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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에 가해자 쓸까"…직장인 열 중 셋 '직장 내 괴롭힘' 경험

사건/사고

    "유서에 가해자 쓸까"…직장인 열 중 셋 '직장 내 괴롭힘' 경험

    직장인 10명 중 3명 '직장 내 괴롭힘' 겪어
    괴롭힘 겪은 이들 10명 중 1명은 '극단적' 생각까지
    비정규직·영세사업장·저임금일수록 직장 내 괴롭힘 빈번
    신고 후에도, 사측 조사·보호조치 없는 경우 多…신고에 따른 불이익도
    직장갑질119 "사측 의무 위반에 대한 '과태료 처분' 강화해야"

    스마트이미지 제공스마트이미지 제공
    "유서에 저 사람들 이름을 다 쓰고 자살하면 알아줄까 싶어요." 직장인 A씨는 회사에 다니면서 전에 없던 온갖 질병을 얻었다. 위염과 역류성 식도염, 질염뿐만 아니라 우울증, 공황장애와 불안장애, 불면증까지. 담당 의사는 A씨에게 한 달을 쉬라고 해 회사에 진단서를 제출했다. 회사로부터 돌아온 말들은 "지금 말하면 어떻게 하냐, 실망이다, 너 앞으로 커리어 생각 안 하냐"는 것들이었다. 결국 A씨의 생각은 극단적인 곳까지 치달았다.
     

    직장인 10명 중 3명이 직장 내 괴롭힘을 겪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2019년 7월부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피해자들이 신고해도 여전히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하거나 오히려 불이익을 당하고 있었다.
     
    직장갑질119와 사무금융우분투재단은 지난달 3일부터 10일까지 전국 만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직장 내 괴롭힘 실태 설문조사 결과를 9일 밝혔다.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3명(30.1%)이 직장 내 괴롭힘을 겪었다. 괴롭힘을 겪은 이들 중 절반(48.5%)은 심각한 수준의 괴롭힘에 시달렸다. 직장 내 괴롭힘을 겪은 이들 10명 중 1명은 극단적 선택까지 고민하고 있었다.
     
    상대적 약자에 처한 이들은 직장 내 괴롭힘에 더욱 취약했다. 고용 형태가 불안정할수록, 영세사업장일수록, 저임금일수록 괴롭힘을 경험하는 비율이 높았다.

    직장 내 괴롭힘 경험이 있다고 답한 직장인 301명 중 비정규직(52.9%), 5인 미만(54.9), 월 150만 원 미만(58.3%)의 비율이 더 높았다. 업종별로 분석하면 보건·사회복지서비스업(65.4%) 종사자들의 괴롭힘 경험 비율이 높았다.
     
    가장 흔한 괴롭힘 유형은 '모욕·명예훼손'(18.9%)인 것으로 드러났다. 다음으로는 '부당지시'(16.9%), '폭행·폭언'(14.4%), '업무외 강요'(11.9%), '따돌림·차별'(11.1%)이 그 뒤를 이었다.

    직장인 B씨 또한 매일같이 모욕적인 폭언을 들어왔다. "너는 머리가 모자라냐?", "어디서 말을 그따위로 배워먹고 자랐냐?", "니가 사장하지?" 등 매일 같이 쏟아지는 폭언에 B씨는 "정신병에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괴롭힘을 겪은 이들 10명 중 4명(48.%)이 괴롭힘 수준이 '심각하다'고 답했고 10명 중 1명(10.6%)이 극단적 선택까지 고민하는 수준이었지만, 대다수가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직장 내 괴롭힘을 겪은 이들 중 절반 이상(59.1%)이 '참고도 모른 척했다'고 답했다. 신고를 하지 않은 건 대응을 해도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고(71.0%), 향후 인사 등에 불이익을 당할 것 같다(17.0%)는 이유에서였다.
     
    신고한 이들마저도 적절한 보호조치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보복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한 이들 중 63.9%는 신고 이후에도 회사가 피해자 보호 및 객관적 조사 등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정해진 회사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박종민 기자박종민 기자
    현행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제76조 3항)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할 경우 사측은 지체없이 조사해야 하며, 피해자는 보호하고 가해자에는 징계 조치를 하고 비밀누설을 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의무를 위반할 경우 사측에 최대 5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하지만 현행 고용노동부의 <직장 내 괴롭힘 신고사건 처리지침>은 오히려 사측이 처벌하지 않도록 돕고 있다. 사측이 위 의무를 위반할 경우 과태료를 즉시 부과하지 않고 14일에서 25일의 시정기간을 두고 있기 때문에, 과태료 처벌을 사실상 무력화하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상 의무를 위반하는 걸 넘어, 오히려 신고자에게 불리한 처우를 내리는 회사도 적지 않았다. 신고 이후 오히려 불리한 처우를 당했다는 직장 내 괴롭힘 경험자는 33.3%에 달했다.

    직장인 C씨는 용기 내어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했다. 그런 C씨에게 돌아온 것은 인사평가 '0점', 2차 가해였다. C씨에게 0점을 준 사람들은 괴롭힘 가해자였다. 인사평가 기준을 바꿔가면서까지 C씨에게 불이익을 준 것이다.
     
    이에 대해 직장갑질119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직장 내 괴롭힘 방치법'이 되지 않으려면 우선 직장 내 괴롭힘이 반복적으로 발생한 사업장에 대해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해야 한다"며 "또 노동부의 <직장 내 괴롭힘 신고사건 처리지침>을 개정해 조사·조치의무 위반에 대해 '즉시 과태료'를 부과하고, 신고를 이유로 불리한 처우를 한 경우 무관용 원칙에 따라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해 엄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5인 미만 사업장, 특수고용, 원청, 경비노동자 등에게도 해당 법률이 적용될 수 있도록 조속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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