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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 살인' 부른 청년 돌봄부담…정부, 실태조사·특별법 추진

보건/의료

    '간병 살인' 부른 청년 돌봄부담…정부, 실태조사·특별법 추진

    14일 총리주재 회의서 '영 케어러' 지원책 수립방안 발표
    중고생, 학교밖 청소년, 대학생 등 만34세 이하 청년 대상
    막대한 병원비·정신적 고립감 등으로 '빈곤의 악순환' 초래
    "발굴사례, 기존제도와 연계지원…특별법 제정 등 근거 마련"
    세부내용은 범부처TF 구성해 논의…서울 서대문구, 시범사업

    중병을 앓는 부모를 홀로 간병하다 치료비 부담 등을 이기지 못하고 방치해 사망케 한 이른바 '간병 살인'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가운데 정부가 다음달부터 본격적 실태 조사에 나선다. 자립 이전부터 돌봄 부담에 노출된 청소년·청년들에 대한 국가의 지원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특히 그간 지자체에서 발굴된 사례가 한 건도 없었던 점에 착안해 이번에 포착되는 대상자들을 기존 제도와 연계하는 한편 지원근거가 되는 특별법 제정도 마련할 예정이다.

    '간병살인'으로 부각된 정부 책임…지원제도도 모르는 청년이 '8할'

    보건복지부(복지부)는 14일 김부겸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제6차 청년정책조정위원회에서 이같은 내용이 담긴 '가족 돌봄 청년 지원대책 수립방안'을 발표했다. 가족 돌봄 청년이란 '영 케어러'(Young Carer)를 순 우리말로 바꾼 개념으로 장애나 정신·신체적 질병, 약물 등의 문제를 가진 가족을 돌보는 청(소)년을 일컫는다.
     
    영국이나 호주, 일본 등 해외에서는 주로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에 이르는 청(소)년 돌봄자를 영 케어러로 부르고 있다.
     
    국내에서는 앞서 지난해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혼자 간병하다가 굶겨 죽음에 이르게 한 강도영(가명)씨의 사연이 언론 보도로 알려지면서, 사회 문제로 부각됐다. 20대 초반의 나이인 강씨는 긴 시간 '독박 간병'을 감당하며 쌀을 살 돈도 없을 정도로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린 것으로 파악됐다.
     
    1심 재판부는 작년 8월 강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고, 2심 재판부 역시 강씨의 항소를 기각하며 원심과 같은 형량을 선고했다. 다만, 법적 판단과 별개로 사회적 무관심과 국가의 방임이 한 청년을 살인으로 내몰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하지만 기존 제도가 이들을 지원자로 포괄하지 못한 데다 관련 실태조사조차 없었던 것이 현실이다.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정책조차 모르고 있었던 초기청년(19~24세)이 8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 돌봄 청년이 공식적인 지원대상으로 호명되지 못했던 점도 지원의 장벽으로 존재했다. 한 사회복지 공무원은 복지부 양성일 1차관과의 간담회에서 "그간 가족 돌봄 청년 발굴은 한 건도 없었다"며 "이는 사례가 없어서가 아니라 복지 대상자로서의 공식적 분류가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3월부터 '만34세 이하' 대상 실태조사…서울시 서대문구, 시범사업


    보건복지부 제공 보건복지부 제공 
    정부는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양 차관 주재로 청년 당사자들과 2차례 간담회를 가졌고, 지자체 담당 공무원들의 의견을 경청해 지원 대책의 방향성을 설정했다.
     
    우선 정부는 새학기가 시작되는 다음 달부터 중·고등학생과 학교밖 청소년, 대학생, 일하는 청년 등 '만 34세 이하'를 대상으로 전국적인 실태조사를 펼친다. 각 학교와 학교밖청소년 지원센터, 청년센터 등이 주축이 돼 현황·설문조사를 맡는다.
     
    또 복지수급 정보 등 '복지 사각지대 위기가구 발굴 시스템'을 토대로 대상자 1차 선별에 나선다. 사회보장정보원 데이터 등을 이용해 행정조사를 하고 온라인 패널조사도 활용하는 등 '신청주의'의 한계를 벗어나 정부가 선제적으로 사례를 확대 발굴하겠다는 계획이다.
     
    조사를 통해 파악된 가족 돌봄 청년은 기존 돌봄·생계·의료·학습지원과 연계해 즉각 지원한다. 긴급복지 지원제도와 노인장기요양보험·가사간병방문지원사업 등이 해당된다.
     
    선도 지자체로 선정된 서울시 서대문구는 올 1월부터 관련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구(區)는 가족 돌봄 청년들의 행정·법률 지원을 위해 마을 행정사·마을 변호사와 이들을 연결하고, 노인맞춤돌봄서비스 등 자기계발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돌봄도 제공한다.
     
    정부는 해당 사업의 성과를 평가한 뒤 전국적인 확산 모델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지원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지자체·병원·학교를 유기적으로 연계한 공적 안전망도 구축한다. 돌봄대상이 입원해 있는 병원의 경우 의료사회복지사, 학교는 교육복지사·교육복지 담당자가 상담을 통해 해당 청년에게 필요한 돌봄 서비스와 복지·정서지원을 제공하고 유관기관에 연결해주는 것이다.
     
    각 지자체는 학교·병원 등에서 발굴된 대상자들에 대해 상담·정보를 제공하고, 전문기관과 연계하는 '원스톱 서비스' 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범부처TF에서 세부방안 논의…제도화 위한 특별법 제정도 검토 


    보건복지부 제공 보건복지부 제공 
    ​지원 세부내용은 추후 범부처 TF(태스크포스)를 구성·운영해 논의한다. 정부는 가족 돌봄 청년에 대한 돌봄을 법적으로 명시하는 특별법 마련 등도 검토 중이다.
     
    복지부는 범부처TF의 과제로 △해외사례 연구·전문가 논의·관계부처 협의를 통한 '가족 돌봄 청년'의 제도적 정의 마련 △시범사업 진행결과 모니터링 △지원대상 기준, 국가·지자체 의무, 지원체계 구축 등을 포함한 법체계 논의 등을 제시했다.
     
    복지부 배금주 인구아동정책관은 정부 대책이 다소 느린 감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 "일반적인 돌봄 부담 전체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청년층으로서 돌봄노동으로 인해 본인의 미래를 설계할 중요한 시기를 잃어버리고 있는 '영 케어러'에 집중한 정책이다 보니 준비·발표에 시간이 좀 걸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반적인 돌봄 제공자들과 달리 이 시기 청년들은 아직 학교를 다니고 있는 등의 상황이라 기존 복지전달체계를 통해 바로 포착되지도 않는다"며 "현황 조사를 통해 대상자를 신속히 파악하고, 확인되는 청년들에 대해서는 기존 복지전달 방식에서 지원가능한 것들을 바로 연결시키는 것부터 진행하겠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가족 돌봄 청년을 국가적 지원대상으로 보고 중앙정부 차원의 대책을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정부의 지원은 돌봄 대상자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 복지부는 '돌봄 제공자'에 대한 접근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평가했다.
     
    복지부 권덕철 장관은 "가족에 대한 돌봄으로 청년들이 자신의 미래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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