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가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전기요금 인상 계획을 전면 백지화하겠습니다. 무리하게 인상하면 국민에게 큰 타격을 줍니다."(2022.1.13.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전기요금은 원가를 반영하지 않고 눌러놓으면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갑니다."(2022.5.9.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
'전기요금을 올리면 국민에게 타격을 준다'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입장이 당선 후 두 달 만에 '전기요금을 못 올리면 국민 부담이 된다'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최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전력시장 개편 방침을 시사한 데 이어 9일 인사청문회에 나온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도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임을 강조했다.
'전기요금 동결' 'SMR' 공약, 선거용 쇼?…180도 바뀐 입장
이날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인사청문회에 나온 이 후보자는 최근 한국전력의 적자와 전기요금에 대해 "중장기적으로 기본적 원칙은 원가를 반영하는 시장원리에 따라 가격을 결정하는 방향이 맞다"고 말했다.
또 "(한전 적자 등) 최근 상황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등으로 인해 연료가격이 너무 올라서 한전의 원가 인상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 1월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전기요금 관련 공약을 발표하는 모습. 연합뉴스지난 1월 대선 후보였던 윤 당선인은 "문재인 정부는 졸속으로 밀어붙인 탈원전으로 발생한 한전 적자와 부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4월 전기료 인상 결정으로) 전기료 인상의 짐을 고스란히 국민께 떠넘기는 무책임한 결정을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기요금 인상 계획을 전면 백지화한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그런데 이날 청문회에 나선 이 후보자는 한전의 적자에 대한 진단과 이에 대한 해법을 모두 다르게 밝힌 셈이다. 이미 지난 4월부터 전기요금은 연료비 관련 부분만 제외하고 당초 예정한대로 기준연료비와 기후환경요금을 올려 kWh당 6.9원 인상된 상태다.
문 정부에서 유명무실해진 연료비 연동제가 제대로 시행될 경우 전기요금 상승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후보자는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와 수명만료 원전의 계속운전을 통해 전체 에너지믹스에서 원전 비중을 올리면 한전의 전기요금 관련 부담이 어느 정도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가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윤 당선인이 후보일 당시 탈원전 정책 폐기와 함께 적극적으로 도입을 주장한 소형모듈원자로(SMR)에 대해서도 이 후보자는 "아직 초보 단계로, 국내 설치를 논할 단계는 아니며 지금은 기술적 성숙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친원전 정책의 선결과제인 고준위방사성폐기물 문제와 관련해서는 특별법을 제정하고 정부 내에 종합적 조정을 위한 부처를 만들겠다는 원론적인 답변에 그쳤다.
한편 산업부의 통상 기능 외교부 이전 여부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서는 "산업과 통상을 정책적으로 쪼개는 것은 부담이 있다"며 "통상 기능을 (산업부에) 유지하고 적극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민주당 "이, 자료 부실공개" 질타…"거수기 사외이사" 지적도
한편 이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본격적인 질의에 앞서 의사진행발언 때부터 이 후보자가 다른 국무위원 후보자들에 비해 자료제출이 매우 미흡한 점을 강하게 질타했다.
앞서 이 후보자는 14년간 운영해오던 블로그를 산업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후 돌연 폐쇄했다. 과거 자신이 쓴 '출산회피 부담금'에 대한 언론 기고문이 논란이 되자 일어난 일로, 민주당은 "증거인멸이나 다름없는 인사검증 방해행위"라고 비판해왔다.
양이원영·신정훈 민주당 의원도 △최근 10년간 소득내용과 △직계존비속의 건강보험 자료 △장모의 상속세와 △배우자 증여세 납부 내역 △자녀 입시 관련 자료 등을 요청했으나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 후보자 임명 당시부터 논란이 됐던 대기업 사외이사 경력과 관련해서는 이 후보자가 '견제와 감시'라는 사외이사의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한 채 거수기 노릇을 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가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자료제출 요구에 관해 답변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후보자는 사외이사로 13년간 재직하면서 심의한 안건 285건 중 1건만 제외하고 다 찬성했다"며 "안건 찬성률이 99.6%로 찬성하지 않은 1개의 안건 역시 반대가 아닌 수정의결"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이 후보자가 SK하이닉스 사외이사일 당시 횡령 혐의로 법정구속된 최태원 회장에게 총 301억원의 옥중급여를 지급하는 안건과 미르재단에 68억원을 출연하는 안건에 찬성한 점이 청문회장에서 언급됐다. 미르재단은 K스포츠재단과 더불어 박근혜 정부 당시 '최순실 게이트'의 비자금 형성 창구로 지목된 곳이다.
이 의원은 "68억원 출연을 두고 최태원 회장 사면과의 연관성을 의심하는 특검 수사까지 이뤄졌다"며 "최태원 회장의 개인 이익을 위한 의사결정들인 것 같다. 기업·산업정책을 담당하는 장관으로 자격이 없어 보인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민주당은 이 후보자가 공직 재직 12년 중 3년 2개월간 미국에서 유학하면서 석·박사 학위를 땄지만, 귀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교수로 다시 자리를 옮기는 등 세금을 '스펙 쌓기'에 악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후보자는 "의무복무기간이나 복무규정을 다 준수했고, 민간기업이나 해외로 나가지 않은 채 20여년간 인재 양성에 집중했는데 '먹튀'라는 표현은 동의하기 어렵다"고 반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