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가 5일 간의 칩거를 끝내고 17일 선거운동 복귀를 선언했다.
당 대표와 원내대표를 두루 지낸 소속 정당의 간판 정치인이자 진보진영에서 상당한 영향력과 인지도를 지닌 인물인 만큼, 일정 중단을 결심하기까지 적지 않은 고심의 시간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6석의 국회 의석을 가진 유일한 진보정당의 대선후보로서 지지율이 국가혁명당 허경영 후보에게 뒤지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2%대라는 충격적인 지지율은 정의당과 심 후보 모두의 책임이다.
정치권에서는 총선은 정권·정당에 대한 심판이, 대선은 미래가치 평가가 주요하게 작용하는 선거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각 정당이 대선을 앞두고 선거대책위원회 구성에 공을 들이는 것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누가 선거를 지휘하느냐, 어떤 인물이 어떤 정당을 선택했느냐가 그 정당의 변화의 방향과 정도를 가늠하는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인지도 측면에서 심 후보가 압도적으로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이정미 전 당대표와의 정의당 대선 경선 결선투표에서 51.12%로 겨우 이긴 것은 이러한 변화에 대한 욕구가 당내에도 상당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심 후보가 이를 감지했다면 대선 후보로서의 첫 행보는 변화와 파격이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기본시리즈' 등 자신의 프랜차이즈 정책이 있고,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문재인 정부 심판'이라는 의제를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반면 유일한 원내 진보정당임에도 심 후보는 '심상정'하면 떠오르는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린노믹스'를 주창했지만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진보정당이 오랜 기간 강조해왔던 친환경 경제 정책의 집대성일 뿐 심 후보만의 '한 방'은 보이지 않았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가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대국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주 4일제 근무', '심상정케어', '다당제 책임연정' 등도 새로울 것이 없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인물면에서 충격파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면 당을 중심으로 한 조직력의 변화를 꾀했어야 했지만 이마저도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당대표 단식과 원내 '4+1' 정당이 모여 힘겹게 연동형비례대표제를 이끌어냈음에도 21대 총선에서 20대 국회와 똑같은 겨우 6석을 얻는데 그쳤다면 말 그대로 비상한 각오로 대선에 임해 의석보다 더 큰 존재감을 드러내는데 집중해야 했지만 파괴력은 없었다.
자리의 높낮이, 원하는 보직 등을 놓고 당내 세력간 균형만 따지다보니 6석 정당에 걸맞지 않은 '매머드급' 선대위가 꾸려졌기 때문이다.
후보 지지율은 시작부터 계속해서 4%대 안팎에서 변하지 않고 있는 사이, 어떤 인사는 더 높은 자리를 요구하고, 어떤 인사들은 과거의 앙금을 이유로 적극적으로 선대위 업무에 임하지 않으면서 조직력을 해쳤다.
민주당과 국민의힘도 한 차례씩 겪었듯 선대위 상황이 혼잡하면 빠른 정리와 수습이 필요하지만 이마저도 적기를 놓쳤다.
심 후보는 바쁜 일정을 사유로, 당 지도부는 대선후보가 있다는 이유로 굳은 일을 미뤘기 때문이다.
지지율이 나오지 않으니 심 후보 측은 "후보 혼자만 뛴다"는, 당 측은 "후보가 당은 신경쓰지 않는다"는 서로를 원망하는 표현들을 쏟아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의당의 장점이던 '언론 활용'마저 후보 측근 인사들의 노력 부족으로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지지율 정체 심화를 부추기는 꼴이 됐다.
윤창원 기자당원들의 지나친 적극성도 지지율 하락에 한 몫을 했다.
심 후보 '원 톱' 체제로 좀처럼 지지율 견인효과가 나타나지 않자 선대위 내에서는 당내에서는 나름 인지도를 지닌 류호정, 장혜영 의원을 선대위의 얼굴로 내세워 분위기 전환을 꾀해보자는 의견이 여러 차례 제기됐다.
그러자 이에 불만을 품은 정의당의 각 지역조직 당원들은 메신저와 SNS 등을 통해 "당대표는 무엇을 하느냐"며 지도부를 강하게 비난했고, 결국 이런 변화는 시도도 못한 채 무산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거운동 일정 중단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지만, 심 후보가 내놓은 해결방안에서도 변화를 위한 결단은 눈에 띄지 않는다.
우선 선거에서 분위기 전환에 효과가 크고, 눈에도 잘 띄는 인적 쇄신에 대한 노력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외부 인사영입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그런 퍼포먼스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폄훼하며 후보 스스로가 가능성을 원천봉쇄했다.
오히려 조국 사태 당시 그 문제를 제대로 비판하지 못했던 것이 이번 대선에서의 지지율 부진의 원인이었다며, 2년이 넘게 지난 사건을 다시 반성해 철지난 사건에 집착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여기에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저와 정의당, 국민의 재신임을 구하겠다"며 마치 성적이 매우 나쁠 경우 자신의 정계은퇴는 물론 당 해체까지 고려하는 듯한 발언을 하면서도, 차기 총선 출마여부와 같은 개인 거취 질문에는 "미래에 대한 약속을 드릴 계획은 없다"며 답을 피한 것도 '무언가를 내려놓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을 사고 있다.
"거대 양당의 횡포 때문이라고만 말하지 않겠다", "당이 작아서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 않겠다", "상황이 어렵다고 남 탓을 하지 않겠다"고 거듭 같은 내용을 반복한 것도 이런 부분들을 극복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가진 첫 행보도 변화에 대한 새로운 구상을 밝히는 행위가 아닌, 선거철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지하철역 인사였다.
정당이 대선과 총선에 후보를 낸다는 것은 정권을 거머쥐겠다는, 입법권력을 통해 당이 추구하는 정치적 가치를 입법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자, 그 가치를 대중화·보편화해 공감을 이끌어내겠다는 행위이다.
윤창원 기자10년 동안 원내 진보정당의 자리를 지켜온 정의당의 대선 후보가 허경영 후보에게마저 지지율에서 뒤진다는 것은 그동안 추구해왔던 '가치' 자체가 국민들에게 외면을 받고 있거나, 아니면 후보와 당의 '퍼포먼스'가 허 후보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의미다.
심 후보는 "진보의 성역처럼 금기시돼 있는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공론화를 시작하겠다. 금기를 금기시해서 낡은 진보의 과감한 혁신을 열어갈 것이다. 생각이 다르고 입장이 다른 사람들과도 만나겠다"고 밝혔다.
변화를 추구해야만 하는 심 후보와 정의당에 있어 당연히 필요한 일이지만, 당내 저항을 극복하는 일도, 또 해체된 선대위를 재정비해 이를 함께 추진할 추동력을 끌어올리는 일도 모두 만만치 않은 숙제다.
"재신임"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한 심 후보의 결연한 의지가 심 후보 개인과 정의당의 수권 능력을 보여주는 단초가 될지 지켜볼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