 의무 내용이 포괄적이고 불분명해 의무주체인 기업이 명확한 기준을 파악하기 어렵다"며 "이대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될 경우 많은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선 경총 등은 수일 안에 회복할 수 있는 경미한 질병도 중대산업재해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에 시행령에 직업성 질병자에 대한 중증도 기준을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충실하게, 적정한 등 불명확하고 모호한 문언에 대해 형사처벌 구성요건으로 부적절하고, 전문인력 배치에 관한 규정은 기존 산업안전보건법 등과 상충되지 않도록 수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전·보건 관계법령'에 근로기준법 등을 포함해야 한다는 노동계와 달리 경영계는 '산업안전보건법'만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형이 확정되기 전에 중대재해 사실을 공표하자는 한국노총의 주장과 달리 경영계는 유죄가 확정되기 전에는 안전보건교육 수강을 강제하는 것도 과도하다면서, 교육비 부담규정을 삭제하고 교육시간을 6시간 이내로 줄이는 등 제도를 축소하자는 입장을 밝혔다.
주유소와 충전소 사업장의 경우 세차장, 차량정비소처럼 별도 사업자가 운영하는 부대시설이나 주차장 같은 유휴부지도 있기 때문에 공중이용시설 적용대상 기준(사업장 면적 2천㎡ 이상)을 완화해달라고 요구했다.
특히 중대재해처벌법이 내년 1월 27일 시행 예정인 데 대해 50~299인 기업에는 1년, 300인 이상 기업에는 6개월 이상의 기업 규모별 유예기간을 두는 특례규정을 마련해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준비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 외에도 법률상 모호한 경영책임자 개념과 의무 내용을 구체화하고, 종사자 과실이 명확한 중대산업재해에는 책임을 면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새로 만들어 달라고 주장했다.
또 인력과 자금 상황이 열악한 중소 규모 사업장에 대해서는 "정부의 구체적 지원 규정도 시행령에 담을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