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경기 평택사업장 전경. 삼성전자 제공▶ 2022산업전망 |
①천문학적 시설투자·연구개발로 TSMC 추격 (계속) |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까지 반도체 부문에서만 약 68조원의 매출을 올리며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 수출 기록 경신에 앞장섰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글로벌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삼성전자는 파운드리를 포함한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도 세계 정상에 도전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3나노' 이하 초미세 공정에서 확보한 기술 리더십을 토대로 2022년에는 TSMC 추격에 속도를 내겠다는 각오다.
3분기 누적 반도체 시설투자 30조원…연구개발비도 역대 최대 규모
27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까지 반도체 시설투자에 30조원을 집행했다. 역대 가장 많은 32조9천억원을 투자한 작년 기록을 한 해 만에 갈아치울 기세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호황기를 맞은 2017년 27조3천억원을 투자하는 등 반도체 분야 경쟁력 유지를 위해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아붓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는 "삼성전자의 2017~2020년 반도체 시설투자 규모는 총 932억달러(약 105조3천억원)로,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같은 기간 투자한 447억달러(약 50조5천억원)의 2배 이상"이라며 "반도체 업계에서 전례 없는 수준"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내년 상반기에는 약 20조원(170억달러)이 들어가는 미국 내 두 번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착공한다. 하반기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공장인 평택 P3 라인이 완공된다. 공장 길이는 700m, 클린룸의 규모는 축구장 면적의 25개 크기로 전체 투자비는 5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된다.
아울러 삼성전자가 올해 3분기까지 지출한 연구개발(R&D)비도 16조1857억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886억원 늘어난 수치다.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율도 2017년 7.0%에서 2018년 7.7%, 2019년 8.8%, 지난해 9.0%로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매출의 75%가량을 점유하는 메모리 분야의 '초격차'를 유지하기 위해 D램과 낸드 모두 지속 가능한 절대 기술력 확보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연구개발에 몰두하는 한편, 반도체 전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초미세 공정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최근에는 조직개편을 통해 반도체연구소에 차세대공정개발팀을 신설했다.
삼성전자, 내년 상반기 세계 최초 3나노 1세대 양산 계획
반도체 트랜지스터 구조의 차이를 보여주는 그래픽. 삼성전자 제공삼성전자는 특히 파운드리 부문에서 TSMC를 따라잡기 위해 내년 3나노(㎚·10억분의 1미터) 공정부터 차세대 'GAA(Gate-All-Around) FET' 공정으로 기술 격차를 좁힌다는 계획이다. 이는 기존 핀펫(FinFET)보다 효율성 등에서 진화한 공정으로, TSMC는 3나노에 GAA를 적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칩의 기본 요소인 트랜지스터는 '0'과 '1'의 이진법으로 이뤄진 디지털 정보를 전기신호로 만드는 반도체 소자다. 트랜지스터는 기본적으로 △금속 전극 △산화물 절연막 △반도체 채널로 구성된다. 게이트가 '스위치' 역할을 하며 채널에 전류를 흘리고 끊는 식으로 신호를 제어하는 것이다.
14나노 공정부터 적용된 핀펫은 게이트와 요철 형태로 세운 실리콘 채널이 3면에서 맞물리는 구조다. 얇고 길게 세워진 채널이 물고기 지느러미를 닮아 '핀(Fin)' 트랜지스터라고 부른다. 삼성전자는 다만 몇 세대 공정의 전이 과정을 거친 뒤 핀 트랜지스터 역시 한계에 도달했다고 판단, 동작 전압을 더 낮출 수 있는 신기술 개발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게이트가 채널을 전방위로 감싸는 GAA 구조의 트랜지스터를 고안해 'MBC(Multi Bridge Channel) FET' 공정을 독자적으로 구축했다. 이 공정은 기존 7나노 핀펫 공정과 비교했을 때 소비전력이 약 50% 절감되고, 성능은 30% 정도 개선되며, 공간도 약 45%나 줄일 수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10월 온라인으로 개최된 '삼성 파운드리 포럼 2021' 행사에서 내년 상반기에 GAA 기술을 적용한 3나노 1세대, 2023년에 3나노 2세대 양산을 시작한다고 공개했다. 7나노와 5나노 양산에서 번번이 TSMC에 밀린 삼성전자가 마침내 3나노에서는 세계 최초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삼성전자는 2025년에는 GAA 기반 2나노 공정 양산 계획을 밝히며 차세대 트랜지스터 기술 선점에 대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GAA 기술인 MBCFET 구조를 적용한 3나노 공정은 핀펫 기반 5나노 공정 대비 성능은 30% 향상되며 전력소모는 50%, 면적은 35% 감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GAA 기술이 TSMC와의 기술격차를 단숨에 따라잡는 승부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TSMC가 내년 중에 선보일 3나노는 기존 핀펫 공정으로 생산된다. 같은 3나노 제품이라도 삼성전자가 GAA 기술을 적용한 제품보다 성능이 떨어질 공산이 크다.
TSMC 비집고 파운드리 고객사 늘려…차량용 반도체도 본격 도전
이 포럼에는 역대 행사 중 가장 많은 500개 사가 참가하고 2천명 이상의 팹리스 고객과 파트너들이 사전 등록하는 등 높은 관심을 끌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9년에 이미 3나노 GAA 초기 버전의 '공정설계키트(PDK)'를 설계회사(팹리스)에 배포했다. 자사 파운드리 공정에 맞는 제품을 미리 설계해 출시를 앞당길 수 있도록 해 미래의 고객사로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최시영 사장. 삼성전자 제공최시영 파운드리사업부 사장은 포럼에서 "대규모 투자를 통해 생산 역량을 확대하고 GAA 등 첨단 미세공정 뿐만 아니라 기존 공정에서도 차별화된 기술 혁신을 이어갈 것"이라며 "코로나19로 인해 급격한 디지털 전환이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고객들의 다양한 아이디어가 칩으로 구현될 수 있도록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최근 스위스 반도체기업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의 주문을 받아 스마트폰의 핵심 부품인 마이크로컨트롤러(MCU)를 생산하기로 하는 등 고객사를 늘려가고 있다. 오랜 협력 관계인 미국의 IBM도 차세대 서버용 반도체를 삼성전자의 5나노 파운드리로 생산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더구나 인텔의 맞수인 미국의 AMD는 크롬북용 중앙처리장치(CPU)의 위탁 생산을 삼성전자 파운드리에 맡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퀄컴과 엔비디아에 이어 우량 고객사를 확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평가된다. TSMC가 매출의 20%를 차지하는 애플에 집중하느라 불만이 생긴 틈을 노려 삼성전자는 고객사를 하나둘 늘려가고 있다.
삼성전자는 아울러 지난 16일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자율주행 시스템에 적용되는 차량용 메모리 솔루션 5종을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에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지난달에는 업계 최초로 5G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차량용 통신칩 등 시스템반도체 3종을 선보이는 등 전기차·자율주행차 확대로 고성장이 예상되는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2023년까지 시스템반도체 1위 도전…내년부터 실적 개선
삼성전자는 지난 2019년 4월 오는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입해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도 1위를 차지하겠다는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했다. 올해 5월에는 투자 금액을 더 늘려 총 171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2004년 파운드리 사업을 시작한 후발 주자로서 업계 2위에 만족하지 않고 정상에 오르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는 차세대 공정 개발은 물론, 생산라인의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공격적인 투자로 라인이 생기면 파운드리 생산 능력이 확대되고, 동시에 주요 거래처를 지속적으로 늘려 나간다면 시스템 반도체 1위 달성 목표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TSMC 자료사진. 연합뉴스지난 3분기까지 글로벌 파운드리 1위 TSMC와의 격차는 여전히 30%포인트(p)가 넘는다. 다만 전 세계 파운드리 매출은 2019년 3분기부터 9분기 연속 최대 규모를 경신하고 있고, 삼성전자도 매 분기 10%가 넘는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2023년까지 파운드리 물량을 수주한 것으로 알려지는 등 내년부터는 뚜렷한 실적 개선 추세를 보일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이 나온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내년 파운드리 매출은 주요 고객사인 퀄컴, 엔비디아, IBM 등의 주문 증가로 전년 대비 25% 넘게 증가해 수요가 공급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며 "비메모리 부문 매출은 27.2조원, 영업이익은 3.6조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