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 외교장관이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서 진행된 강제징용 피해자 및 유족과의 면담에 참석해 의견을 경청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정부가 지난 2018년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대법원 손해배상 확정판결로 인한 한일관계 문제에 대한 '해법'을 오는 6일 발표한다.
5일 외교부에 따르면 박진 장관은 오는 6일 카메라 앞에서 강제동원 피해자 해법을 직접 발표할 예정이다. 해당 해법은 지난 1월 외교부가 공개토론회에서 이미 발표한 '제3자 변제', 즉 원고들에게 손해배상 판결금을 제3자가 대신 지급하는 방식이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실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은 5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서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며 기자들과 만나 "외교당국 간 협의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중요 방안이 도출될 경우 적절한 시점에 공식적인 발표가 있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도 지난 4일 한국 정부가 2018년 대법원 판결로 배상 의무가 확정된 일본 피고기업(일본제철, 미쓰비시중공업) 대신 한국 정부 산하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배상금 상당액을 원고에게 지급하는 해결책을 조만간 발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해결책'이 조만간 발표되면,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 1995년 무라야마 담화 등 역사 반성이 담긴 과거 담화를 계승한다는 입장을 표명한다는 얘기다. 다만, 일본 정부 차원에서 이를 번복한 적은 없어도 일본 자유민주당 극우 인사들이 이를 부정하는 발언을 잇따라 함으로써 다소 빛이 바랜 측면이 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맨 오른쪽)가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 1995년 무라야마 담화 등 일본의 역사 반성이 담긴 과거 담화를 계승한다는 입장을 표명할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윤석열 정부는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 또는 '정치적 결단'을 요구해 왔고,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강제동원 배상 문제가 이미 해결됐다는 견해를 고수하면서 그에 반하지 않는 범위에서 가능한 대응을 검토해 왔다.
이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총리가 새로운 담화가 아니라 한일관계에 관한 과거 담화나 공동선언에 담긴 입장을 계승한다고 표명하는 것은 1965년에 이미 강제동원 문제가 해결됐다는 기존 견해를 훼손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정부는 이러한 '해법' 발표를 통해 한일 정상이 주기적으로 정상회담을 여는 '셔틀 외교'를 복원하는 것은 물론, 오는 5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에 윤석열 대통령의 참석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대통령실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은 5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서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며 기자들과 만나 "외교당국 간 협의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다만 김 실장은 일본 측 피고기업이 직접 기금 출연에 참여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진 데 대해 "제가 확인해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구체적인 내용을 현재 조율 중인 것으로 알고 있고, 마무리되면 적절한 시점에 공식적인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이러한 방안은 한일관계의 조기 회복은 가능하더라도 강제동원 피해 당사자와 유족, 시민사회단체 등의 강력한 반발을 부를 가능성이 높다. 1995년 무라야마 담화에는 식민지배 자체에 대한 사죄는 있지만, 강제동원이나 '위안부(피해자와 지원단체들이 쓰는 용어는 '일본군 성노예제')' 등 식민 지배 당시 자행됐던 만행에 대한 구체적 언급과 사과는 없기 때문이다. 이는 2015년 발표된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전후 70년 담화'도 마찬가지로, 오히려 이 담화는 교묘한 화술로 핵심을 피해갔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다수의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소송대리인단, 그리고 민족문제연구소 등 지원단체는 해당 안이 실질적인 문제 '해결'이라기보다는, 대법원 확정판결의 결과로 일본 기업에 대해 강제집행이 이뤄질 경우 여기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채권을 소멸시키고자 하는 쪽에 더 가깝다고 주장하며 반발하고 있다.
삼일절인 1일 서울광장에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6.15남측위원회 주최로 열린 104주년 3.1절 범국민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류영주 기자결과적으로 피해자 입장인 우리 정부가 미국이 요구하는 한미일 안보협력의 틀에 맞추기 위해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사과와 손해배상 요구를 도외시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될 전망이다. 이들은 6일 정부의 '해법'이 발표되고 난 뒤 실제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이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 계획이다.
민족문제연구소 김영환 대외협력실장은 "피해자들이 오랜 투쟁으로 쟁취한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사법주권을 포기한 윤석열 정권의 외교적 참사"라며 "이는 2015년 '위안부' 합의보다 못한 외교 참사로, 강제동원 피해자의 인권을 짓밟는 한미일 군사협력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