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B조 본선 1라운드 한국과 중국의 경기. 5회말 22대2 콜드게임 승리로 경기를 마쳤지만 이강철 한국 대표팀 감독 등 코칭스태프는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올림픽 금메달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 등 세계 야구를 호령했던 한국 야구. 그러나 3회 연속 WBC 1라운드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대표팀은 13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B조 중국과 최종전에서 22 대 2 대승을 거뒀다. 그러나 이미 8강 진출이 좌절된 상태에서 열린 경기라 큰 의미는 없었다. 앞서 호주가 체코를 누르면서 B조 2위를 확정했기 때문이다.
B조는 4연승을 달린 일본이 조 1위로 8강에 선착했고, 호주가 3승 1패로 남은 8강행 티켓 1장을 차지했다. 한국은 2승 2패, 조 3위로 밀렸다.
역대 최강 전력으로 이번 대회 강력한 우승 후보 일본에 당한 패배야 차치하더라도 호주와 1차전이 뼈아팠다. 당초 한국은 사실상 조 2위 결정전인 호주와 첫 경기를 잡고 큰 부담 없이 일본과 붙는다는 전략이었지만 1차전부터 계획이 틀어졌다. 7 대 8 패배를 당하면서 일본과 2차전에 대한 부담감에 짓눌렸고, 3 대 14 대패라는 치욕적인 결과가 나왔다.
사실 호주와 1차전 패배를 당할 때부터 8강 탈락은 예고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소방관, 교사 등이 나선 체코나 최약체 중국 등 다른 팀들이 호주를 잡아주기를 기대하기 어려웠던 까닭이다.
투수들의 부진이 아쉬웠다. 한 수 아래로 평가를 받던 호주에 8점이나 내준 데 이어 일본에는 무려 13점을 헌납했다. 최소 실점이 중요했던 체코와 경기에서도 3실점하면서 체면을 구겼다.
지난달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 키노스포츠 콤플렉스 보조 구장에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2023 대한민국 대표팀 투수 이의리(왼쪽)와 구창모가 트레이닝을 받기 위해 이동하며 추운 날씨에 몸을 움추리고 있다. 이날 예정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2023 대한민국 대표팀과 프로야구 KBO리그 kt wiz의 평가전은 비와 강풍으로 인해 연기됐다. 연합뉴스대회 전부터 준비가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팀은 대회를 앞두고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 전지 훈련을 실시했는데 장시간 이동과 시차 적응을 해야 하는 악조건이었다. 물론 대표팀 사령탑인 이강철 감독의 소속팀 kt를 비롯해 다수의 팀이 미국에서 스프링 캠프를 소화하고 있었다지만 WBC 1라운드가 열리는 일본과는 거의 지구 반대편이었다.
여기에 미국 외 소속팀 스프링 캠프에서 훈련하던 대표팀 선수들은 고충이 2배가 됐다. 두산, 삼성, 롯데 소속 선수들은 미국으로 왔다가 다시 일본으로 가야 했던 여정을 감내해야 했다. 두산 포수 양의지는 투손 입성 당일 공항에서 서서 졸기도 했다.
날씨도 최악이었다. 투손은 비바람은 물론 눈까지 몰아쳐 한파 주의보가 내려졌는데 특히 투수들이 제대로 훈련하지 못했다. 실내 불펜 훈련장조차 없어 기후가 좋지 않을 때는 강제 휴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악천후로 평가전도 1경기 취소되는 등 실전 훈련도 부족했다. 귀국 당일 미국 이동 항공기 이상으로 22명 선수들이 8시간을 버스로 이동해야 하는 악재까지 발생했다. 피로가 누적될 수밖에 없었다.
B조의 경쟁국들은 달랐다. 일본은 자국 미야자키에서 시차 적응 없이 컨디션을 끌어올렸고, 호주 역시 한국보다 10일 정도 앞서 일본에 입성해 적응 훈련에 들어갔다. 결과론이지만 이런 대회 전 준비의 차이가 경기력으로 이어졌고, 승패의 분수령이 됐다.
호주와 1차전에서 나온 강백호의 어이없는 주루사는 전 세계 외신에도 소개됐다. 폭스스포츠 트위터 계정 캡처한국 야구는 2013년과 2017년 WBC 1라운드 탈락의 아픔을 맛봤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서는 병역 혜택 논란까지 벌어졌다. 때문에 이번 대회는 추락한 한국 야구의 위상을 회복할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대회 전부터 치밀하지 못한 준비로 기회를 날린 꼴이 됐다.
실제 경기에서도 벤치와 선수들은 안일한 데다 절박함이 떨어지는 모습까지 보였다. 호주와 1차전에서 강백호(kt)는 2루타를 치고도 세리머니에 정신이 팔려 베이스에서 발이 떨어져 아웃되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다. 7회 승부처였기에 더욱 아쉬운 장면이었다.
7 대 8로 뒤진 9회는 선두 타자가 출루했지만 희생 번트 대신 강공을 택하는 악수가 나왔다. 물론 다음 타자 김하성(샌디에이고)이 한 방이 있는 타자인 데다 메이저 리그(MLB)에서 2년을 뛰어 번트가 생소할 수 있다. 그러나 페넌트 레이스가 아닌 단기전이고,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에서 1점 차 뒤진 상황이었다. 결국 김하성은 외야 뜬공으로 물러나 진루타로 이어지지 못했다.
다음 타자 이정후(키움)도 외야 뜬공을 쳤다. 다만 앞서 번트로 주자가 2루까지 갔다면 이정후의 뜬공 때 3루로 진루할 만했다. 2사 3루라면 상대 폭투 등 득점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질 수 있다. 그러나 강공으로 이런 가능성이 차단된 가운데 한국 벤치는 2사에서 뒤늦게 도루를 시도하다 횡사하면서 허무하게 경기가 끝났다. 주자 토미 현수 에드먼(세인트루이스)이 헤드 퍼스트 슬라이등을 하지 않은 점도 아쉬웠지만 벤치의 판단 미스가 더욱 뼈아팠다.
이 감독은 중국과 경기 뒤 "탈락이 결정됐는데도 야구장에 와주신 팬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면서 "국내에 계신 팬들께도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선수들은 준비를 잘했고, 최선을 다했다"면서 "내가 부족해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물론 결과론일 수 있다. 그러나 대회 전부터 불안했던 준비 상황은 실패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고 했는데 과연 그렇게 됐다. 여기에 다소 안일하고, 절실함까지 부족했던 경기까지… 한국 야구는 아직 배가 부르고, 수모를 더 당해야만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