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일리언컴퍼니 제공배우 김병철에게는 특별한 힘이 있다. 'SKY 캐슬'부터 '닥터 차정숙'까지 결코 사랑 받을 수 없는 캐릭터의 매력을 끝내 구현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JTBC 토일드라마 '닥터 차정숙' 주인공 정숙(엄정화 분)의 남편 서인호가 대표하는 주요 키워드는 권위주의적 '불륜남'이다.
누가 봐도 비호감일 수밖에 없고 차정숙의 '장애물'이 되어야 했지만 김병철은 인호를 포기하지 않았다. 승희(명세빈 분)와 정숙, 두 여자 사이에서 이도 저도 못하면서 어딘가 허술하게 자존심을 지키려는 모습이 웃음을 자아냈고, 결국 욕하면서도 '짠한' 캐릭터를 완성해냈다. 김병철만큼 서인호에 적임자는 없었던 셈이다.
이런 김병철의 활약은 'SKY 캐슬'에서도 돋보였다. 서인호와 닮은 듯 다른 권위주의적인 아버지이자 로스쿨 교수 차민혁 역을 맡아 자신의 이름 세 글자를 시청자들에게 알렸다. 극 중에서는 아내 노승혜 역의 윤세아와 이혼을 논하는 지경까지 관계가 악화되지만 실제로는 두 사람의 '케미'에 뜨거운 반응이 따라왔다.
이번엔 '마성의 하남자'란 수식어까지 얻을 정도로 서인호 캐릭터의 존재감을 뚜렷하게 키웠다. 매사 침착한 김병철의 연기 비결은 그저 약간의 틈을 파고드는 방식이다. 무엇이든 속단하지 않고, 끊임없이 작은 가능성을 찾아 생각하고 움직이면 된다. 엄정화와 명세빈 사이를 오가면서도 결코 밉지 않은 '빌런'(악인)의 탄생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다음은 김병철과의 인터뷰 일문일답.
에일리언컴퍼니 제공Q 비호감 설정을 전부 가져갔는데도 밉지 않은 '불륜남'이 탄생했다A 허당 같은 모습이 있고 코믹하게 그려진 장면들이 그랬다. 인물이 워낙 부정적이어서 시청자들이 보기 싫어할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기본적으로 이를 완화시키려고 작가님이 코미디를 많이 하려고 했고, 저도 이런 부분을 잘 살리고자 했다. 인물의 다양한 면을 드러내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웃픈'(웃기면서 슬픈) 상황 속에서 막다른 상황에 몰리니까 벗어나고 싶어서 실수도 하게 되고, 그런 모습을 결과적으로 안쓰러우면서 귀엽게 봐주신 거 같다. 스태프들 사이에서도 그런 평이 있었다. (웃음) 같은 반응이 시청자들에게도 나오니까 맥락을 알겠더라.
Q 본인의 역량으로 잘 풀어냈지만 처음 접했을 때는 부담이 없진 않았을 캐릭터다A 어차피 연기는 사람의 모습을 표현하는 거고 그런 조건이 부담이 되진 않았다. 다만 'SKY 캐슬' 차민혁 캐릭터와 권위적인 면이 비슷했다. 그런 게 부담이 됐지만 처해있는 상황도 다르고, 코믹한 부분이 훨씬 많이 들어가 있어서 그런 차별점을 생각하면서 작업했다.
Q 확실히 뻔한 캐릭터도 본인 스타일에 맞게 잘 살리고 그게 호평까지 이어지는 것 같다A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드러나는 인물의 다양한 면모와 그런 맥락들을 잊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계속 악행만 하는 인물이 있어도 그 사람의 다른 지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개인적으로 계속 한 쪽에 생각을 하고 있다. 그게 은연 중에 영향을 주는 지점이 있는 거 같다. 그러다 보니 좀 더 살아있는 사람처럼 보이는 면이 있을 수도 있고, 가능하다면 그런 면모를 반영하려고도 한다. 단순해서 좋은 캐릭터도 있지만 보통은 그러면 쉽게 재미가 떨어지고, 사람 같지 않을 수 있어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작업을 한다.
에일리언컴퍼니 제공Q 뜨거운 인기만큼 반응도 뜨거웠는데, 시청자 반응 중에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어떻게 서인호가 엄정화와 명세빈, 두 사람 모두를 매료시켰는지에 대한 논쟁 아닌 논쟁도 있었다A '마성의 하남자' 이런 별명이 재미있었다. (웃음) 내가 이제 하다 하다 하남자까지 하는구나 싶었다. 나는 실제로 '중남자'인 것 같다. 잘 눈에 안 띈다는 점에서? (인호의 삼각관계에 대해선) 만약 승희가 아니라 모르는 여자였다면 외도할 가능성이 낮았을 거 같다. 승희는 첫사랑이라 영향을 많이 받았던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시청자들은 인호의 어떤 지점을 귀엽게 봤어도 승희와 정숙에겐 아니었을 거다. 그렇다면 두 여자가 대체 '이놈'을 왜 좋아하느냐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각 상황에서 각 관계에 충실했기 때문이 아닐까.
Q '미스터 선샤인' 'SKY 캐슬'에 '닥터 차정숙'까지 많은 흥행작들에 이름을 올렸고, 이번에는 또 주연이다. 흥행 소감이 남다를 것 같다A 기대했던 것보다 결과물이 너무 좋았고,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인기는 인터넷으로 시청률을 볼 때 체감하는데 지하철 타서 누가 욕하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을 하긴 했다. 그러진 않았다. 다만 그랬다면 기뻤을 거 같다. 이야기로만 들었던 시장 가서 욕 먹는 그런 상황이라, '감사합니다. 저한테 이런 경험을'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작품 인기는 시청률 순서대로 체감했지만 개인적인 체감은 제가 좀 더 많이 책임질 수밖에 없었던 작품, '닥터 차정숙'이지 않을까 싶다.
Q 엄정화와의 부부 호흡은 어땠나. 두 사람 다 미혼이어서 실감나는 연기를 위해 다양하게 소통했을 것 같은데. 명세빈과의 작업도 어땠는지 궁금하다A 오랫동안 함께 산 사이를 연기해야 되니까 어색하게 보이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원래 평소에 '선배님'이라고 존댓말을 하는 스타일인데 '누나'라고 부르고 말도 편하게 했다. 캐릭터 관계성을 위해 일부러 그렇게 하자고 제안을 했고, 누나도 수락했다. 그렇게 연기 작업을 상의해가며 해나간 게 호흡이 잘 맞았다. 명세빈 배우에 대해선 승희 캐릭터가 가장 연기하기 어려운 캐릭터고, 그게 잘 구현이 돼야 시청자들이 보실 거란 생각이 있었다. 인호와 승희의 장면이 보기 싫은 느낌이 없게 하도록 고민했는데 명세빈 배우가 먼저 함께 대본 리딩을 해보자고 제안했고, 그렇게 호흡을 맞춰 나갔다. 좋은 결과를 만드는데 일조한 것 같다. 서로 생각을 이야기하는 걸 끝까지 유지했었다.
에일리언컴퍼니 제공Q 차정숙이 아닌 가수 엄정화가 등장하는 예능 '댄스가수 유랑단'이 방송 중이다. 180도 다른 모습이라 낯설기도 할 것 같다
A 확실히 누나에 대해 경험을 했기 때문에 그 전과는 다르게 보이는 면이 있었다. 원래 저렇게 좀 밝고, 주변 사람 배려하는 모습이란 것에 더 공감이 갔다. 아무래도 개인적으로 보게 되는 것 같다. 함께 작업했던 모습도 떠오르고, 무대도 배우가 하는 무대는 또 그만의 다른 느낌이 있는 것 같다. 가수 엄정화 무대에서 그런 게 느껴져서 흥미로웠다. 새삼스럽게 더 느꼈다.
Q '닥터 차정숙'으로 주연 역량을 성공적으로 증명해냈다. 어떤 성장을 이뤄냈다고 생각하는지A 배우 김병철로서 '로코'(로맨틱 코미디) 시장을 개척하는 경험을 했다. '로코' 불모지 같은 캐릭터에게서 귀여움을 느끼게 만들었다는 게 그런 가능성이 발견됐다고 평가할 수도 있지 않나. (웃음) 성장 저변을 넓히는 일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앞으로 키다리 아저씨처럼 지켜봐주고 그런 역할도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무래도 '닥터 차정숙'이 본격적인 부부 관계를 토대로 하고 있어서 좀 더 '로코'에 대한 긍정적 가능성을 엿봤다.
Q 데뷔 20주년이 지났다.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방향성을 짚어본다면A 저는 예전을 돌아보면서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어서 그때 그때 작업에 집중한다. 다음 작업을 생각하는 편이다. 좀 더 시간이 지난 후에 돌아봐도 될 거 같고, 지금은 작품을 통해 시청자들과 다양하게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생각한다. 너무 감사드리고 '닥터 차정숙'에 대한 관심이 저에게는 다음 작업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감동적인 동력인 거 같다. 그 힘을 받아서 또 다른 흥미로운 작업들로 만나 뵐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