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남북 정상이 문재인 대통령의 퇴임을 앞두고 친서를 교환한 사실을 공개하면서 강대강 국면으로 악화되고 있는 한반도 정세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미국과 일본에 특사 성격의 정책협의단을 잇달아 보내 강경 기조의 한미일 대북공조로 전환하는 가운데 돌출한 변수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2일 문 대통령이 지난 20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냈고 김 위원장이 이튿날 답장을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청와대도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
문 대통령은 친서에서 "그동안 어려운 상황에서도 남북 정상이 손잡고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 사이의 협력을 위해 노력해온 것"을 언급하며 "퇴임 후에도 남북공동선언들이 통일의 밑거름이 되도록 마음을 함께 할 의사를 피력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북남 수뇌(남북 정상)가 역사적인 공동선언들을 발표하고 온 민족에게 앞날에 대한 희망을 안겨준 것"을 회고하며 "임기 마지막까지 민족의 대의를 위해 마음 써 온 문재인 대통령의 고뇌와 노고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고 화답했다.
北 도발위협 속 南 정권교체 시점…尹 차기정부에 메시지 던진 셈
북한은 2022년 3월 24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아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시험발사를 단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연합뉴스두 정상의 친서 교환은 전에도 몇차례 있었지만 이번에는 시기 면에서 특히 관심을 끈다.
북한이 최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재개하며 도발 위협을 높이는 가운데 윤석열 차기 정부는 대북 원칙론에 따라 강경 대응을 예고하고 있다.
친서가 오간 것은 북한이 극도로 거부 반응을 보여온 한미연합훈련이 한창인 시점이고, 오는 25일 북한의 조선인민군 창건 90주년 행사를 맞아 무력시위가 예상되는 때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번 친서는 곧 퇴임할 문 대통령과의 개인적 친분에 일차적인 방점이 찍힌 것으로 보이나 한반도의 팽팽한 긴장에 최소한의 완충 역할은 기대된다.
문제는 윤석열 당선인이 이를 작지만 중요한 모멘텀으로 삼고 남북대화의 동력으로 이어가느냐 여부다.
만약 윤 당선인 집권과 함께 친서 교환이 끊긴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한반도 정세에 마이너스 요인이 될 것이다. 최악의 긴장 국면에서도 남북 정상간 핫라인만큼은 유지해온 최후 안전판이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북남 수뇌가 역사적인 공동선언들을 발표하고 온 민족에게 앞날에 대한 희망을 안겨준 것"이라고 한 것은 윤 당선인에 대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4.27 판문점 선언과 9.19 평양선언 등 남북정상 간 합의가 여전히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기초가 돼야 함을 시사한 것"으로 평가했다.
尹, 이미 대북강경기조 전환…한미일 공조 강화하며 긴장감 커질 듯
박진 외교장관 후보자가 20일 오전 종로구 한 건물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하지만 윤 당선인의 대선 공약과 당선 후 행보로 미뤄 전망은 밝지 않다. 윤 당선인은 문재인 정부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이미 '완전 실패'로 규정하고 대대적 수술을 공언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 후보자는 첫 출근길에 "지금은 유화정책만으로는 북한의 계속된 도발을 막을 수 없다"면서 "지금은 북한에 대해서 실질적인 정책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 후보자도 첫 일성으로 "북한의 비핵화 자체가 남북관계 정상화로 가는 길"이라며 사실상 선비핵화론을 폈다.
그는 또 인도적 지원은 강조하면서도, 제재 측면에서 개성공단보다는 상대적으로 접근이 쉬운 금강산 관광 재개조차 반대함으로써 현 정부와 현격한 인식차를 드러냈다.
물론 윤석열 정부가 9.19 평양선언 등 기존 남북합의를 대놓고 부정할 가능성은 낮다. 실제로 이종섭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서면답변에서 9.19 남북군사합의에 대해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은 아니"라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 정책에 반영될 합의의 해석과 구체적 이행에선 거의 전면적인 '문재인 정책 뒤집기'가 예상된다. 이는 지난해 초 출범한 미국 바이든 정부가 기존 북미 합의를 승계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방치하다시피 했던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윤 당선인이 미국과 일본 순으로 정책협의단을 보내 한미일 공조를 강화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중국과 북한에 대한 포위 압박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 현재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은 반러시아 전선까지 형성하며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기류를 강화하고 있다.
다음 달 말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은 이 같은 윤석열 정부의 외교 좌표에 확실히 도장을 찍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는 향후 있을 수 있는 7차 핵실험 등 고강도 도발의 책임을 새 정부에 지우려는 명분축적용 의도라고 할 수도 있다. 윤석열 정부의 대북기조를 북한이 모를 리 없고 다만 지금은 관망 중일 뿐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 교수는 "북한이 빠르게 (문 대통령 친서에) 화답하고 이를 먼저 공개한 이유는 자신들이 평화애호세력임을 부각하는 한편, 평화세력과는 연대하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협조하지 않겠다는 새 정부를 겨냥한 간접 메시지도 내포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