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구순의 나이에도 이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어 감사할 따름입니다."
한국전쟁으로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학업을 뒤늦게 이어가 90세에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게 된 할아버지가 화제가 되고 있다.
주인공인 김은성 할아버지는 21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송암고등학교에서 열리는 제43회 졸업식에서 졸업생 99명을 대표해 꽃다발을 받고 표창장도 수상할 예정이다.
1934년생인 김은성 할아버지는 우리나라 최고령 고등학교 졸업 기록도 세우게 된다.
김 할아버지의 학업은 한국전쟁으로 중단됐다고 한다.
전쟁이 발발하기 전 파주시 장단군에서 중학교에 다니다가 한학을 해야 한다는 조언에 따라 서당으로 옮겨 2년 동안 공부했을 때 전쟁이 터져 공부를 접어야 했다.
중공군의 가세로 국군과 유엔군이 서울 이남으로 퇴각했던 1951년 1·4 후퇴 때는 정든 고향마저 떠나야 했다. 아버지를 따라 남동생 2명과 함께 파주시 금촌을 거쳐 충남 예산까지 내려갔다. 장단에 남았던 할아버지와 할머니, 어머니는 7개월 뒤에 모시고 내려왔다.
10대 후반의 소년은 이후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미군기지 식당에서도 2년 동안 일했고, 작은아버지가 일하던 경기도 이천의 한 고등학교에서 가축도 돌봤다.
군 복무를 마친 뒤에는 강원도 영월의 시멘트 공장에서도 힘든 일을 했다.
가족을 건사하느라 바빴던 김 할아버지는 여든을 한참 넘긴 나이에 배움의 갈증을 달래는 데 나섰다.
2020년 2월 아들의 지원으로 문해교육 기관인 서울 은평구 평생학습관 늘배움학교에 입학했다. 2년 과정을 마친 뒤에는 지금의 송암고등학교 문을 두드렸다.
뒤늦게 배움의 길에 나선 김 할아버지는 열정이 넘쳤다.
서울 은평구 자택에서 지하철과 버스를 번갈아 타고 통학하면서도 코로나19 확진으로 1주일 빠진 것을 제외하곤 단 하루도 결석하지 않았다. 당연히 지각도 없었다.
나이 어린 동급생과의 관계도 좋아 '젊은 오빠'로 불렸고, 가끔 수업이 지루할 때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때의 이야기를 풀어놓기도 했다.
한 교사는 "역사에 관심이 많은 제게 큰 도움이 됐고, 다른 학생들도 정말 재미있게 들었다"고 회상했다.
영어와 일본어를 좋아했던 김 할아버지는 지난해 10월 학교에서 열린 외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일본의 독도 야욕을 질타하고 이웃사촌으로 잘 지내자는 연설을 일본어로 해 은상을 받기도 했다.
또 모범 학생으로 추천돼 94주년 학생운동의 날 기념 경기도 교육감 표창도 받았다.
7일 연합뉴스와 만난 김 할아버지는 졸업의 기쁨을 급우들에게 돌렸다.
"우리 반 학우들이 10대부터 40~60대, 70~90대까지 다양한 데 손주 같은 친구부터 자식 같은 학우들이 너무 잘해줘 무사히 공부를 마쳤다"며 환하게 웃었다.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대학 진학을 권유받았다는 김 할아버지는 "이제 나이가 들어서인지 암기 등이 버거워진다"면서 "평소 관심이 많았던 축산분야나 식물 재배를 고민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