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이준석 당 대표가 24일 국회에서 열린 비공개 최고위원회의 결과를 브리핑후 자리를 떠나고 있다.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전날 국민권익위원회가 발표한 국민의힘 국회의원 12명 부동산 거래 법령위반 의혹 관련 명단 공개 및 처분 수위 등을 논의했다. 윤창원 기자
국민의힘이 국민권익위원회의 부동산 불법거래 의혹 명단에 오른 당내 의원들에 대한 징계 작업에 착수한 가운데 읍참마속에 나설지 주목된다. 대선을 앞두고 뜨거운 감자인 '
부동산' 의혹에 미온적으로 대처할 경우 여론의 질타가 예상되고, 강경 조치를 고수하면 자칫 내분 양상으로 번질 수 있어 고심 중인 분위기다.
부동산 의혹, 탈당권유 및 제명 6명‧소명통과 6명 신속 대처
국민의힘 지도부는 24일 오전부터 오후까지 마라톤 회의 끝에
권익위의 명단에 오른 의원 12명 중 이철규·강기윤·이주환·정찬민·최춘식 의원 등 5명에 대해 자진 탈당을 요청했다. 비
례대표 한무경 의원에 대해선 제명 결정을 내렸고, 송석준·안병길·윤희숙·김승수·박대수·배준영 의원 등 6명은 의혹 관련 해명을 받은 후 큰 문제가 없다고 판단해 추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국민의힘이 권익위의 발표 다음날 신속한 대처에 나선 것은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부동산 문제가 최대 현안으로 급부상한 점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아파트 값이 급등하면서 부동산이 문재인 정권의 최대 실정(失政)으로 꼽히는 가운데 당내 의원들의 부동산 의혹 관련 조치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높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6월 더불어민주당도 권익위에서 자당 소속 12명 의원의 조사 결과를 받고 당사자 전원에게 탈당을 권유했다. 비례대표인 양이원영·윤미향 의원은 의총을 거쳐 제명돼 출당됐고, 지역구 의원 5명은 탈당계를 제출했지만 나머지 5명은 탈당을 거부했다. 민주당이 전체 10명 의원의 거취를 일괄 처리하겠다고 밝히면서 이들 10명은 민주당 소속으로 남아있다.
국민의힘은 의혹 명단에 오른 12명 중 6명에 대해선 소명을 인정했고, 나머지 6명에게는 탈당 요청 및 제명 조치를 취하며 적절히 균형을 맞추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의혹 당사자들에 대한 구체적인 사안이 드러날 경우 결국 강경 조치 등 선택의 기로에 몰릴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앞서 이준석 대표도 지난 6월 전당대회 직후 수락 연설에서 부동산 의혹 관련 조치에 대해 "
적어도 민주당이 세운 기준보다 더 엄격하고 국민 눈높이에 맞는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어 징계 수위에 대한 정치권의 압박이 예상된다. 강경조치에 일부 당사자들 반발…
문제는
강경 조치에 나설 경우 부동산 문제 관련 여론의 질타를 피할 순 있지만, 자칫 당내 분열 양상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날 징계 대상에 오른 의원들은 강력 반발했다.
지난 2004부터 2006년까지 강원도 평창에서 11만㎡ 규모 농지를 취득한 후 경작하지 않아 '농지법 위반' 등으로 제명 대상에 오른 한무경 의원은 입장문에서 "권익위가 직접 방문해 경작 여부와 농지 형상 등을 조사했어야 하는데 전혀 그런 과정이 없었다"고 했다
. '부동산 편법증여' 의혹으로 탈당 권유 대상에 오른 이철규 의원도 페이스북에서 "출가한 딸이 올해 초 매입한 아파트와 관련해 권익위로 부터 어떤 추가 소명 요구도 받은 바가 없다"며 "저는 딸에게 증여한 사실이 없고, 객관적 증빙자료는 당에 제출했다"고 말했다.
이준석 대표는 이번 사안과 관련해 읍참마속의 조치를 취했다며 민주당을 향한 반격에 나섰다. 그는 페이스북에서 "
저희는 당사자의 동의를 얻은 권익위 통보결과는 원문 그대로 국민에게 공개했다"며 "권익위가 민주당에게 적용했던 잣대와 국민의힘에 적용했던 잣대가 공정했는지 국민들은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권익위의 통보내용을 해당 의원들의 동의를 통해 공개해달라"고 촉구했다.
실질적 징계로 이어질지는 불투명…본인 소명만 듣고 '무사통과'도 논란
국민의힘은 부동산 거래 과정에서 관련 법령 위반 의혹이 제기된 소속 의원 12명 중 강기윤(윗줄 왼쪽부터)·이주환·이철규·정찬민·최춘식 의원에 대해서는 탈당을 요구했다. 비례대표인 한무경 의원은 제명하기로 했다. 안병길(아랫줄 왼쪽부터)·윤희숙·송석준·김승수·박대수·배준영 의원은 본인의 문제가 아니거나 소명이 충분하다고 판단해 문제 삼지 않았다. 연합뉴스국민의힘 지도부가
부동산 의혹 관련 징계 윤곽을 제시했지만 실질적인 조치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의혹 당사자 5명에 대한 탈당 요청은 당헌·당규에서 명시한 '탈당권유'와는 성격이 다르다. 당헌‧당규상 징계 중 하나인 '탈당권유'는 탈당을 권유한 이후 10일 후 자동으로 제명되지만, 이날 지도부가 정한 '탈당 요청'은 말 그대로 선언적 효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대표 취임 이후 당 윤리위원회가 구성되지 않은 상태라 당헌·당규상 징계가 불가능해 최고위 차원에서 잠정적으로 결정한 것이다.
이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윤리위 구성은 지난주부터 이야기했는데 참 오묘한 시점에 오묘한 해석을 낳을 수 있기에 이제는 최고위와 논의할 것"이라며 '탈당요구'가 당헌·당규상 징계의 유형이냐는 질문엔 답을 하지 않았다. 만일 탈당을 요청받은 5명 의원들이 탈당을 거부하고 버틸 경우엔 민주당과 흡사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셈이다.
또 송석준·안병길·윤희숙·김승수·박대수·배준영 의원에 대해서는 추가 조사없이 본인의 소명만 듣고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한 것도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 일부라도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당 지도부 책임론이 불거질 수 있다.
윤석열 캠프 소속 의원들은 자진사퇴 "세력 급하게 키우다 부작용"
권익위 발표를 앞두고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 측은 의혹에 연루된 캠프 소속 의원들이 줄줄이 자진 사퇴를 택하면서 안도하는 분위기다. 지난달 말 입당 후 대선캠프에 현역 의원들을 대거 영입하며
세(勢) 불리기에 나선 만큼 이번 권익위 명단에도 상당수 의의원들이 포함됐다. 윤 전 총장 캠프는 제명 대상에 오른
한무경 의원(산업정책본부장)과 탈당 권유 대상인 정찬민 의원(국민소통위원장)이 자진사퇴 의사를 밝혀 이를 수용했다고 밝혔다.
캠프 기획본부장 겸 부동산정책본부장인 송석준 의원은 소명 처리가 됐고, 홍보본부장인 안병길 의원은 소명 처리에도 불구하고 자진사퇴를 택했다. 다만
조직본부장인 이철규 의원은 당에 추가 해명 기회를 요청한 점을 고려해 소명 절차 후 판단하기로 했다.
윤 전 총장 캠프 핵심 관계자는 이날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윤 전 총장이 '조국 수사'를 주도하며 쌓은 '공정 이미지'가 무너질 수 있어서 의혹 당사자들은 일단 끊고 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당내 친윤계 재선의원도 통화에서 "
세력을 급하게 키우다보면 이런 부작용도 나오기 마련"이라며 "지금은 공격의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잠시 2선 후퇴시킨 후에 나중에 다시 캠프에 합류시키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