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레고랜드 테마파크. 연합뉴스강원도 레고랜드발(發)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리스크 부각 여파로 금융시장이 휘청이는 모양새다. 회사채 시장에는 불안감이 반영되고, 증권사‧건설사 주가는 가파른 하락세를 보였다. 금융당국은 채권시장 유동성 경색 불안에 대응하기 위해 1조 6천억 원 규모의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를 재가동하기로 했다.
앞서 레고랜드 조성사업을 위해 세워진 특수목적회사(SPC) 아이원제일차는 2050억 원 규모의 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발행했고, 강원도는 지급보증을 섰다. 그러나 아이원제일차는 ABCP 상환을 못해 최근 부도처리됐고, 강원도는 보증의무 이행을 하지 않았다. 해당 ABCP는 국내 10개 증권사와 1개 자산운용사가 나눠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증권가의 직접적인 타격 사안으로도 받아들여지고 있다.
강원도 지급보증 덕에 발행 때 최고 신용등급(A1)이 매겨졌던 ABCP의 부실화는 가뜩이나 주요국의 공격적 기준금리 인상 영향으로 고조된 채권시장의 불안을 부채질하는 기류다. 안정적 채권조차 믿기 어려워졌다는 인식 하에 투자 심리가 악화됐다는 분석이다.
우량 등급으로 분류되는 3년물 회사채(AA-) 금리는 20일 기준 5.588%로 치솟으며 연중 최고 수준을 보였다. 3년물 회사채(AA-)와 국고채 금리차를 나타내는 신용스프레드도 1.238%포인트까지 벌어져 2009년 이후 약 13년 만에 최고치를 보였다. 신용스프레드가 확대된다는 건 회사가 자금을 조달할 때의 비용부담이 그만큼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91일물 CP(기업어음 A1등급) 금리 역시 4.1%로, 13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올랐다.
한국은행 제공한국은행은 이날 발행한 '최근 신용채권시장 상황 평가' 보고서에서 "앞으로도 국내외 통화긴축 강화 등으로 금융시장의 높은 불확실성이 상당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만큼, 단기간 내에 신용채권시장의 위축이 크게 개선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라며 레고랜드 사태를 고리로 "9월 말 이후 PF-ABCP 시장 불안 등으로 신용 경계감이 높아지고 있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상황이 이처럼 악화되자 금융위원회는 같은날 "채안펀드 여유 재원 1조 6천억 원을 통해 신속한 매입을 재개하겠다"고 말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강원도 ABCP 사태 이후 확산되는 시장 불안 요인을 면밀히 보고 있다"며 이 같이 밝혔다. 금융위는 채안펀드 여유 재원으로 단기채권을 매입하고 캐피탈콜(펀드 자금 요청)도 즉각 준비하기로 했다. 한국증권금융을 통한 유동성 지원 등도 시행할 예정이다.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도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산은이 운영 중인 채안펀드의 조속한 투입으로 자금시장 불안정에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금융감독원 역시 자금시장 경색 조짐과 맞물려 증권사 매각설, 건설사 부도설 등 루머가 확산하자 합동단속반을 가동해 강력한 대응에 나섰다. 시장 심리 안정을 위한 대응으로도 풀이된다. 금감원 관계자는 "위기감에 편승해 사익 추구를 위한 목적으로 루머 등을 고의로 유포하는 행위에 대해 엄중히 조치할 것"이라며 "악성루머를 이용한 시장교란 행위 또는 사기적 부정거래 혐의 적발시 신속히 수사기관에 이첩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주식시장엔 부동산 가격 하락‧건설 비용 상승 환경 속 PF 대출 리스크가 반영되며 증권주‧건설주가 약세를 보였다. 다올투자증권(-9.10%), 키움증권(-8.26%), 유진투자증권(-7.27%), DB금융투자(-5.55%) 등 대다수 증권주들이 하락했다. 태영건설(-6.67%), 금호건설(-5.52%), 동부건설(-4.65%) 등 중소형 건설주들의 낙폭도 두드러졌다.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19.35포인트(-0.86%) 하락한 2218.09에 장을 마쳤다.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562억 원 어치를 순매도하면서 전날까지 이어온 13거래일 연속 순매수 행진에 마침표를 찍었다. 정명지 삼성증권 투자정보팀장은 "국내에선 유동성 리스크가 부각된 한편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가 4%선을 넘어선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