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일타 스캔들' 종영 기념 배우 전도연의 라운드 인터뷰가 열렸다. 매니지먼트 숲 제공자체 최고 시청률(17.038%, 닐슨 코리아, 유료 플랫폼 기준)을 찍고 종영한 tvN 토일드라마 '일타 스캔들'. '인간실격'이 2021년 작품이었으니 드라마로 따지면 전작 이후 공백기가 아주 긴 건 아니었다. 하지만 밝은 분위기의 로맨틱코미디 드라마에 출연한 건 '프라하의 연인'(2005) 이후 18년 만이었다. 처음 대본으로 만난 남행선 캐릭터에 본인이 잘 대입되지 않는 것 같아 한 차례 고사했던 전도연은, 결국 남행선 그 자체를 만들어냈다.
드라마 종영 다음 날이었던 지난 6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전도연의 '일타 스캔들' 종영 인터뷰가 열렸다. 계속 이어지는 인터뷰 일정에 지치지 않냐는 말에 "쉽지는 않은 것 같다"라고 운을 뗀 그는 종종 웃었고, 재치 있는 유머 감각으로 취재진의 웃음을 유발하기도 했다. 기다리던 밝은 작품에 출연한 것도, 시청률이 잘 나온 것도, 행복한 결말인 것도 모두 만족스럽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국가대표 핸드볼 선수였다가 가정사로 인해 반찬가게 주인이 된 남행선은 스포츠 지도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결국 합격한다. 시험 합격 이후로 미루었던 결혼식을 드디어 올릴 수 있게 된 남행선과 '일타 강사' 최치열은 거리에서 키스를 나눠 '꽉 닫힌' 해피엔딩을 보여줬다. 전도연은 "결말은 너무 좋았다. 다 행복하게, 즐겁게, 가족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이제 가족으로 열린 결말처럼 끝난 거라서 개인적으로 되게 만족스러웠다"라고 말했다.
오랜만에 들어온 '밝은 작품'이어서 관심을 갖게 된 '일타 스캔들'에서, 정작 본인이 연기할 남행선이 어렵게 느껴졌다. "내가 대입이 되지 않는" 대본이어서였다. 양희승 작가와 만난 후 '남행선이 좀 더 현실 기반의 인물이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거기에 동의하면서 '전도연의 남행선'이 시작됐다.
전도연은 극중 핸드볼 국가대표 선수를 하다가 가정사로 인해 조카 해이를 엄마처럼 돌보며 반찬가게를 운영하는 남행선 역을 맡았다. tvN 제공어떤 점이 어려웠을까. 가장 걱정했던 건 혹여 '민폐 캐릭터'로 비치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전도연은 "작가님이 생각한 캐릭터는 반찬가게에서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아줌마였던 것 같다. 첫 대본 리딩 때 그런 말씀을 했고, 사실 로맨틱코미디라고 하면 약간 오버하는, 높은 텐션이 있는 거라 '내가 이 글을 행동으로 구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양희승 작가는 대본의 텐션은 높더라도, 남행선이라는 인물을 소화하는 건 본인이 가진 모습대로 해 주길 바란다고 전도연에게 말했다. 대본 리딩 때 양 작가가 '행선이가 좀 여성스럽고 사랑스러운 것 같다'고 한 이유다. "저 자체가 그래요"라고 너스레를 떨었던 당시 에피소드를 전해 폭소를 유발한 전도연은 혹시라도 본인이 캐릭터와 잘 맞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캐스팅해도 된다고 강력하게 얘기했다.
전도연이 남행선이라는 인물에 동의됐던 부분은 "자기가 되고 싶고 살고 싶은 인생을 포기하고 가족을 선택하고 사는 것. 선택에 대해 책임지고 되게 긍정적으로 그녀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누군가는 '웬 오지랖이야' 할 수도 있지만, 전도연은 열심히 사는 남행선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었다고.
작가에게 '본인답게 하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전도연은 "작가님은 작품을 시작한 창작자다. 작가님이 생각한 캐릭터는 어떨까, 내가 해낸 캐릭터를 어떻게 보실지가 계속 남아있었던 것 같다. 걱정도 됐고"라며 "계속 가시처럼 박혀 있었다"라고 털어놨다. 이어 "'꼭 그러지 않아도 돼'라곤 하지만 그래도 저 사람이 원하는 걸 내가 해 줄 수 있다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전도연은 드라마로는 '프라하의 연인' 이후 18년 만에 로맨틱코미디로 돌아왔다. 매니지먼트 숲 제공'저 잘하고 있나요?' '작가님이 뭐라고 하세요?' 유제원 PD에게도 물었다. 계속 신경 쓰던 와중, "어느 정도 행선이 (제 안에) 들어왔다고 했을 때" 전도연은 양 작가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작가님이 생각한 거랑은 다를 수 있는데 저는 지금 행선을 연기하면서 너무 행복하고 좋아요.' 너무 잘하고 있고, 감사하다는 양 작가의 답장을 받고서야 비로소 뭔가 털어낸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전도연은 설명했다.
반찬가게 사장과 일타 강사의 달콤쌉싸름한 스캔들을 다룬 '일타 스캔들'은 남행선과 최치열의 알콩달콩한 모습이 중요한 축을 이루는 로맨틱코미디였다. 거의 모든 출연자와 접점이 있는 주인공이었지만 상대역인 정경호와의 호흡이 중요했던 까닭이다. 하지만 전도연은 정경호가 "너무 친절하고 자상하고 상냥"해서 오히려 처음에는 부담스러웠다고 해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전도연은 "그런데 그런 상냥함, 친절함, 자상함이 되게 의지되는 순간이 있더라. 그게 딱 어느 시점이다, 하는 건 아니어도 든든하더라. 롱테이크로 한 신을 찍을 때가 있었다. 영주(이봉련)를 붙잡고 '저 사람(최치열) 많이 좋아했나 봐' 하는 장면인데, 초반에는 롱테이크가 너무 부담됐다. 감정이 안 나오면 어쩌지 하고. 너무 불안해서 정경호씨한테 '제가 진짜 잘할 수 있을까요?' 했더니, '네, 선배님. 너무 잘하실 거예요'라고 해주시더라. 그때 내가 이 사람을 되게 의지하고 있구나 했다. 파트너로서 신뢰와 믿음이 있어서 그런 행동이 나온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시청자들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한 로맨스 장면을, 정작 전도연의 딸은 잘 못 봤다고. 이번 작품을 딸은 어떻게 봤는지 묻자 전도연은 "재미있게 봤다. 제 분량 빼고. 너무 오글거리고 닭살 돋고 그래서 못 보겠다고 한다. 엄마가 저런 모습(로맨스)을 하는 게 이상하다고 한다"라며 웃었고 취재진도 폭소를 참지 못했다. 내년에 고등학교에 입학한다는 딸이 가장 재미있게 본 부분은 또래 친구들의 이야기를 다룬 '학원물'로, 해이(노윤서)-선재(이채민)-건후(이민재)의 퐁당퐁당 로맨스를 좋아했단다.
'일타 스캔들' 캡처'일타 스캔들'은 행선과 치열의 거리 키스신으로 마무리된다. 전도연은 "그렇게 많은 사람 있는 데서 키스신 처음 해봐서 거기(그 장면)에서의 제 반응은 진짜 반응이었던 것 같다. 약간 민망하고 창피하기도 했다"라며 "감독님은 행선과 치열의 밝고 즐거워 보이는 모습이 리얼한 반응이라고 생각하셔서 그런지 보고 좋아해 주셨다. 아, 진짜 약간 창피하긴 했다"라고 전했다.
여성 배우에게는 '나이'라는 소재가 조금 더 자주 오르내리는 게 사실이다. 갓 50대에 들어선 전도연에게도 관련 질문이 이어졌다. "진짜 솔직히는 40대가 좋은 것 같다"라고 고백한 전도연은 "이제 계속 나이 들어갈 거다. 생각해보지 못한 나이로. 많은 날이 앞으로 아무렇지 않게 뚝딱 와 있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사실 저도 궁금하다. 그때 돼서 제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직도 상상은 안 된다"라고 말했다.
이번 '일타 스캔들'로 전도연은 로맨틱코미디에 최적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는 평을 들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여성 배우에게 돌아가는 역할이 좁아지는 현실에서 '희망'이 되었다는 반응을 취재진이 전하자, 전도연은 "한 번도 전 생각해보지 않았다. 제가 로코를 하면 안 되나? 이제 못하지 않아? 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라고 답했다. 또한 "저는 배우로서 나이를 생각하고 싶진 않다"라며 "누군가가 (그런 생각을) 하더라도, (제가) 그런 생각 깨기 위해서 연기하는 건 아니지만 계속 하고 싶은 걸 하고 싶다"라고 바랐다.
배우 전도연. 매니지먼트 숲 제공"사람들 반응을 보고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는구나'라는 걸 알았죠. 그리고 좀… 나이가 그렇게 중요한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나이가 그렇게 중요한가? 우리는 과연 나이에 맞는 삶들을 살고 있나? 인생을 사는데 나이를 의식하면서 살 필요는 없는 거잖아요. 작품 하면서 알았지 내가 더 이상 (로코를) 못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안 했어요. 이 작품을 하고 사람들의 반응은… 로맨틱코미디에 열려 있고, 쉰이 되어도 할 수 있는 게 로맨틱코미디라는 장르라고 생각해요. 되게 젊은 친구들의 전유물처럼 생각하지만 로맨틱코미디에도 되게 많은 모습이 있을 수 있잖아요."'로맨틱코미디에 맞는 나이인가?' 하는 의문은 지금까지 의식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생각하지 않을 예정이다. "제가 의식한 것도 아니고 틀이 있었다는 것도 몰랐지만 어쨌든 그 틀을 깬 것"이기 때문에. '이걸 해도 되나?' 하는 생각은 영화 '내 마음의 풍금'(1999) 때 이후 없었단다. 그는 "제가 27살 때 '내 마음의 풍금' 17살 역을 하면 사람들이 미쳤다고 그럴까? 하긴 했다. 그 이후로는 없는 것 같다. 설사 그런 생각이 든다 하더라도 저는 떨쳐내려고 할 것 같다"라고 강조했다.
"경계는 제가 만든 게 아니고 사람들이 만들었죠. (웃음) 저는 누누이 할 수 있다, 하고 싶다고 얘기했고 거기에 저라는 배우를 대입시키지 못한 거잖아요. '길복순'이든 '일타'든 제 말대로 제가 할 수 있기 때문에 해낸 거고요. 그거로 인해서 '아, 그랬구나. 전도연이란 배우 이랬었지' 하고 다시 한번 상기되는 그런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누누이 얘기했어요. 저는 할 수 있다고. 한 번도 저는 '할 수 없어요'라고 한 적 없고, '하고 싶어요'라고 얘기했어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