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킬링 로맨스' 배우 이선균.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스포일러 주의
지금까지 이런 이선균은 없었다. 이선균이 영화 '킬링 로맨스'를 볼 관객이라면 반드시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꼭 보고 오라고 한 이유가 있었다. 이선균도 충분히 B급 병맛 코믹 캐릭터를 충분히 소화해 낼 수 있다는 걸 '킬링 로맨스'를 통해 입증했다. 이원석 감독과 만난 이선균은 또 다른 의미로 '멋지게' 날아올랐다.
이선균이 연기한 섬나라 재벌 조나단 나, 약칭 존 나(John Na)는 광기와 집착의 아이콘이다. 돈도 땅도 자기애도 넘쳐흐를 정도로 많아서 탈인 조나단은 콸라섬에서 여래와의 운명적인 만남으로 사랑에 빠져 버린다. 하지만 그의 사랑은 점점 광기와 집착으로 변해 가고, 여래를 끊임없이 구속하게 된다.
이처럼 광기와 집착의 아이콘을 B급 병맛으로 표현하기 위해 이선균은 중단발 머리에 화려한 패턴의 트레이닝복은 물론 가짜 콧수염까지 과장된 듯 보이는 스타일링도 주저하지 않았다. 비록 태권도 도복을 입을 때마다 '현타'(현자 타임. 어떤 것에 대한 욕구를 충족한 직후에 이전까지의 열정이나 흥분 따위가 사그라들고 평정심, 초탈, 무념무상, 허무함과 같은 감정이 찾아오는 시간을 이르는 말)가 찾아왔지만, 이선균은 굴하지 않았다.
머리카락도 한 달 전부터 붙이고 다니면서 촬영할 때까지 넉 달 동안 하고 다녔다. 그만큼 이선균은 존 나에 진심이었다. '킬링 로맨스' 개봉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선균은 다시는 만날 수 없을 만큼 독특했다는 영화를 어떻게 만났는지, 그리고 이 영화를 위해 어디까지 자신을 내던졌는지 이야기했다.
영화 '킬링 로맨스'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비록 현타는 왔을지언정, 이선균은 조나단에 진심이었다
▷ 정말 독특한 영화가 나왔다. '킬링 로맨스'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어땠을지 궁금하다. 굉장히 독특하지만 너무 재밌게 봤다. 시나리오를 볼 때부터 만화책 보는 것처럼 재밌게 봤고, 이걸 어떻게 찍을까 궁금증도 많았다. 이원석 감독님이 연출하면 독특한 영화가 나오겠다 싶었다. 그러나 처음엔 캐릭터가 그려지지 않아서 부정적인 마음이 컸다. 나한테 이 역을 왜 줬는지도 궁금했다. 그런데 인연을 믿는 편이고, 하늬씨가 워낙 코미디도 잘하고 현장에서도 중심을 잘 잡고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게 많다. 그런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 조나단 나를 어떤 캐릭터라 생각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 캐릭터를 어떻게 쌓아 올려갔나? 현실적인 인물이 아니다 보니 나르시시즘을 되게 많이 생각했다. 일단 굉장히 튄다. 튀고, 약간 광기 같은 모습 보인다. 광기 같은 모습 보일 때 감독님이 '시계태엽 오렌지' 이야기하셔서 그것도 생각하고…. 넷플릭스 다큐 '타이거 킹: 무법지대'도 보고, 진짜 유튜브 등 독특한 거나 재밌는 거 보면서 톡으로 주고받고 그랬다. 일반적이지 않은 건 다 봤다. ▷ 영화 속 콸라어는 혹시 애드리브였을까? 대본대로 한 거다. "잇츠 귯"(It's good) 이게 대본에 없던 거다. 그 당시 담이 걸려서 도수 치료받으러 갔는데, 선생님이 유학파인 거 같다. "귯~"(Good)이라고 하시기에 과하게 도용했다. 감독님이 너무 좋아하셔서, 현장에서도 유행어가 됐다. 이게 추임새가 되어서 반복적으로 하다 보니 캐릭터에 도움이 됐다.영화 '킬링 로맨스'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조나단 초상화는 어떻게 탄생한 건가? 그걸 직접 봤을 때 어땠을지 궁금하다. 대본에는 그렇게까지 안 나와 있었는데, 현장 가니까 있더라. 놀랐다. 놀라서 셀카 찍어서 집에 보냈다. 애들은 재밌어했다. 근데 그거 어떻게 처리했지? 태웠겠지? ▷ 촬영하면서 이건 정말 '현타' 왔다는 장면이 있었을지 궁금하다. 일단 태권도 도복을 입으면 현타가 왔다. 테이크 지나갈 때마다 주저앉았던 거 같다. 창피해서. 그리고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웠던 건 불가마 신이다. 원래 대본은 불가마가 아니었다. 그 당시만 해도 거리 두기 등 헌팅 제한이 많아서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 (시나리오를) 많이 바꿨다. 정말 로케이션이 선물처럼 다가왔다. 세트가 아니고 진짜 강원도 불한증막이다. 공간도 너무 좋았고, 오정세씨가 특별출연한 것도 뭔가 되게 잘 맞아떨어졌다. ▷ 그렇다면 혹시 현타 이상으로, 이 장면만은 정말 못하겠다 싶어서 바뀐 것도 있을까? 못하겠다고 생각한 건 없다. 일단 선택한 건데 해야 하는 거고, 대본 자체를 재밌게 봤다. 그런데 첫 번째 신이 바뀌었다. 첫 번째 등장이 원래 대본에는 삼각팬티만 입고 해변에서 청국장을 마시는 거였는데, 그건 못 하겠다고 했다. 이렇게 등장할 자신이 없었다. 해변도 장소 섭외가 안 되기도 했고, 그건 너무 거부감이 있을 거 같아서 바꿨다. 자신 있게 그 복장만 입고 못 하겠더라. 이건 너무 드러울(*편집자 주: 이선균의 말 그대로 '더러울'이 아니라 '드러울'로 옮깁니다) 거 같다고 했다.영화 '킬링 로맨스' 배우 이선균.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선균에게 '행복'과 '킬링 로맨스'란…
▷ H.O.T.의 '행복'이 마치 조나단 나의 주제가처럼 계속해서 나온다. 조나단에게 '행복'이란? 일단, 이렇게 부각될 줄 몰랐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행복'이란 단어가 폭력처럼 느껴지더라. 마치 사이비 교주가 신도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세뇌적인 폭력일 수 있는 거다. 나한테는 주문이라 생각했다. 감독님에게도 여쭤봤는데, 이민 가면 이민 갈 당시 불렀던 노래가 힐링이 된다더라. 그런 의미로 '행복'을 넣었다고 말씀하셨다. 위안 삼는 것일 수도 있고 자존감 높여주는 것일 수도 있고, 조나단의 정체성 같은 노래라고 생각하고 불렀다. ▷ 이하늬와 드라마 '파스타' 이후 10년 만에 재회했다. 오랜만에 함께한 소감은 어떤가? 그때 하늬가 드라마 처음 시작할 때인가 두 번째 작품을 할 때 만났다. 그때도 진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며 좋은 배우가 되겠다 생각했는데, 진짜 너무 잘하고 있는 거 같다. 하늬가 지금까지 필모를 쌓은 거 보면 너무 잘하고 있고, 현장에서도 배우나 스태프에게 정말 좋은 에너지를 준다. 너무 고맙다.
영화를 보고 난 후 하늬한테 너무 고마운 건, 난 그냥 하이텐션으로 그 역할만 하면 되는데 하늬는 진짜 해야 할 게 많았다. 노래부터 해서 자기 서사를 만들고 끌고 가야 하는 역할이었다. 그런데 중심을 너무 잘 잡고 간 거다. 난 하늬가 캐릭터로 더 놀길 바랐던 적 있어서, 가끔 이게 맞나 싶은 장면이 있었다. 그런데 영화 전체를 보니 왜 그렇게 감정 다운시켰는지가 보였다. 얘는 진짜 다 계획이 있구나.(웃음)영화 '킬링 로맨스'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공명과의 호흡은 어땠나? 명이는 너무 귀엽다. 하늬나 명이나 '극한직업' 친구들이 다 너무 돈독한 거 같다. 역시 영화가 잘되면…. '극한직업' 사람들이 다 너무 좋고, 다 아는 분들인데, 그 팀이 되게 좋았겠구나 싶을 정도로 합이 너무 좋다. 명이는 진짜 밝다. 귀엽고, 진짜 범우같다. ▷ 조나단의 마지막은 마음에 드나? 그게 원래 대본에는 공항 가는 길에 허허벌판에서 여래바래(극 중 이하늬가 연기한 황여래의 팬클럽 이름) 친구들을 만나서 액션하는 장면이었다. 그때도 헌팅 안 되다 보니 의견을 내야 했다. 내가 홈쇼핑으로 가자고 의견을 냈다. 그렇다면 범우가 어떻게 올 거냐? 분양권 파는 설정으로 가고, 지금 롯데홈쇼핑에서 일하는 대학 친구를 섭외했다. 쇼호스트 나왔던 친구다. 그렇게 설정을 바꿔서 했다. 그게 그때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이었다.
▷ 조나단 중심으로 시즌 2를 한다면 생각이 있나? 잘되면 기획하지 않을까. 서로 '또 할 거야?' '진짜 할 거야?' 그런 건 있지만, 한 번 더 하면 다른 것들이 안 들어올 거 같아서….영화 '킬링 로맨스'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킬링 로맨스'보다 더 특이한 거 만날 거 같나? 아니. 하하하하하. 이원석의 차기작?
▷ 이원석 감독이 또 하자고 하면 출연할 생각은 있나? 원래 둘이 같이 뭐 하려다가 연기된 게 있다. 이 정도로 이상한 건 아니고. ▷ '킬링 로맨스'는 '이런 영화다'라고 정의 내린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정의 내리지 못하는 영화.(웃음) 이원석 감독과 되게 닮아있는 거 같다. 역할에 배우가 투영되듯이 모든 영화에는 감독이 투영되는 거 같다. 감독님이 독특하고 재밌고 귀여운 형이다. 이게 많이 닮아있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