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 김종규를 상대로 슛을 던지는 LG 김준일. KBL2022-2023 SKT 에이닷 프로농구 정규리그 2위를 달리는 창원 LG의 강점 중 하나는 벤치의 힘이다. 이관희, 이재도, 아셈 마레이 등 주축 선수 외에도 팀이 필요로 할 때마다 등장해 제 몫을 해주는 선수가 마치 릴레이 달리기를 하는 것처럼 끊임없이 나타났다.
조상현 LG 감독은 D리그에서 비결을 찾았다. "D리그 운영이 팀에 많은 도움이 된다. 1군에서 컨디션이 떨어졌을 때는 D리그로 내려보내서 4대4나 5대5 스크리미지(연습경기 형태의 훈련)를 통해 반복 연습을 시킨다"고 말했다.
이어 "저스틴 구탕이 대표적인 예다. 정규리그 1라운드 때는 아무 것도 못했다. D리그 경험을 통해 (기량이) 올라왔다"고 덧붙였다.
선수들의 마음가짐도 남다르다. 조상현 감독은 최근 팀 기여도가 꾸준히 높은 정희재를 언급했다. "초반에 기회가 많지 않았을 때 힘들었을텐데 꾸준히 준비를 잘해줬다. 시키지 않아도 다들 알아서 열심히 하는 문화가 생겼다"고 말했다.
3일 오후 경남 창원스포츠파크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원주 DB와 홈 경기는 마치 올 시즌 LG의 농구를 압축해 보여주는 것 같았다.
LG는 2쿼터 한때 17점 차로 벌어졌던 열세를 만회하고 DB를 76-74로 눌렀다.
LG는 1쿼터 야투 성공률 26%에 그치며 고전을 면치 못했다. 반면, 이날 경기 전까지 4연승을 질주한 DB는 알바노와 강상재를 중심으로 빠른 템포의 공격과 탄탄한 수비를 앞세워 홈팀을 압도했다.
1쿼터는 DB가 24-11로 앞선 가운데 끝났고 2쿼터 들어 점수차는 17점까지 벌어졌다.
공교롭게도 17점 차는 지난 1일 서울 SK와 원정경기에서 기록된 최다 점수차와 같다. LG는 2쿼터까지 SK에 17점 차로 뒤졌지만 강력한 뒷심으로 역전승을 거둔 바 있다.
이틀 전의 경험은 컸다. LG는 포기하지 않았다. 반격의 원동력은 벤치에서 나왔다.
김준일은 1쿼터 중반부터 출전해 적극적인 골밑 공략으로 DB의 수비를 흔들었다. 김준일 역시 투입 초반부에는 야투 난조를 겪었지만 주눅들지 않고 공격적인 플레이로 일관했다.
2쿼터 들어서는 정인덕이 힘을 냈다. 끈질긴 수비력으로 잘 알려진 정인덕은 LG의 득점력이 침체됐던 2쿼터 중반 알토란 같은 야투 2개를 터뜨려 팀에 힘을 실어줬다.
LG는 점수차가 17점으로 벌어진 뒤 오히려 더 힘을 냈다. 강한 수비를 바탕으로 DB의 실수를 유발했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마레이와 김준일의 골밑 공세에 결국 DB 수비가 무너졌다.
전반이 끝났을 때 스코어는 36-36 동점이었다.
LG는 3쿼터가 시작하자마자 마레이의 득점으로 역전에 성공했다. 하지만 다시 야투 난조가 찾아왔고 DB에 6점 차로 끌려갔다.
여전히 접전이었다. 놀라운 건 이때까지 LG는 3점슛을 단 1개도 성공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경기 시작 후 첫 16번의 시도가 모두 빗나갔다.
위기의 순간 해줘야 할 주축 선수가 힘을 냈다. 포인트가드 이재도였다. 이재도는 돌파를 통해 2연속 레이업을 넣었고 트랜지션 상황에서 윤원상의 3점슛을 어시스트 했다.
17번째 시도 만에 LG의 첫 3점포가 터졌고 스코어는 다시 45-44, LG의 리드로 바뀌었다.
LG는 DB의 작전타임 이후 첫 공격을 막았다. 이어 이재도가 윤원상의 3점슛을 다시 한 번 도왔다. 윤원상은 수비 반칙으로 얻은 자유투까지 성공해 4점 플레이를 완성했다.
윤원상은 이후에도 3점슛을 2개 더 터뜨렸다. 3쿼터에만 13득점을 퍼부었다. 4쿼터 LG의 첫 야투도 윤원상의 3점슛에서 비롯됐다.
윤원상은 3쿼터 막판부터 4쿼터 초반까지 약 5분 동안 3점슛 5개를 몰아넣는 괴력을 발휘했다. LG는 62-54로 앞서갔다.
DB의 최근 상승세도 굉장했다. 강상재를 앞세워 반격을 펼쳤다. 종료 2분여를 남기고 74-73 재역전에 성공했다. 양팀 모두에게 최후의 뒷심의 필요한 순간이 왔다.
LG는 4쿼터 종료 1분28초를 남기고 터진 이재도의 중거리슛으로 스코어를 75-74로 뒤집었다.
마지막 순간 LG를 살린 건 바로 수비의 힘이었다. DB의 공세를 연이어 차단했다. 김준일은 1점차로 앞선 종료 2.7초 전 자유투 1개를 넣어 승기를 굳혔다.
LG는 이날 승리로 시즌 전적 24승13패를 기록해 단독 2위를 굳게 지켰다. 원정 강세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았던 홈 승률도 5할(10승10패)을 회복했다. DB는 5연승 도전에 실패했다.
윤원상은 팀내 최다인 18득점을 퍼부었고 DB의 높이에 맞선 김준일은 17득점 5리바운드로 승리에 기여했다. 마레이도 15득점 17리바운드로 제 몫을 톡톡히 했다.
LG가 정규리그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이유를 확인할 수 있는 경기였다. 최근 '시계 세리머니'로 화제를 모았던 이관희는 다소 침묵했지만 LG에서는 위기 때마다 난세의 영웅이 등장했다. 점수차가 벌어져도 포기하지 않는 근성 역시 돋보였다.
조상현 감독은 "우리는 아직 강팀이 아니"라는 말을 종종 한다. 그럼 강팀의 기준이 무엇인지 물었다. 조상현 감독은 "다른 팀이 인정해줘야 강팀"이라고 단호하게 답했다.
LG는 2경기 연속 놀라운 뒷심을 발휘하며 짜릿한 역전 드라마를 연출했다. 적어도 SK와 DB로부터는 확실히 인정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