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계엄 준비 의혹을 제기하며 윤석열 정부를 독재 세력으로 규정하는 한편, 윤 대통령이 '반국가 종북세력'에 맞선 항전 의지를 강조한 뒤 국민의힘에서 이 대표를 레닌에 빗댄 발언이 나오며 정치권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의 발언을 종합하면 우리나라는 독재국가이거나 반국가세력이 활개를 치는 곳이란 말이다. 그럼에도 양측이 각자 자신의 발언을 입증할 근거는 미약하다.
이는 민생 현안과는 동떨어진 채 오로지 상대 진영에 대한 악마화와 지지층 결집을 위한 마타도어(흑색선전)에 불과하기에 국민들의 정치 혐오만 커지고 있다는 자성이 여야 모두에서 나오고 있다.
李, '계엄설' 제기하며 "완벽한 독재국가"…"실체없는 음모론" 비판
연합뉴스국회에서는 3일에도 이재명 대표가 제기한 계엄 준비 의혹이 최대 화두였다. 이 대표는 지난 1일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의 회담에서 "계엄 해제를 국회가 요구하는 걸 막기 위해 계엄 선포와 동시에 국회의원을 체포·구금하겠다는 계획을 꾸몄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설파했다.
이러한 내용은 당초 실무진이 준비한 모두발언 원고엔 포함돼 있지 않았지만, 이 대표가 직접 추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민주당 지도부에서 김병주, 김민석 최고위원이 먼저 계엄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민주당 지도부와 소속 의원들은 계엄설과 관련해 구체적 근거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 대표도 뭔가 듣고 얘기하지 않았겠나"라거나 "깊은 첩보라면 공공연하게 말할 수 없을 것"이라며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김용현 국방부 장관 후보자를 포함한 일부 군 장성들이 윤 대통령과 같은 충암고 출신이라는 점에 따라 구조적으로 계엄령 선포가 가능하다는 등 추측의 영역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대표는 단지 계엄설에 그치지 않고 "이것은 완벽한 독재국가 아니냐"라고 논의를 확장하기까지 했다. 군부 독재 세력을 연상시키는 계엄설을 퍼뜨리자 국민의힘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이날 "근거도 현실성도 없고 오로지 상상에 기반한 괴담 선동"이라고 쏘아붙였다. 배준영 원내수석부대표도 "민주당은 우리 국민의 민주성과 자주성을 폄훼하고 우리나라 역사를 45년 넘게 뒤로 되돌리려 하고 있다"고 따졌다.
전날 대통령실은 이 대표에게 "직을 걸고 말하라"며 격한 반응을 내기도 했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가 오는 10월 재판 1심 선고를 앞두고 정부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더욱 부각해 사법 리스크를 방어하려는 의도라고 보고 있다.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뚜렷한 실체도 없이 음모론을 제기해 국민 불안감을 높인다는 것이다.
"尹 언급 '반국가 세력'도 증거 있느냐"…국회 안에서도 색깔론 이어져
연합뉴스이에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반국가 세력'의 위협을 언급했다. 그는 지난달 29일 국정브리핑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반국가 세력이 누구냐'는 질문에 "간첩활동을 하거나 국가기밀을 (적국에) 유출하거나, 북한정권을 추종하면서 대한민국 정체성을 부정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이라며 "6·25 때도 북한군이 남침했을 때 반국가·종북세력들이 앞잡이를 하면서 국민들 힘들게 하는 데 많이 가담했다"고 밝혔다.
다만, 현시점에서는 윤 대통령의 발언에도 근거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대통령이 대한민국에 반국가 세력이 있다는데 증거가 있느냐"며 "반국가적 행위가 있다면 국가보안법 위반일 텐데 관련 조사를 하고 있는지 대답해 보라"고 목소리 높였다.
여기에 여당에서도 반국가 세력 프레임에 편승하는 듯한 발언이 나와서 논란이 불거졌다. 전날 김용현 국방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국민의힘 강선영 의원은 이 대표를 레닌에 빗대며 "현재 대한민국에 이런 (사회주의·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분들이 다수당 대표로 국회를 장악하고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에 민주당 소속 국방위원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야당 대표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라며 "야당 의원들을 사회주의자, 반국가세력으로 싸잡아 비난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야권에서는 정부·여당이 명확한 근거 없이 색깔론을 들고나와 보수층을 결집해 지지율을 끌어올리려는 술수를 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지지층 결집만 노릴 뿐 정치 혐오 부추겨…양당에서 자성 목소리
이처럼 여야 모두 확실한 근거를 대기는 어렵지만 열성 지지층에게는 큰 호응을 얻을 수 있는 주제를 끌어와 한쪽이 공격하면 더 강하게 반응하는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
이는 더 나은 해답을 찾기 위한 대화와 토론이 아니기에 소모적일 수밖에 없고, 시급한 민생 현안과도 무관하다. 결국, 여야 모두에서 국민들의 피로감과 정치 혐오만 키우고 있다는 반성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소속 한 의원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여야가 쟁점 사안을 가지고 갈등을 빚을 수는 있지만 '계엄령', '종북' 같은 단어는 수면 위로 올라오면 건설적인 대화가 불가능해진다"며 "국민들 보기에 부끄러운 모습이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소속 의원도 "계엄설을 지금 꺼내서 민주당이 얻을 실익은 없다고 본다"며 "민심과 당심의 격차를 줄이는 게 중요한데 서로 공격만 하는 모습이 노출되는 셈"이라고 꼬집었다.