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5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비상협의회를 연 뒤 평양 시내 약국들을 직접 시찰했다고 16일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마스크를 두 장 겹쳐 쓰고 약국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모든 입국 경로까지 봉쇄하며 코로나19 유입을 막아왔던 북한에 뒤늦은 오미크론 유행이 번지며 연일 수십만명씩 증상자가 발생하고 있다. 코로나 검사 체계가 미비해 발열 증상에 의존해 확진자를 분류하고 있는 데다 백신 접종이 이뤄지지 않아 면역력이 없는 점 등을 고려하면 현재 유행 상황마저도 과소평가됐을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온다.
발열 기준 유증상자 분류하는 北…실제 확진자 더 많을 듯
17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북한 국가비상방역사령부는 지난 15일 오후 6시부터 16일 오후 6시까지 북한 전역에서 발생한 유열자, 즉 발열자는 26만 9510명이라고 발표했다. 집계를 시작했다는 지난달 말부터로 범위를 늘리면 그간 발생한 유열자는 148만 3060여명, 누적 사망자는 56명이며 바이러스 종류는 스텔스 오미크론으로 불리는 세부변이 BA.2라고 통신은 전하고 있다.
이처럼 유행 규모가 급속도로 커졌지만 이조차 과소 평가됐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데는 우선 '확진자'가 아닌 '유열자'라는 표현에 이유가 있다. 이는 코로나 검출에 탁월한 PCR(유전자 증폭) 검사나 신속항원검사를 통한 진단 체계가 갖춰지지 않아 발열 증상 유무에 기반해 확진 규모를 어림잡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발열은 오미크론 감염자의 다양한 증상 중 하나일뿐인데다 그 비중도 크게 높지 않다는 점이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사회전략반장은 지난 16일 브리핑에서 "열만 중심으로 놓고 보면 전체 오미크론 환자 중 10% 정도에 불과하고 호흡기계 증상까지 포함한다고 해도 절반 이하 정도일 것으로 본다"고 말한 바 있다.
발열 기준으로 검사할 시 다른 증상을 가진 확진자는 물론, 무엇보다 오미크론 감염자 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경증 내지 무증상인 경우는 증상 중심 검사체계에선 숫자 파악조차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에 실제 확진자 규모도 '유열자'에 의존한 북한의 발표 수준보다 훨씬 높고 확진자이면서 검사체계에 잡히지 않는 이들의 활동에 따른 추가 감염 확산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접종률 0%에 유행 경험 없어…"사망자 3만 4천명" 예측도
이런 미비한 검사·진단 체계와 함께 코로나19 감염에 대비한 면역력 형성이 안 돼 있는 점도 유행에 따른 피해가 커질 우려를 키우는 대목이다. 북한의 백신 접종률은 현재까지 WHO(세계보건기구)에 보고되지 않고 있지만 0%에 가깝다는 게 정설이다. 또, 코로나19 발생 후 국경을 전면 폐쇄한 만큼 오미크론 출현 전 원형 바이러스나 델타 등 다른 변이 감염에 따른 자연 면역을 확보했을 가능성도 사실상 없다.
이처럼 면역 획득이 전혀 안 된 상태에서 번지는 코로나19 유행 상황인 만큼 사망자 수도 현재 발표보다 더욱 높을 수 있고 앞으로도 큰 규모로 늘어갈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 위원장인 오명돈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발표한 홍콩 내 오미크론 유행 당시 연령별 사망률을 북한에 적용할 때 예상되는 사망자 수를 3만4540명으로 추정했다. 이마저도 북한보다 의료 인프라가 월등히 나은 홍콩의 데이터에 기초한 것으로 보수적인 추정치라고 덧붙였다.
"항바이러스 치료 우선" "백신 접종이 현실적"…수단 놓고 의견 분분
북한 코로나19 상황 방역지원의 방법을 놓고 국내에서도 다각도 논의가 이뤄지는 가운데 당장 가장 시급한 조치를 두고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현재 북한은 대규모 확진자 발생에도 지도층이 기부하는 해열제 등 상비약과 버드나무잎이나 꿀을 먹는 민간요법 등에 의존해 대응하고 있는 실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조선중앙TV 김은정 아나운서가 16일 스튜디오에서 유열자(발열자)들에 대한 치료대책으로 가정들에서 이용하고 있는 약물사용방법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오명돈 교수의 경우 코로나19 유행 차단에 지금껏 가장 효과적이었던 백신은 현재 북한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전망했다. 백신을 도입해 전국에 배포한 뒤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1개월이 넘게 걸리는데 그땐 이미 유행의 정점이 지나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그 근거다. 그러면서 백신에 너무 주력하기보다는 대증요법과 폐렴 치료, 항바이러스 치료 등을 우선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세계적으로 품귀현상이 나타나는 치료제를 북한에 공급하기가 어렵고 부족한 의료진이나 의료 인프라로 적절한 치료 시기도 놓칠 가능성도 높아 치료제 지원은 어렵다는 목소리도 있다.
엄중식 교수는 "기본 치료제도 공급할 수 있다면 하는 게 맞겠지만 팍스로비드나 라게브리오 같은 항바이러스제는 사실 우리도 여유 없이 비축하고 있어서 지원에 한계가 있다"며 "또한, 치료제는 감염되자마자 경증 상태에서 바로 투여해야 효과가 있는데 환자를 바로 치료할 시설도 없고 숙련된 의료진도 기대하기 어려워 치료제를 공급해도 효과가 낮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이라도 백신 접종을 시작하는 게 장기적으론 북한에서 사망자를 줄이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 아닌가 싶다"며 "냉동 보관은 안 되는 상황이고 한계도 많으니 냉장 보관되는 백신을 중심으로 공급하면 24시간 내지 48시간 안으로는 도착할 테니 현지에서 접종을 진행하는 방식을 검토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