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의협) 등이 간호법 제정에 반대하며 일간지에 게재한 광고. 의협 제공간호사의 처우 개선과 업무 범위를 명시한 '간호법'을 두고 의료계 내부의 진통이 커지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간호사들만의 이익을 대변하는 악법'이라고 반대하고 있는 반면
대한간호협회(간협)는 '코로나19 팬데믹 등 공중보건 위기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필수 법안'이라고 맞서고 있다.
앞서 지난 9일 더불어민주당이 단독 소집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제1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는 민주당 김민석·국민의힘 서정숙 의원이 대표발의한 간호법 2건, 국민의힘 최연숙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간호·조산법 1건 등 총 3건이 통과되면서 법안 제정이 탄력을 받고 있다.
의협은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이 '심야 날치기 통과'로 범의료계의 목소리를 외면했다며 이번 주말 총궐기를 선언한 상태다. 광고와 집회 등을 활용한 각 단체의 여론전도 고조되고 있다. 의료현장에서 가장 긴밀히 협업할 수밖에 없는 양측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이유를 짚어봤다.
간호계 "70년 된 의료법, 간호현실 담아내기엔 너무 낡아"
간호법 제정은 간호계의 오랜 숙원이다. 지난 2005년 여야 국회의원이 모두 간호법을 발의했지만 폐기됐고, 2019년에도 입법 시도가 좌초됐다.
간호사들은 지난 1951년 구성된 의료법이 요양·돌봄 등으로 확대된 이들의 업무 영역을 담아내기엔 너무 낡은 틀이라고 말한다. 전통적 근무처인
의료기관뿐 아니라 장기요양기관, 노인복지시설, 장애인시설 등으로 넓어진 스펙트럼을 담아내기엔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또 노인장기요양보험법 등 여러 갈래로 흩어져 있는 간호사의 역할과 권한을 하나의 법으로 다듬어야 한다는 것이다.
환자와 가장 오랜 시간을 붙어 있는 간호사들이 맡는
'1인당 환자 수'의 법제화 등 처우 개선 요구도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현행 의료법은 간호사의 간호 범위를
'의사의 지도 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로 제한하고 있다. 간호사들은 이 법안이 의료기관 내에서만 의료행위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주장한다. 다른 기관에서 환자를 간호하게 되면 '불법'이 된다는 것이다. 숙련된 간호사들이 자신의 전문성을 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도 지적한다.
안정적인 간호서비스 제공과 인력 수급을 위해서라도 고유한 법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이 간호계의 일관된 입장이다.
간협은 "간호법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8개국 중 33개국에서 시행할 정도로 제정 필요성과 효과성이 입증된 보편적 입법체계"라며 "만일 간호법이 보건의료인원팀을 무너뜨린다면 이미 시행 중인 대다수 국가의 보건의료체계는 붕괴돼야 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의협 등이 일간지에 '간호단독법은 대한민국 의료를 무너뜨립니다'라고 실은 광고에 대해 "거짓 정보"라며 정면 반박한 것이다.
간호법이 제정될 경우, 간호사들의 단독 개원과 불법 의료행위가 성행할 것이라는 의사들의 주장을 두고도 적극적으로 반론했다.
간협은 "간호법은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간호정책을 통해 국민 누구나 지역에 상관없이 질 높은 간호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법으로, 오히려 대한민국 보건의료를 바로 세우는 법안"이라며
"간호단독법이 불법의료로 국민건강을 위협한다는 광고는 국민에게 혼란만을 주는 완벽한 가짜뉴스"라고 강조했다.
의사협회, '간호단독법' 지칭하며 "직역 이기주의" 비판
지난 12일 대한간호협회와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가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공동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이들은 간호법 제정, 간호사 1인당 적정 환자 수, 불법진료 근절 등을 요구했다. 연합뉴스의협의 시각은 이와 완전히 상반된다. 간호사들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나 실제로는 '직역 이기주의'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의협 간호단독법 저지 비상대책특별위원회는 지난달 27일 긴급 성명을 통해 "의료법이 정한 의료인의 면허범위와 역할에 충실하도록 부실한 법을 재정비하고, 각 직역의 전문성을 확립하는 것이 간호단독법 문제 해결의 핵심"이라며
"간호사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근무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공감하지만 이를 법으로 제정하자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못박았다.
법의 제정 취지와 추구 방향을 고려할 때 수혜자는 간호사뿐이라는 게 의협의 입장이다. 자칫 '밥그릇 싸움'으로 비화될 수 있는 지점도 있다. 의협은 간호법으로 인해 간호조무사의 업무와 교육받을 권리가 배제될 뿐 아니라 장기요양기관 등에서 일하는 간호조무사·요양보호사의 일자리도 위협받게 될 것이라고 본다.
특히 법안 원안에 담긴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라는 표현을 강하게 문제 삼았다. 해석하기에 따라, 의사를 포함한 다른 의료인의 업무영역도 침범할 수 있다고 게 의협의 주장이다.
하지만 의사들이 '독소 조항'으로 꼽은 해당 문구는 보건복지부 역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고,
복지위 법안소위에서도 현행과 동일한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 하에 시행하는 진료 보조'로 변경됐다. 의료법에 앞서 간호법을 우선 적용한다는 조항 등도 삭제됐다.
그럼에도 의협의 강경 기조는 그대로다. 입법 명분이 없기에 어떻게든 법안 폐기를 이끌어내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지난 11일 성명에서 "후안무치한 민주당의 간호법안 입법 폭거를 강력히 규탄한다"며 "의결을 주도한 자들의 무거운 사과와 함께 보건의료체계 붕괴를 초래하고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간호법안 제정절차의 즉각적인 중단을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말했다.
尹, 후보시절 공감 표해…여론 의식한 양측 장외전도 '치열'
10일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간호법 제정 필요성에 공감의 뜻을 밝힌 바 있다.
윤 대통령은 올 1월 간협과 가진 간담회에서 "코로나의 긴 터널 속에서 간호사에게 사명만 요구하면서 더 이상 무거운 짐을 지게 해선 안 된다"며 "간호사의 헌신과 희생에 국민과 정부가 합당한 처우를 해주는 것이 공정과 상식"이라고 말했다.
이어 "간호법은 여야 3당이 모두 발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당 위원들과 함께 공정과 상식에 비춰 합당한 결론이 도출될 수 있게 힘쓰겠다"고 약속했다.
간협은 윤 대통령의 당선이 확정된 직후 논평을 통해 "간호사 확보 없이는 초고령사회 도래와 주기적으로 닥쳐오는 감염병 등의 위기에 대처할 수 없다"며 "약속했던 간호법을 조속히 제정해 국민의 생명과 환자의 안전을 지켜 달라"고 촉구했다.
보건당국도 긍정적인 입장을 표했다. 복지부는 지난 2월 '간호사 처우개선 및 전문성 확보를 위한 간호법을 제정하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대해
"정부는 간호인력의 과중한 업무 부담을 덜기 위한 정책을 지속 추진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대한간호협회(간협)는 지난 12일 국제 간호사의 날을 맞아 서울 광화문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고 간호법 제정 등을 정치권에 촉구했다. 간협 제공논의가 과열되면서 의협과 간협 사이 '장외전'도 치열해지고 있다.
의협은 오는 15일에는 간호법 제정 저리를 위한 '간호법 규탄 전국 의사 대표자 궐기대회'를 열겠다고도 예고했다.
이 자리에는 의협 집행부와 대의원회, 전국 16개 시·도 의사회, 대한개원의협의회장,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장, 대한전공의협의회장 등 200여 명이 참여할 예정이다. 의협은 "국회는 의협을 포함한 보건의료계의 진실한 목소리를 외면했다. 잘못된 보건의료정책을 막아서기 위한 의사들의 조직력과 연대의식, 투쟁역량을 한층 더 강화하고 간호법 폐기가 이뤄질 수 있도록 온 힘을 모을 것"이라고 밝혔다.
간협은 전날 국제 간호사의 날을 맞아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과 서울 광화문 도심에서 수천 명 규모의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간호법 제정'과 함께 △환자 안전을 위한 간호사 1인당 적정환자 수 △의대 정원 확대와 업무 범위 명확화를 통한 불법진료(의료) 근절 등 3대 요구사항을 내세우며 서울역까지 행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