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에 취해 차를 몰다 행인을 치어 숨지게 한 '압구정 롤스로이스' 사건 운전자에게 마약류를 처방한 의사. 연합뉴스 작년 8월 서울 강남에서 약에 취한 상태로 롤스로이스 차량을 몰다가 보행자를 치어 숨지게 한 '롤스로이스 남(男)' 신모씨에게 약물을 불법 투약한 의사와 병원 관계자가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같은 해 서울 강남에서 람보르기니 차량을 주차하다 시비가 붙은 상대방을 흉기로 위협한 '람보르기니 남' 홍모씨에게 전신마취제인 에토미데이트를 투약한 의사도 검거했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마약범죄수사대는 이른바 '롤스로이스 약물 운전' 사건과 '람보르기니 흉기 위협' 사건과 관련해 주요 피의자인 두 사람의 마약 투약 경위에 대한 수사 결과를 4일 발표했다.
경찰 수사를 통해 의료용 마약류와 제2의 프로포폴로 불리는 에토미데이트 등을 의료 외 목적으로 투약해 온 병원 2곳의 관계자 16명과 투약자 26명이 검거됐다. 이 가운데 의사 2명은 구속됐다.
신씨에게 약물을 투약한 의사 A씨 등 병원 관계자 7명은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마약류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거됐다. 이들은 2022년 8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미용 시술을 빙자해 내원자 28명에게 수면마취제 계열의 마약류 4종을 총 549회에 걸쳐 투약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1회 투약 시 내원자들로부터 약 30~33만 원을 현금 또는 계좌이체로 받아 총 8억 5900만 원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의사 A씨에 대해서는 신씨가 마약을 투약한 뒤 보행자를 치여 숨지게 한 사건과 관련해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도 추가됐다. 경찰은 A씨가 신모씨에게 디아제팜 등 마약류 4종을 9회에 걸쳐 투약한 후 환자의 안전한 귀가 등 의료법 등 현행법에 규정된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봤다.
또한 약물 오·남용 점검을 피하기 위해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투약 기록을 거짓으로 보고하고, 타인 명의로 진료기록부를 작성하는 등 의료법을 위반한 혐의도 받는다.
홍씨에게 약물을 투약한 의사 B씨 등 병원 관계자 9명은 전신마취제인 에토미데이트를 B씨가 개설한 의원에서 총 8921회에 걸쳐 투약해 약사법을 위반한 혐의를 받는다. 이들은 내원자 75명으로부터 총 11억 4530만 원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관계자는 "약품은 약사가 조제 판매하는 게 원칙이지만 의사도 병원에서 질병 치료로 사용하는 경우 조제 권한을 가진다는 규정 때문에 에토미데이트를 치료 외 목적으로 투약해도 형사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인식이 팽배하다"며 "그러나 이 B씨의 투약엔 어떠한 의료적 목적이 없었기에 약사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B씨 등이 '에토미데이트'가 마약류로 지정되지 않은 점을 이용해 범죄를 벌였다고 설명했다.
에토미데이트와 프로포폴은 효능이 유사하지만 마약류로 지정된 프로포폴과 달리 에토미데이트는 전문의약품으로만 지정돼 있다. 따라서 B씨를 비롯한 병원 관계자들은 마약류관리법으로 처벌받지 못한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경찰 관계자는 "법의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에토미데이트를 마약류로 지정하거나 마약류 수준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