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일보 제공센서가 달린 조끼를 몸에 두르고 방탄헬멧을 쓴 뒤 기기 전원을 켜자 진동이 울렸다. 헬멧에 달린 센서와 연동된 화면은 사람 움직임에 맞춰 3D 게임처럼 움직였다. 스크린 속 사격장에서 영점을 맞추는 것까지는 3년 전 예비군 훈련과 별로 다르지 않았는데, 마치 모니터 3개를 두고 게임을 하는 것처럼 눈 앞에 서초역이 펼쳐졌다.
"적대세력과 민간인이 함께 있으니 잘 구분해서 쏴야 한다"는 안내 뒤 몇 초가 지나자 화면에서 뭔가 섬광이 번쩍였다. 반사적으로 총구를 돌리고 방아쇠를 당기자 뭔가 쓰러지는 게 보였다. 30발을 다 쓰자 몸을 엄폐물 뒤로 숙이고 탄창을 갈아 끼웠다.
CBS노컷뉴스 취재진은 오는 6월 2일로 다가온 예비군 소집훈련 재개를 앞두고 지난 30일 서울 서초구 내곡동 과학화 예비군 훈련장을 찾아 첨단 기술이 적용된 예비군 훈련을 체험해 봤다.
연차 관계없이 '하루 8시간'…실탄사격은 이제 안전시설 갖춘 실내에서
올해 재개되는 예비군 소집훈련은 동원예비군과 향방예비군 관계없이 하루 16시간만 교육을 받는다. 소집교육 8시간, 원격교육 8시간이니 순수히 훈련장에서 보내는 시간은 8시간인 셈이다.
때문에 국방부는 실사격, 시가지전투, 목진지전투 등 몸으로 익힐 수밖에 없는 과목들을 우선적으로 편성했다. 다만 동원예비군은 동원되는 부대의 작전계획 숙지 등 전시 동원될 경우에 필요한 과목이 섞여서 훈련이 진행된다.
기본은 자율참여형으로 각 예비군들이 어느 교장에서 먼저 훈련을 받을지 직접 선택할 수 있지만, 코로나19 방역상 한 교장에 많은 예비군이 몰릴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 현장 여건에 따라 시행할 예정이다.
국방일보 제공군부대는 대부분 외진 곳에 있지만, 서초 훈련장은 서울에서 가까운 만큼 민가에서 총성이 들릴 수 있다. 게다가 총소리는 시끄럽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내 사격장을 설치했다. 기존에는 대부분 야외였다.
방탄헬멧과 소음 차단 헤드셋을 쓴 채 사격장에 들어가면 예비군 주무장인 M16A1 소총이 사로에 놓여 있다. 일정 발수 이상 탄착군을 형성하면 합격이다. 총을 쏘고 난 뒤 기존 야외 사격장에선 사수가 직접 표적지를 회수했다면, 이제는 표적지가 자동으로 사수에게 다가온다.
김형준 기자각 사로 사이엔 방탄유리가 설치돼 있고 사격장 벽 또한 방탄이다. 다만 총구 방향을 한 쪽으로만 고정하는 고정틀이 설치돼 있다. 이 훈련장이 지난 2015년 예비군에 의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한 바로 그 곳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어쩔 수 없지만, 실전적인 사격이 그만큼 제한돼 아쉬웠다.
'엎드려 쏴'만 하던 영상모의사격 대폭 개선…화면이 사람 따라 움직인다
국방일보 제공실탄사격 자체는 군인의 필수 덕목인 만큼 그전에도 예비군 훈련 과목이었고 본질이 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VR 영상모의사격은 대폭 개선됐다.
그전에도 이 사격 자체는 있었는데 10명이 한 번에 한 스크린에 나오는 표적을 쏘는 방식이었다. 굳이 선해하면 분대 전체가 한 훈련장에서 한 번에 훈련할 수는 있었는데, 구식 컴퓨터 게임을 하는 듯 단조로웠다.
VR 영상모의사격을 위한 헬멧과 전투조끼. 김형준 기자VR 영상모의사격을 하려면 먼저 센서가 장착된 조끼와 헬멧을 걸쳐야 한다. 여기에 부착된 센서는 사용자의 움직임을 감지해 영상을 실시간으로 바꿔 준다. 쉽게 말하면 헬멧을 쓴 채 고개를 하늘로 향하면 영상에도 하늘이 보인다.
현실감을 더해주는 것은 압축공기를 활용해 일정한 반동을 느끼게 해 주는 총기와 함께 센서가 달린 전투조끼다. 일단 이 조끼 자체가 가볍지 않기에 전투장비를 걸친 것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예비 탄창도 넣을 수 있어서 이 사격장에서만큼은 단독군장 대용으로 쓸 수 있다.
한남대교를 배경으로 VR 영상모의사격 시범을 보이는 우리 군 장병. 김형준 기자국방부는 "훈련을 체험한 장병들은 VR 영상모의사격이 매우 흥미 있는 훈련으로, 실전과 같은 긴장감에 짧은 시간 훈련에도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는 등 야외에서 실시하는 훈련 못지 않은 강도를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물론 이 설명을 문자 그대로 다 믿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가상 공간 속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은 잘 느낄 수 있었다. 배경도 한몫했는데 서초역과 한남대교, 코엑스, 우면산 등 우리에게 친숙한 환경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이 지역 예비군 작전계획에 따른 것이고 다른 지역 예비군은 다른 곳을 배경으로 훈련할 수 있다.
보통 과학화훈련은 Live(실기동훈련), Virtual(가상훈련), Constructive(워게임 모의훈련), Game(게임) 4가지로 구분되며 이를 통칭해 LVCG라고 한다.
훈련은 실전과 최대한 비슷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에게 실탄을 쏘면서 할 수는 없는 만큼, 이러한 영상모의사격을 비롯한 다양한 훈련 기법이 개발돼 이를 대신하고 있다. 다만, 한 가지 훈련에만 치중하면 안 되고 여러 기법을 혼합해 효과를 내야 한다고 군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몸으로 뛰는 시가지/야전 모의전투…식사도 둘 중 한 메뉴 '택일'
레이저 장비가 장착된 M16A1 소총. 김형준 기자
그래서 실제로 몸으로 뛰는 훈련도 준비돼 있다. 사용하는 총기도 M16A1 실총이다. 단, 탄이 아니라 레이저가 나간다. 기자를 포함한 수많은 예비군들이 조기퇴소 하나만 바라보고 목숨걸고 뛰었다는 시가지/야전 모의전투 얘기다.
마일즈 장비를 이용한 이 훈련은 FoF(Force on Force, 사람 대 사람)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헬멧과 조끼에 레이저 수신기가 달려 있다. 총에서 쏜 레이저가 수신기에 맞으면 부위와 명중 발수 등을 컴퓨터가 계산해 경상, 중상, 사망 등을 판정한다. 상대편을 전멸시키거나 깃발을 뺏으면 승리한다.
국방일보 제공방식은 그전과 차이가 별로 없긴 한데 장비는 더 발전했다. 탄창에 컴퓨터가 달려 있는데, 120발의 레이저 총탄을 지급받고 단발과 연발 사격도 조절할 수 있게 바뀌었다.
기자가 이날 실제 점심으로 먹은 도시락. 김형준 기자힘든 훈련을 마쳤으면 당연히 식사도 해야 한다. 식사는 외부 업체가 공급하는 도시락인데 입소할 때부터 A형(한식 반찬)과 B형(양식 반찬)을 선택해 먹을 수 있다. 그전에 영 시원찮았던 예비군 도시락에 대한 여론과 함께 지난해 전국민적 관심사였던 부실급식 문제를 신경쓴 맛과 모양새였다. 단가는 7천원이다.
52보병사단 210여단장 김문상 대령은 "과학화 예비군 훈련장은 영상모의사격, 마일즈 장비를 활용한 실전적인 시가지 전투훈련, 실내사격장 등 과학화된 실전적인 훈련장"이라며 "과학화 예비군 훈련을 통해 국가안보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