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통일부 장관 후보자에 지명된 김영호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남북회담본부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에 도착해 소감을 밝히고 있다. 류영주 기자윤석열 대통령은 29일 통일부 장관에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 차관에 문승현 외교부 태국대사를 지명했다. 통일부 장관과 차관을 모두 외부 인사로 교체한 것이다.
통일부 장관과 차관을 모두 외부인사로 임명한 것은 과거 김영삼 정부의 통일원 시절 권오기 부총리와 김석우 차관 때 이후 25년 만에 처음이다.
통일부 장관은 외부에서 발탁하는 경우가 많지만 통일부 차관은 업무의 연속성과 조직 관리 등을 위해 통상적으로 내부 인사를 지명해왔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인 인사로 풀이된다.
여기에다 대통령실의 백태현 통일비서관도 교체되고, 후임에 기자 출신의 학자가 내정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통일부 3역을 모두 교체하는 이례적인 인사의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핵심은 남북대화와 화해협력을 중시하는 통일부의 역할을 전면 재조정하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통령실이 밝힌 김영호 장관 지명의 이유는 "원칙 있는 대북정책, 일관성 있는 통일전략을 추진할 적임자"라는 것이다.
북한에 대해 원칙과 일관성을 강조하는 정책은 결국 대북 강경론으로 수렴될 수밖에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한국자유총연맹 창립 제69주년 기념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연합뉴스윤석열 대통령은 마침 하루 전인 28일 자유총연맹 창립기념식 연설에서 전 정부의 대북정책을 겨냥해 "왜곡된 역사의식, 무책임한 국가관을 가진 반국가 세력들은 북한 공산 집단에 대하여 유엔 안보리 제재를 풀어달라고 요청했고,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다"면서, "적의 선의를 믿어야 한다는 허황한 가짜 평화주장"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평화프로세스 등 남북화해협력정책에 대해 분명한 선을 그은 것이다.
김영호 교수는 6.25 전쟁을 연구한 뉴 라이트 경향의 국제정치학자로서 평소 '김정은 정권 타도와 북한 체제 파괴' 등을 주창해왔다.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는 대적관과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을 강조하는 윤 대통령의 생각과 많은 면에서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승현 태국대사의 통일부 차관 지명 배경에 대해서는 "외교부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은 분으로 교수 출신인 장관 지명자를 잘 보필할 것"이라는 설명이 대통령실에서 나왔다.
북한과의 대화보다는 한미동맹을 토대로 한 대북정책, 북한인권문제의 국제 공론화 등에 대한 외교적 보필이 더 필요하다고 본 셈이다.
이에 따라 남북대화와 화해협력을 중시하고 한반도 평화관리에 초점을 맞춘 통일부의 역할도 북한에 대해 원칙과 정체성을 강조하고 인권문제를 압박하는 대북 강경론으로 재조정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연합뉴스통일부 3역을 모두 바꾸는 이날 인사로 통일부 안팎은 하루 종일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통일부가 대통령으로부터 '불신임'을 받은 것이라는 해석에서부터 향후 통일부의 역할 재조정과 조직 축소, 위상 하락 등에 대한 우려까지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사실 윤석열 정부의 초대 통일부 장관인 권영세 장관은 대북정책에서의 '이어달리기'를 강조하는 합리적인 접근으로 통일부를 무난히 이끌어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한국의 독자 핵무장과 흡수통일론 등 강경발언이 대통령실과 다른 외교안보부처에서 나와도 발언의 배경과 향후 전망 등을 적절이 설명함으로써 파장을 흡수하고 정책의 균형을 잡는 역할도 했다. 논란이 됐던 북한 인권보고서도 큰 마찰 없이 공개하는 기틀을 만들었다.
윤 대통령은 김영호 장관과 문승현 차관을 발탁하면서 이런 역할 외에 또 다른 통일부의 역할을 요구한 셈이다.
북한에 대한 원칙을 강조하는 김영호 장관의 통일부가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우려에 대해 김영호 장관 후보자는 이날 "앞으로 우리의 대북 정책은 원칙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 한다"며, "나머지 우려에 대해서는 청문회 과정에서 자세하게 말씀드리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