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밤 '휴온스 PBA-LPBA 챔피언십' 결승에서 에디 레펜스의 우승이 결정되자 조재호가 엄지를 치켜세우며 미소로 축하를 보내고 있다. 고양=PBA마지막 회심의 샷까지 아깝게 빗나가자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한 챔피언을 향해 환한 웃음을 짓고 엄지를 치켜세우며 패자의 품격을 지켰다.
'슈퍼맨' 조재호(41·NH농협카드)가 아쉽게 프로당구(PBA) 투어 첫 우승컵을 놓쳤다. 상대가 너무 잘했고, 간절했다. 그런 우승자에게 조재호는 진심어린 축하를 보냈다.
조재호는 23일 밤 경기도 고양시 소노캄고양에서 열린 '휴온스 PBA-LPBA 챔피언십' 결승에서 에디 레펜스(벨기에·SK렌터카)에 1 대 4 패배를 안았다. 둘 모두 처음 오른 결승에서 희비가 갈렸다.
레펜스는 우승 상금 1억 원과 함께 랭킹 포인트 10만 점을 얻었다. 조재호는 준우승 상금 3400만 원과 랭킹 포인트 5만 점을 받았다.
결승까지 조재호의 기세는 거침이 없었다. 128강 본선 1차전에서 강동구를 상대로 이닝 평균 3.214, 이번 대회 최고 기록을 세웠다. 별명인 슈퍼맨처럼 시원하면서도 무시무시한 공격력을 뽐냈다. (조재호는 이 경기로 웰컴저축은행 웰뱅톱랭킹 톱 애버리지에 따른 상금 400만 원을 덤으로 얻었다.)
최대 고비였던 4강전에서는 지난 시즌 왕중왕전 챔피언 다비드 사파타(스페인·블루원리조트)마저 4 대 2로 눌렀다. 올 시즌 개막전인 '블루원리조트 챔피언십' 8강전 패배를 설욕했다. 지난 시즌 중 프로로 전향한 뒤 6개 대회 만에 처음 결승에 올라 첫 우승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하지만 슈퍼맨의 기세는 데뷔 40년 만의 첫 우승을 노리는 레펜스의 염원에 막혔다. 벨기에 무대를 평정했지만 국제 대회 우승이 없던 레펜스는 이날 신들린 샷을 뽐냈다. 1세트 조재호가 먼저 연속 9점을 쓸어담았지만 레펜스는 무려 연속 11점으로 맞불을 놓으며 기선을 제압했다.
조재호도 2세트를 따냈지만 레펜스는 3세트 8점, 4세트 6점의 하이런으로 리드를 잡았다. 그러더니 5세트에서는 1세트처럼 11점을 폭풍처럼 몰아치며 승리를 확정지었다. 크립토나이트에 무기력한 슈퍼맨처럼 조재호는 레펜스의 우승을 향한 열망에 짓눌린 듯 특유의 호쾌한 샷이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힘이 부족해 아쉽게 득점하지 못하는 실수를 범하며 경기를 내줬다.
하지만 조재호는 의기소침하지 않았다. 5세트 5이닝째 마지막 샷까지 무산되자 마음을 비운 듯 웃었다. 레펜스가 15점째를 올리며 경기를 끝내자 조재호는 엄지를 치켜세우며 축하의 미소를 보냈고 함께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휴온스 PBA-LPBA 챔피언십' 결승 뒤 레펜스와 함께 우승컵을 들어올린 조재호. 고양=PBA경기 후 조재호는 기자회견장에 들어서며 "왜 죄를 지은 것 같지?"라는 농담으로 취재진을 맞았다. 조재호는 "전날 우승하는 꿈을 꿨는데 결승까지 와서 실현되려나 열심히 했는데 개꿈인가 싶다"며 웃었다.
웃었지만 아쉬움이 없을 수 없다. 조재호는 국내 아마추어 최강으로 꼽히며 기대감 속에 PBA 무대로 왔다. 드디어 첫 우승의 기회였지만 순간의 실수가 있었다. 조재호는 "1세트 9점을 치고 10점째 살짝 큐 미스로 두께가 얇아졌다"면서 "조금만 더 집중했다면 쉬운 공일수록 더 두드려 보고 했어야 했는데 첫 세트를 뺏긴 거 자체가, 내 걸로 가져올 수 있었는데 잘못됐다"고 입맛을 다셨다.
여기에 NH농협카드의 주장의 무게도 있었다. 이날 결승에서 조재호는 같은 팀 후배들의 응원을 받았다. 조재호는 "팀원들 다 와서 응원하는 게 보기 좋다"면서도 "그러나 잘 맞고 있으면 우리 팀 응원이 들리고 안 맞으면 상대 응원 거슬리는데 이를 극복하지 못한 제 잘못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다. 조재호는 "우승을 못 해서 그런다고 할 수 있지만 4강, 결승도 처음 와서 기분이 좋다"면서 "첫 입상인데 첫 술에 배부를 수 없고 더 정진하라는 것으로 생각하겠다"고 다음 대회인 '크라운해태 챔피언십'을 다짐했다.
특히 레펜스의 우승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조재호는 "레펜스는 우승할 만한 느낌이 있었다"면서 "내가 실수했을 때 레펜스는 한 큐의 소중함을 보여 챔피언에 올랐다고 생각한다"고 인정했다.
적이 아닌 함께 하는 동료라는 것이다. 조재호는 "10년 이상 같이 뛰었던 선수로 미국 대회 결승전에서 내가 이겼을 때도 레펜스가 당연히 축하해줬다"면서 "상대이긴 하지만 적이 아닌 친구 같은 사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나도 나중에 우승했을 때 내가 보인 것처럼 상대 선수로부터 (축하의) 미소를 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비록 경기에서는 졌지만 슈퍼맨의 미소를 잃지 않는 조재호. 그가 한 것처럼 상대 선수의 축하 속에 우승컵을 들어올릴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