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 하도영 역 배우 정성일. 넷플릭스 제공※ 스포일러 주의
하도영에게 삶은 바둑판처럼 선명했다. 아군과 적군, 내 식구와 남의 식구, 예스 아니면 노. 흐릿한 것이 끼어들 수 없는 흑과 백의 세상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안개처럼 흐릿한 여자 문동은(송혜교)이 자꾸만 궁금해졌다. 문동은을 만난 순간부터 평생 흑만 잡아 왔던 하도영은 백을 잡게 됐다. 동은을 향한 도영의 마음은 단순한 호기심이었을까? 아니면 사랑이었을까?
'더 글로리'를 보면서도, 보고 난 후에도 시청자들 사이에는 몇 가지 궁금증과 의문이 남았다. '하도영은 왜 박연진과 결혼했을까?' '왜 그는 바둑에 집착할까?' '그는 동은을 사랑했을까?' '왜 하도영은 직접 전재준(박성훈)을 처리했을까?' 등 말이다. 하도영의 전사가 나오지 않은 만큼 '하도영이 서자일 것'이란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그래서 물었고, 정성일이 이에 답했다. 조금이나마 시청자들의 궁금증과 의문이 해소되길 바라며, 이를 Q&A 형태로 정리해봤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Q. 많은 시청자가 하도영의 가족사를 추측하는 과정에서 하도영이 서자일 것이란 이야기까지 나왔다. A. 전혀 아니다. 작가님도 그런 말씀이 없으셨다. 있었다면 나에게 말씀해주셨지 않았을까? 그리고 서자라고 하면 어떤 콤플렉스가 생긴다. 그럼 인물도 달라지고, 연기하는 것도 달라진다. 열등감 등 상대를 대하는 것도 많이 달라졌을 거 같다. 그렇기에 서자라는 설정은 아예 하도영 캐릭터에 입히지 않았다. Q. 하도영이 드레스룸에서 전재준이 운영하는 숍의 쇼핑백을 발견했을 때는 어떤 기분이었던 건가?
A. 사실 그때 토할 뻔했다. 그게 머리에 들어오는 순간, 너무 역겹고, 이걸 몰랐던 내가 너무 바보 같고 멍청하고…. '내가 뭘 하려 산 거지?'라는 생각도 들고 자존감도 떨어졌다. 그 신은 정말 힘들었다.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Q. 하도영은 왜 박연진과 결혼한 건가?
A. 연진을 선택한 건 대사에도 나오지만, 가장 적게 입었는데 다 디올이라고 하는 말이 있다. 적게 입었다고만 해서 좋은 게 아니라 적게 입었음에도 천박해 보이지 않고, 디올이라고 해서 돈 자랑 하는 것 같지도 않다는 뜻이다. 연진의 재력도 집안과 어울리지만, 같은 루틴으로만 살아온 평범한 삶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자극을 줄 수 있는 여자였다. 이 여자랑 살면 심심하지 않겠다는 마음에 연진을 선택한 거 같다. Q. 하도영은 예솔이가 자기 자식이 아님을 알면서도 지키려고 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A. '내 선택'인 거다. 연진을 선택한 것도 '내 선택'이다. 그러다 보니 내가 선택한 거에 대해선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해서 연진에게 몇 번의 기회를 준 거다. 예솔이는 그 선택 안에서 내가 키웠다. 키우는 정이 낳은 정보다 크다고 생각하고, 그렇기에 어렵지 않게 품을 수 있었다. 하도영이란 인물도 정작 다 내려놓고 모든 걸 다 떨치고 가장 마음 편하게 대할 수 있는 것도 예솔이 한 명밖에 없었던 거다.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Q. 하도영은 왜 그렇게 바둑에 집착하는 건가?
A. 작가님이 말한 것처럼 바둑은 흑과 백이 명확하게 나뉘어 있고, 하수와 상수가 나뉘어 있다. 어떤 명확한 답이 정해진 것에 매료된 거 같다. 과정에서 흑과 백이 뚜렷하게 나뉘어 있다 보니 늘 잡았던 돌이 아닌 다른 돌을 잡게 되는 거다. Q. 하도영의 기풍(棋風, 바둑이나 장기 따위에서 기사의 독특한 방식이나 개성)은 동은과 어떻게 다른가?
A. 동은이 긴 시간 서서히 조여 오는 스타일이라면, 하도영은 공격과 방어가 뚜렷한 사람이다. 도영은 한 방에 한 수를 놓는다.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Q. 박연진과 문동은, 두 여자를 향한 하도영의 감정은 무엇이었나?
A. 연진은 사랑으로 시작해 아이까지 낳았고, 동은은 진짜 그에 관해 알고 싶었던 거 같다. 하도영은 자신이 던지는 질문에 돌아올 답을 미리 알고 있는 사람이고 그런 식으로 살아왔는데, 동은에게서는 전혀 들어보지 못한 답이 돌아오니 거기서 많이 흔들렸다. '뭐지?' '이 여자는 뭐지?' 그런 거다. 그래서 계속 호기심으로 다가갔다. 끝까지 궁금했던 거 같다. 동은을 향한 호기심과 설렘 등이 사랑의 감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 잘못됐네.(웃음)
Q. 하도영이 직접 전재준을 처리하기 위해 나선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A. 재준이 눈에 안약을 넣은 후 운전하다가 트럭에 부딪힌다. 부딪힌 트럭은 도영이 신 사장 밑에 있던 두 친구에게 사주한 거다. 재준을 공사장까지만 놓고 빠지라고 말이다. 만약 다른 사람을 시켰다면, 그 둘에게 시켰다면 도영은 그 둘한테 또 약점 잡히는 거다. 그래서 그들도 다 돌아가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도영만 아는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거다. 그래서 도영이 직접 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Q. 모든 게 다 끝나고 나서 삼각김밥을 먹는다. 그때 도영의 감정은 무엇인가?
A. 그 부분을 진짜 많이 고민하긴 했다. 너무 많이 고민하다 보니 답이 잘 안 나오더라. 그런데 조금 심플하게 생각해보니 삼각김밥은 동은과 직결되는 거다. 동은이 얼마나 괴로웠으면 이렇게까지 했을까 이해하려는 부분도 있고. 그리고 도영이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는 거다. 내가 해보지 않았던 거에 대한 시작점이 되기도 하고.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Q. 감옥에 간 박연진이 하도영에게 편지하면 예솔이에게 전해줄 거냐고 묻는다. 도영은 편지를 전해줬을까?
A. 그런 생각은 일(1)도 안 했을 거 같다. 선택하는 과정이 복잡한 인물이지, 선택하고 나서는 후회하지 않고 돌아보지 않는 인물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