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2023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이날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보이콧했다. 윤창원 기자대통령 시정연설로 국회의 예산정국이 시작됐지만, 예산안이 연말까지 통과되지 않아 지난해 예산을 그대로 따르는 '준예산'이 적용될 가능성이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다. 최근 야당 대표를 둘러싼 수사가 최측근의 구속, 당사 압수수색까지 이어지면서 더불어민주당이 대통령 시정연설까지 보이콧하는 등 양당 갈등이 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野 국정감사도, 대통령 연설도 보이콧에 與 "범죄 은폐, 심판받을 것"
25일 윤석열 대통령이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기 위해 국회 본청으로 들어서는 순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의원들이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여야는 25일 내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국회 시정연설에 나선 윤석열 대통령을 각각 박수와 항의로 맞았다. 이날 오전 국민의힘 의원들은 국회 본회의장에 자리 잡고 윤 대통령을 기립박수와 환호로 맞이한 반면, 일찌감치 의원총회를 마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본회의장에 들어가는 대신 본관 로텐더홀 입구에서 '국회 무시 사과하라' '야당 탄압 중단하라' 등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했다.
여야의 강 대 강 대치가 계속되면서 야당의 유례 없는 '시정연설 보이콧'은 진작 예고돼 있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최측근인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구속되고, 민주연구원이 있는 당사 건물에 검찰이 압수수색까지 나서자 민주당 의원들은 국정감사 기간부터 여러 상임위원회에서 항의와 퇴장을 거듭했다.
국민의힘은 맹폭을 퍼부었다.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야당의 보이콧에 "참으로 유감스럽게도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을 야당이 보이콧했다"며 "지금 민주당은 당 대표의 범죄 혐의를 은폐하기 위해 다수 의석의 입법권을 남용하고 있고, 의회 민주주의의 퇴행을 앞장서서 감행하고 있다. 역사적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권력강화 예산안" 핀셋심사 예고…"준예산 사태 가능성도" 우려
여기에 민주당이 윤 대통령의 예산안 시정연설에 대해 "민생과 미래는 없고 권력기관 강화만 있다"고 혹평하면서 예산안 처리가 여야 대치 속 험난한 수준을 넘어 사상 초유의 '준예산' 사태에 이를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민주당 김성환 정책위의장은 윤 대통령이 밝힌 예산안에 대해 "긴축재정과 초부자감세 정책을 철회할 것을 여러 차례 당에서 요청했음에도 전혀 기조 변화가 없었다"며 "노인·청년 일자리 예산, 지역화폐, 임대주택 예산 등 10조 원 정도의 민생 예산을 삭감하고도 겨우 몇 푼 편성한 것을 약자복지라고 하는 것을 보고 참 비정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준예산은 12월 31일까지 다음 연도 예산안이 통과되지 못하면 전년과 동일하게 예산을 집행하는 제도다. 그간 새 예산안은 몇 차례 해를 넘기기도 했지만, 이튿날이나마 여야가 빠르게 합의에 이르면서 준예산 사태로까지 번지진 않았다. 하지만 여소야대 정국에서 예산안 통과를 위해 국민의힘이 민주당의 협조를 얻을 만한 계기는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이 핀셋 심사를 예고한 상태에서 합의에 실패할 경우, 새 예산과 함께 추진되는 새 정부의 사업 구상이 통째로 어그러질 수 있다. 정부조직법 개정 등 입법 사안도 맞물려있다.
당내 한 예결특위 위원은 "벌써 준예산 얘기가 나오는 것 자체가 여야 관계가 얼마나 경색된 상황인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며 "예산정국에서 여야 갈등에 따른 피해는 집권 여당에 훨씬 클 텐데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당내에선 준예산 집행 가능성을 내다보고 정부 측에 관련 준비를 해야 할 것이란 얘기를 전했다는 말도 나온다. 다만 당내 또 다른 예결특위 위원은 "아직 한 달 넘게 시간이 남았다. 직전까지 여당을 경험했던 민주당인데, '민생'을 강조해 놓고선 무조건 합의 안 하겠다고 고집부릴 수 있겠냐"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